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다른 입맛
짝수년 생 가장 아래인 내 동거인은 20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다*다와 *원으로 점철된 입맛을 가지고 있다.
조미료는 음식에 꼭 들어가야 할 필수 요소이며
담백한 음식은 절대 노~
매운탕도 맑은 지리보단 빨간 국물을 선호
그럼에도 제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메뉴는 먹질 못한다.
일례로
돼지고기(근고기) 구이, 생선회는 일절 먹지 않고
치킨 느님은 맛만 보는 정도
신맛 나는 과일(만감류, 키위류)은 입에도 대지 않으며
애플망고는 화장품 냄새가 나서 싫다는 남자.
콩나물국밥에 콩나물을 빼 달라고 하며
우거지 해장국에 우거지를 빼 달라고 하는 강심장.
새로운 음식보다 익숙한 음식을 좋아하며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으면 물릴 때까지 들르는 남자.
그와 몇 번 밥을 먹은 지인들은 나를 딱하게 여기며
데이트할 때 뭐 먹고살았냐고 걱정하시지만
정작 난 그게 뭐가 문제인 지 연애 초기엔 잘 몰랐다.
회를 먹지 않으니 메뉴를 시키면 나 혼자 다 먹어서 좋고
치킨을 닭다리 한 조각만 먹으니 1인 1 닭 시대에 돈들이 않아 좋고
돼지고기구이 대신 보쌈을 먹으니 그거대로 괜찮고
나 역시 신맛 나는 과일을 먹지 않아 집으로 들어오는 과일은 족족
신맛을 즐기는 언니님께 고스란히 공수..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가서 쥔장께 공손히 부탁드리는 것도 나.
우거지 해장국에 우거지는 2배로 먹으니 좋았으니
이거 천생연분인가..
짝수년 생 가장 웃어른은 언니는 최근 베지테리언으로 전향을 준비 중이다.
가급적이면 고기류를 먹지 않고
채소를 삶거나 볶아먹고 삶은 고구마를 주식으로 삼는다.
음식의 간을 거의 하지 않고
밥에는 꼭 잡곡을 섞어 먹으며
한 음식을 한 냄비 가득 만들어놓으면
일주일 내내 그 메뉴가 바닥이 날 때까지 한 가지만 파는 스타일.
맛난 음식이 입에 맞으면 주위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열중하며 먹고
입맛에 맞는 과자 하나 찾으면 품절될 때까지 그 과자만 먹는 걸 보면
우직한 입맛을 가졌다고 해야 할까..
각 자의 입맛이 다르다 보니
셋이 모여 살아도 우린 각자 밥상을 따로 차려 각자 밥을 먹는다.
처음엔 이 생활을 이상히 여긴 내 동거인이
[가족]이 아닌 [셰어하우스]인가 했지만..
그가 하는 음식을 언니님이 먹지 않고
언니님이 하는 음식을 그가 먹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무엇을 만들어도 망작을 만드는 망손언니의 음식은 본인만 먹을 수 있고
무엇을 만들어도 조미료가 꼭 들어가 맵 짠 메뉴가 나오는 음식은
식사 때 안주 외엔 일반 식사엔 나올 수 없으니
우리가 한 지붕 아래 밥을 먹을 때는
음식을 할 때마다 일주일은 너끈히 먹을 양을 하는 큰 손을 가진 내가
소고기 미역국, 소고기 된장찌개, 경상도식 소고깃국 등
주로 소고기가 들어가는 국과 찌개류를 했을 때
그 첫 숟가락을 함께 할 때 정도이다.
다행히도 내가 하는 음식은 둘 다의 입맛에 맞아
어느 때는 언니 입맛에 맞추기도,
어느 때는 동거인의 입맛에 맞추기도 하여
쌀 소비를 촉진시켜주니 다행한 일이다.
오래된 홀로 객지 생활 동안 나 홀로 밥상에 쓸쓸함이 극에 달한 내 동거인은
우리 셋의 합가에 남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함께하는 저녁 한 끼
그게 어려운 일일까 싶었는 데 그 평범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
합가 한 달도 되지 않아 각자의 입맛을 확인하곤 그 꿈을 접었다고 한다.
음식이 맞지 않고
주량(내 동거인은 1일 2병인데 울 언니는 1일 반잔)이 맞지 않고
밥시간이 맞지 않으니 모두 함께 모이는 식사는 연중행사급.
그럼에도 우리는 2년의 전세를 살고
다시금 집을 구해 두 번째 합가를 살고 있다.
여전히 각자 식사하며 각자의 입맛을 고수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취향의 존중>이라는 거창한 문장을 찾아내어
한 지붕에서의 각자 식사하는 상황을 포장한다.
가족이라고 꼭 같이 식사하고 생활패턴이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님을
2년 동안 몸소 깨닫고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되는 데 손위(아래)야 말해 뭐해]라는 엄마의 위로에
암묵적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입맛이 맞지 않음에 탓하지 말고
각자 입맛에 맞는 것만 먹는 것을 이해하라..
다 각자의 취향이라는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