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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Apr 26. 2023

징징이의 진심은

더 말하고 표현하면 진짜 나오려나

나: 우리가 이해를 잘 못하는 어떤 상황에 놓이면 어리광을 피운다, 투정을 부린다며 상대를 저지할 때가 있잖아.


너: 너 나 지켜보냐.


나: 야, 모. 아마 화자는 최선을 다해서 표현하는 걸 텐데 청자 기준에 말이 안 되니까 상황을 전환하려고 그만하게 만들려는 거겠지?


너: 그래서 대부분 투정의 결말은 분노 섞인 울음인 건가. 근데 그게 왜.


나: 너는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까 그런 경험을 나보다 훨씬 더 자주 하겠지만 중고등 학생이나 성인 하고만 만나는 나도 생각보다 비슷한 상황에 꽤 자주 놓이는 것 같거든. 그게.. 언어의 차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 음, 그러고 보니 나도 정리가 잘 안 될 땐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하겠어서 말을 안 하거든. 그 이유 중 하나가 내 의도와 다르게 징징대는 것처럼 비칠까 봐 그래. 비슷한 얘길까?


나: 응, 비슷해. 언어를 주 미디어로 삼아 소통하다 보니 서로 언어 싱크가 맞지 않을 때 한쪽에서 표현의 벽에 부딪히면 반대쪽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 


너: 언어를 더 장착해도 여전히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정당화하지 말아라, 말대꾸하지 말아라'라면서 저지하잖아.


나: 그건 더 큰 통제가 곁들여져서? 실제로 말하는 사람의 상황을 무마하려는 시도도 많긴 할 거고.


너: 비슷한 이야깃거리로 서로 다른 상대와 대화를 할 때 어떤 상대랑은 이야기가 무난하게 흘러가는데, 다른 상대와는 조금의 진전도 없는 경우도 많아. 항상 궁금해, 진짜 언어가 최선일까. 성공적인 대화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대화를 주고받을 때면 '우리가 서로 이해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가' 싶거든. 그저 밀당의 적정선을 찾아가는 것 같아.


나: 커뮤니티 디자인에서 주민들과 동네를 함께 기획할 때 그들에게 '뭘 하고 싶냐', '뭐가 있었으면 좋겠냐'라고 물으면 안 된대.


너: 그게 참여잖아, 그들이 목소리를 직접 내는 거.


나: 그 책에서는 사람들의 경험이 그렇게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뻔한 얘기 위주로 나올 수밖에 없대. 그래서 그들이 말한 대로 준비해도 만족도가 높지 않고 참여도 잘 안 하게 되는 거지. 그렇게 직접적인 아이템을 묻는 대신 그 뒤에 가려진 욕망을 발굴해야 한대.


너: 음.. 내가 애들을 키워보니까 얘네의 욕망은 하라는 건 하기 싫고 놀고만 싶다, 이런 거야. 이 닦지 말고 자기 전에 초콜릿 먹게 두라는 거냐?


나: 네 필터를 거친 매우 평면적인 해석 아니냐.


너: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아이들과 대화할 때 표현 자체에 꽂히지 않아도 된다는 건 자주 듣긴 했는데 그렇다고 나 역시 내 언어에 갇힌 사람이라 내가 해석하는 방식이 아닌 걸 알아낼 방법이 없다고.


나: 맞아. 뭘 하지 말아야 할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뭘 하는 게 좋은 지는 훨씬 더 불명확해.


너: 욕망을 발굴한다.. 욕망이 뭔데? 하고 싶은 아이템은 적당히 눈치챌 수 있는데 욕망은 대체 뭐야. 세계 정복?


나: 그니까 말이야. 내가 전에 고민이라며 언급한 기억이 난다. 감정이나 아이템이 욕망인 건 아닌 거 같은데 좋다 싫다 하고 싶다 싶지 않다로 모든 걸 다 설명해 왔어. 내 욕망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남의 욕망을 어떻게 발굴할 수 있겠어.


너: 내 욕망을 설명할 언어를 여전히 장착 못한 것인가, 욕망이 없는 것인가.


나: 둘 다 깝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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