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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02. 2022

친구는 동색? 노노 콜라주!

모임의 이유

나: 울 엄마는 가끔 모임 다녀오면, 누구는 돈도 많으면서 짠돌이고 누구는 그 나이에 지가 아직도 아가씨인 줄 아는지 쫙 붙는 청바지에 빨간 립스틱 같은 걸 바르고 나온다, 그래. 그럼 우리는 ‘엄마, 싫으면 만나지 마, 그 모임 안 나가면 되지’ 그러면 ‘싫을 거 뭐 있어,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러면서 안 만날 이유가 뭐녜, 어차피 동창인데.


너: 눈치 빠른 딸이라면 엄마한테 뭔가 야시시한 아이템 하나 선물했어야 하는 거 아냐?


나: 그게 근데 또 복잡해. 엄마도 립스틱 많거든, 빨간색만 댓 개는 될 걸. 엄마는 그 아줌마가 본인 포함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세련되게 이쁘다고 질투하는 거 같아. 한 번은 그 아줌마가 공진단 드시며 요가한다고 했는지 공진단 드시겠다는 걸 말리느라고..


너: 왜 말려 왜


나: 나처럼 엄마도 금양이라 보양은 체질에 안 맞아 모.


너: 야 너어는 진짜.


나: 암튼 나랑 다르게 울 엄마는 꽤 E형이라 사람을 만나는 거 자체가 중요해서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지내면 엄마의 욕구가 충족될 수 없을 거야.


동네 모임은 사람도 고만고만 중복돼서 여기서 만난 사람 저기서 또 만나고 그래. ‘무슨 얘길 그렇게 하냐’ 물어보면 ‘기억도 안나, 몰라’ 그런다니까. 만나서 하하하 웃고 떠들면 된 거야. 누군가로부터 ‘저번에 너 안 나오니까 모임이 재미없더라, 역시 네가 있어야 재밌어’ 이런 얘기 듣는 거 진심으로 좋아하고 뿌듯해해.


너: 어머님 진짜 사회적이셔.


나: 그렇지, 진짜로. 우리랑 같이 놀러 가면 사진 찍어 친구들한테 보내기 바빠. 우리랑은 말씀도 별로 없고 그래서 재미없나 보면 친구들한테 톡 보내는 중. 특히 언니가 엄마를 걱정해서 항상 조심하고 잔소리하는 것도 엄마가 약자로 포지셔닝돼서 별로 안 좋아하시는 거 같아.


너: 언니 입장에서는 보호자 역할하느라 그렇구나.


나: 그렇지 머. 그렇게 포지셔닝되면 뭘 해도 약해 보이잖아. 친구들이랑은 그런 거 없으니 맘 편한 듯.


자주 엄마 친구들이 전화로 한두 시간씩 고민 토로하고 신세도 한탄하고 그러거든. 엄마는 듣다가 ‘걘 왜 그러니 진짜. 그래도 네가 이해해야지 어쩌겠냐’며 한두 마디 거드는 게 다야. 오래 통화하면 피곤하니까 ‘엄마 전화 그만 끊어 끊어’ 부추기는데 방에 들어가서 계속 이어가. 전엔 항암 하면서도 그런 전화를 받더라고. 그래서 어이없어서 뭐라고 했지, 아픈 사람 붙잡고 그러는 상대방에게 화도 나고. 근데 엄마는 또 그렇게 그 관계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더라고.


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잘못된 건 아니지, 아멘.


너: 친구를 만나는 이유는 뭘까, 왜 그렇게 어떤 사람들은 친구를, 그것도 또래인 친구를 ‘주기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친구를 통해 우리는 뭘 그렇게 얻고 싶을까. 경험? 정보? 조언? 이 시점에 나랑 가장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가.


나: 내가 전에 20대 때 배우 꿈, 얘기를 친구들에게 안 한 이유가 뭘까, 그런 얘기가 분위기를 망칠까 봐 그랬을까 어쨌을까 머 그랬던 거 기억나? 그 말 한담에 생각해봤는데 모였을 때 항상 밝은 얘기를 한 건 아냐. 시댁 남편 애들 등등 다 고민 토로니까.


너: 엇 그러네?


나: (내 이유가 그렇다는 건 아닌데) 모였을 때 찐 자기 얘기를 하면 상대가 너무 조심스럽겠다 싶더라고. 예를 들어 내가 저 화두를 꺼냈다고 치면 애들이 질문들을 할 거야. 언제부터 생각하던 거야, 잘 어울려, 안정적인 직장 버리고 괜찮겠냐, 해보고 싶으면 하는 거지, 응원해 머 그러겠지.


너: 그렇지 그러겠지.


나: 응, 그 반응 이상이 안 나올 거 같은 거야. 뭐랄까, 너무 내 얘기잖아. 그래서 조심스러울 거야. 거기서 누가 ‘너 진지하게 그러는 거야?’, ‘너처럼 생긴 배우 본 적 없는데, 거울 보니?’ 그럴 거야 어쩔 거야. 너무 내 얘기라 일차원적인 반응만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 예를 들어, 시댁 얘기를 하면 어쨌든 그건 친구를 걸친 남이니까, 친구 편도 들었다가 남편 욕도 했다가 시댁 왜 그러냐고 했다가 가끔은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 등등 조금은 더 쉽고 다양한 반응이 있을 수 있는데 너는 너무 그 안에 있어서 조심스럽다는 거구나.


나: 그렇지. 맥락이라는 게 있는데 그 맥락을 건드리기가 어려운 거지. 내가 ‘만난 지도 얼마 안 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외국인’이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때도 친구들이 딱히 물어본 것도 없더라고. 너무 예상 밖 선택이라 궁금하기도 했을 텐데.


너: 그렇지. 네가 결혼한다는데 뭐 어쩔 것도 아니고.


나: 응응, 그니까. 막상 찐 구성원 얘기에는 말을 얹기가 조심스럽나 봐. 네가 그때 친구 얘기를 들으면서 ‘그 정도 말을 해도 되는 관계인지 모르겠더라’고 한 말이 떠올랐어. 그니까 그 정도 확신이 있는 관계는 아닌 거야. 내가 하는 말이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할 거라는 확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고도 내 말이 그 말이 아니라는 걸 막 설명하잖아. 특히 여럿이 모였을 때 듣는 사람보다 말을 하는 사람이 더 조심하다 보니 니 얘기도 내 얘기도 아닌 얘기들만 떠다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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