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만 없애면 모든 게 쉽다
결혼식의 가장 첫번째 단계는 바로 [날짜]였다.
겨울을 지나 봄의 문턱에 선 어느 날,
추웠던 동네를 떠나 둘다 오래토록 살았던 이전 동네로 다시 와 연애 초반의 기분으로 손을 잡고 느릿느릿 산책하던 그와 함께 소소한 얘기를 나누던 중, 이제 곧 감귤꽃이 피면 온 동네의 향기가 다시 달큼해지겠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도 이런 시기였는 데 등등의 얘기가 오가다 올해 결혼을 하면 어떨까? 라는 화두를 시작으로 굉장히 빠르게 전개된 결혼"식"
이전에 적어둔 대로 일단 날짜를 정하니 프로젝트를 처리하 듯, d-day를 기준으로 역순하여 제주배송임을 감안, 인쇄 배송까지 도착가능한 물품들부터 준비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이것 저것 처리하다보니 드디어 결혼식이 일주일 남은 시일이 도래했다.
아, 이제 뭘 해야 할까? 체크리스트를 점검하던 중
결혼식때 입을 예복을 아직 정하지 않았던 것!
나는 가지고 있는 흰색 원피스나 계량 한복을 입기로 생각했던 터라 아무 생각이 없었는 데
그의 예복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갖고 있는 블랙정장 중 하나를 입으면 되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는 데
이 얘길 꺼내자마자 엄마가 그래도 양복은 하나 장만해야 한다며 본인이 돈을 낼테니 마음에 드는 걸로 꼭 사라고 하지 않는가. 이미 결혼'식'을 하기로 날짜를 정한 뒤 각 자의 집에서 받은 예단(금일봉)으로 그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한 벌로 레저복을 구매한 터라 꼭 사야 하나라는 생각에 지금까지 아무생각이 없었는 데 막상 d-day가 도래하니 이 또한 고민...
동네를 다니다 [아, 우리동네에 호텔이 있구나. 여기 런치뷔페가 있네.]라며 식장을 결정했듯이
친한 언니가 야외촬영할 때 이용했던 드레스샵이 동네에 있는 것을 알고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러 나의 예복과 구두, 당일 화장까지 원스톱결제, 그는 대여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내의 브랜드매장에서 양복에 와이셔츠, 넥타이까지 풀세트로 구매하는 것으로 결혼'식'의 예복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또, 뭐가 빠졌을까 이리저리 고민하다보니
아, 누가 사진찍어주지? 아는 동생 중 사진 잘 찍는 동생둘이 있어 연락!!
아, 부케는 어떻게 하지? 아, 친한 동생이 친한 꽃집이 있어 그날 올때 가지고 오라고 해야 겠다며 연락!
아, 축가는 누가 불러주지? 아, 그날 그의 친구가 전날 내려오니 그때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당일날 요청하여 오케이!
아, 주례는 누가 하지? 이사장님이 오신다고 했으니 부탁드려야겠다. 원래 우리 결혼하면 해주신댔잖아.. 등등
이렇게 결혼식을 즉흥적으로 해치우듯 처리하는 우리를 보며 주변사람들은 뭐가 이렇게 쉽지? 라고 생각했겠지만 생각보다 많이 준비하고 일일이 체크해야 하는 항목들이 많아 고양이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에 일주일이 후다닥 지나갔다.
결혼식 하루 전날 도착한 친한 언니의 도움으로 결혼'식'장을 우리가 함께 꾸미고
하루 전날 도착한 친구에게 축가를 거듭 부탁하고
하루 전날 도착한 엄마는 악보출력을 요청하며 축가연습에 만전을 기울이고
하루 전날까지 숲에서 일한 나는 그제서야 얼굴에 팩을 하며
하루 전날 완성된 결혼서약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와 조금 다투기도 하고
하루 전날 들른 식장에 스피커가 울리지 않는 소소한 것 쯤이야 쿨 하게 넘어가는 등
결혼식 생각보다 어렵지 않네, 하며 소쿨~한 느낌으로 해치워도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며 조금씩 마음이 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참 복받는 건
결혼식을 꾸미는 풍선과 소품이 턱없이 부족해 언니가 생각한만큼 나오지 않아 짜증이 올라오려할 때
근처 중학교의 행사를 끝내며 사용한 풍선과 소품들을 가득 안고 방문한 언니지인덕에 그럴듯하게 꾸며졌고
남들은 다 식장의 횡포와 과도한 요구가 변수라고 하던 데
우리들은 호텔측의 전폭적인 지지와 뷔페측의 세심한 배려덕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고
나의 착하고 다정한 이웃들은 도착한 이후에도 우리가 신경쓸까봐
소리소문없이 도착을 알리며 내일 보자는 문자를 보내는 등
함께 결혼'식'을 기다리는 설레임을 공유했다.
그 모든 우당탕한 시간 속에
여전이 결혼'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언니는 그 시간이 조용히,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