모순 속에서 피어나는 가치

장태염 사상의 모순을 중심으로

by 홍성훈

장태염의 혁명사상은 일견 추상적이며, 자기모순적 느낌까지 들 수 있다. 국수주의를 기반으로 한 한족 중심의 혁명은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소수민족의 차별을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불교 기반 궁극적 평등을 혁명의 주요 목표로 삼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무장혁명을 통한 혁명의 달성은 불교 사상에서의 ‘불살생’의 핵심가치와 정면 충돌한다.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 추상적 목표를 지향하며, 개념적으로 상충되는 요소를 한 데 묶은 혁명 사상을 주장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장태염은 현대인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국수주의자였을까?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극단적 무장혁명주의자, 무정부주의자였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안고 장태염의 사상의 기저를 파헤쳐보도록 하겠다.


장태염은 국수주의자(?)인가?

국수주의의 개념을 살펴봐야 한다.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그것을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치사상을 국수주의라고 부른다. 히틀러, 무솔리니. 나치즘, 파시즘의 수장이었던 두 사람이 지지했던 사상이다. 자신의 민족에 대해 우월성을 기반으로 타민족을 배척하고(배타성), 이로 인해 제국주의, 식민지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장태염은 만주족이 지배했던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한족 중심의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한족 중심의 나라를 세운다, 만주족은 이 과정에서 배제된다’라는 주장으로 그의 목표가 해석될 수도 있다. 합리적 해석일 수도 있으나, 만약 만주족을 배척한다면, 그의 혁명의 최종 목표인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모든 존재의 궁극적 평등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장태염의 ‘국수’는 다르게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청나라 붕괴의 필요성

만물의 온전한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청 왕조의 붕괴가 필수였다. 봉건사회였던 청나라는 신분에 따른 ‘차별적’ 대우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단 청나라에서만 존재한 문제는 아니었다. 중국에서 신분제는 ‘국가’라는 개념이 생겨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중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개념이었고, 뽑아내기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분제 질서를 타파하기 위해 백성의 결집된 힘이 필요했다.


민족의 힘

백성을 하나로 모이게 만드는 정체성 중 하나는 ‘민족’이었다. 현대중국을 소개할 때도 한족을 비롯한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었다고 소개하는 것과 같이, 당시에도 민족의 개념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민족은 한족이었다. 중국 인구의 90% 이상이었다. 거대 국가의 황제 지배 체계라고 하더라도, 백성의 신뢰를 잃고, 거센 저항을 맞이한다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명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이전 왕조인 원나라 역시 한족 농민의 반란세력으로 인해 멸망한 역사를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국수의 목적

즉 자타의 구분, 시비를 가르지 않으려는 사상으로의 전진을 위해서 ‘국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족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함으로써 한족 백성을 하나로 모아 그들을 중심으로 만주족이 지배층인 청나라를 멸망시킨 후, 공화제, 나아가 무정부의 궁극적 평등 사회로 나아가려는 큰 그림을 그렸다고 느껴진다. 장태염은 궁극적으로 정부의 통제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도덕적 자각을 통한 자발적인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꿈꾸었으며, 이는 무정부주의적 성격과 궤를 같이한다.


‘장태염의 국수’의 특성

또한, 장태염이 주장하는 ‘국수’는 배타주의, 제국주의로 이어지는 부정적 개념이 아니었다. 한족 문화의 우수성을 주장하였지만, 한족 문화가 만주족과 다른 소수민족의 문화보다 우월하다든지, 소수민족의 문화를 배척하려는 주장을 하진 않았다. 장태염은 1906년 변발을 자른 후, 오나라, 월나라의 풍습에 따른 행위라고 설명했다. 오나라, 월나라의 지역 풍습을 내세우는 그의 행위는 청나라의 ‘변발’이라는 통일된, 제국적인 풍습을 거부하고 각 지역의 순수한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려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전형적인 국수주의자보다는, ‘국수’의 개념을 일부 적용한 민족주의자로 봄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인접국이었던 조선과 월남에 대한 장태염의 관점을 본다면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조선과 월남을 한족 중심의 질서로 포함시킨다는 주장이 아닌, 의식주, 언어, 역사 등 ‘문화’적 이질성을 이유로 들어 조선과 월남의 독립성을 인정한다.


장태염이 국수주의자로 평가받은 이유

그럼에도, 그가 국수주의자로 평가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장태염 자신도 중국에서 태어났고, 중국 중심의 질서 자체의 파괴까지는 사유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천하관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족 이외 소수민족의 순수성을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들이 중국적 질서에서 탈출해 독립된 주체로 인정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결국 ‘한족 중심’의 사고 기반으로의 혁명을 목표했다. 물론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는 여러 민족이 ‘중화민국’ (‘중화민국’이라는 용어는 장태염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이라는 나라에서 주권을 가지고 자유롭게 사회를 운영하고자 하는 목표로도 평가할 수도 있겠다. 둘째, 그는 서양의 문물 수용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서구 기반 입헌군주제, 철학적 가치의 수용에 반대했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유교, 불교적 문화의 우수성을 기반으로 중국 고유의 혁명을 이루고자 했다. 서양 열강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우수한 과학기술과 선진적 정치제도로 빠른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신의 문화 수용을 반대하는 장태염은 중국 문화의 우월함을 견지하는 국수주의자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구분진화론에서 서양 문물의 도입이 선과 악의 진화를 모두 불러온다는 주장에서도 그가 국수주의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여지가 발생한다.


불교-무장혁명--> 자기모순적(?) 주장

장태염은 이외에도 불교 기반의 무장혁명을 주장하는 자기모순적으로 보이는 주장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불살생의 원칙을 최우선으로 중요시하는 불교다. 그러나 불교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급진적인 무장혁명을 주장한다? 상충된다고 생각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무장혁명은 앞서 말했듯, 만물 평등의 길을 막고 있는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청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체제 전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거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수반되는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장태염이었다. 불살생과 제물, 상아, 진아로의 도달 간의 우선적 가치가 어느 것인지 감히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장태염은 불살생의 원칙의 예외성을 인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불교적 관점의 평등한 사회를 만듦을 우선시했다고 느껴진다.


모순 속에서 피어나는 가치

장태염과 그의 사상을 살펴보며 그의 사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했으나, 그의 혁명 사상이 전적으로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다. 추상적이고, 허황되어 보이기까지 하다. 결정적으로는 논리적으로 모순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태염이 펼치는 주장을 보면서, 저는 대한민국 헌법 제3조, 제4조가 떠올랐다. 두 조항은 논리적, 가치 상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동등한 위치의 헌법적 조항이다. 한반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시하는 제3조,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임을 인정하는 제4조의 입장은 논리적으로 정면 충돌한다. 그러나 두 조항이, 혹은 두 조항 중 하나가 잘못되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두 문장이 궁극적 목표하는 바는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이라는 점에서 두 조항의 논리적 쟁의는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다.


장태염도 당시 중국 사회에서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궁극적 평등’을 달성하길 소망했다. 기존 사회의 흐름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주장이었다. 그렇기에 백성의 힘이 필요했고, 백성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익숙한 개념, 익숙한 문화로 다가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국수’와 ‘평등’ 개념의 충돌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또한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그 목표와 충돌하는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불교’와 ‘무장혁명’의 자기모순이 그 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역설 속에서 그의 혁명 사상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논리의 모순 앞에서 굴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는 시도 또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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