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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May 09. 2023

선하다고 생각하는 걸 친구로 삼아 그가 이득을 보도록

악하다고 생각하는 걸 적으로 삼아 그에 해가 되도록

나: 정의란 무엇인가 붐이 일었었잖아, 그때 너랑 나도 그 얘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너: 그랬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례들로 나를 시험했지.


나: 생각해 보니까, 그래서 정의가 뭐라는 건지 막상 얘기해보진 않았어. 거기 소개된 예시들은 결국 ‘그게 다가 아니야, 이렇게 상황을 바꿔도 같은 선택을 할 거냐’였고 그래서 절대적 정의란 없나 보네, 뭐 그렇게 넘어가버렸네. 그 붐 전과 후 사회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더라고.


너: 하버드 팟캐스트 찾아 듣고 그럴 정도로 푹 빠졌었는데.. 나는 변했나?


나: 그래서 뭐인 것 같아, 정의.


너: 옳은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


나: 옳은 건 뭔데. 너에게 옳은 게 나한테도 옳을까?


너: 움. 너랑 나로 한정 지으면 어떤 일이 동시에 옳을 확률은 꽤 높겠지만, 우리 아빠랑 나라고 생각해 보면.. 또 싸우고야 말겠지.


나: 사람마다 옳은 게 다를 수 있나.


너: 아무래도 이해관계가 얽히니까.. 옳은 것은 가치이고 이해관계는 숫자인데 그게 등치 되는 게 이상하긴 하네. 나랑 아빠가 생각하는 옳은 방향이 진짜 다른가. 서로 일단 반대하느라 그런 얘기는 해본 적이 없어.


나: 전에 한 책에서 ‘선하다고 생각하는 걸 친구로 삼아 그가 이득을 보도록 결정하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걸 적으로 삼아 그에 해가 되도록 결정하는 게 정의’라고 하더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저런 말이었어.


너: 음, 선과 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라는 거구나. 온전히 내가 생각하는 선, 악이 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분명 어떤 건 더 끌리고 어떤 건 더 불편한데 설명을 잘 못하겠고, 편견이나 잘못된 정보에서 자유롭다는 자신도 없어서 결국 아무 의견을 가지지 않고 내보이지 않는 선택을 하게 돼.


나: 만약 네 아이들이 친구들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은 네 아이를 고지식하고 사회성 없다고 하겠지?


너: 그래, 엄마로서 나도 고민하다 이도저도 아닌 조언을 하게 되겠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게 내가 더 선하다는 우월감을 가지기 위한 게 아니라는 걸 아이가 친구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어. 아이가 침묵하든, 침묵하는 친구를 사귀든 할 텐데 생각만 해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야.


나: 가끔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친구들을 만난 적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 우정 이런 말에 현혹되어 찝찝하고 옳지 않은 일들을 방조하거나 참여했을 테니까. 아마.. 기억 안나는 수준에서는 이미 그래 왔겠지. 선과 악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 사회는 악을 못 본 체하는 방조자들만 양산하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게 인생이라고 하겠지.


너: 회사에서 ‘접대’를 받을 때 나는 그게 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식사나 술 같이 한다고 내가 그들을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고 그 식사 안 먹어도 그만이니 말이야. 식사 후 나는 항상 먼저 집에 돌아갔고, 다음날이면 자주 지저분한 얘기들이 오갔어. 몇몇 동료들이 나한테 집에 가지 말라고 잡았었는데 내가 남아있으면 가지 않을 곳을 내가 없으면 가는 거고, 나를 잡은 동료들은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방식이 ‘악’을 같이 경험하는 거라는 걸, 그리고 많은 경우에는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고 그걸 볼모로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게 이상했어. 뭐.. 물론 옛날 얘기야.


나: 여기 커뮤니티에 ‘사람 급 나누는 것 좀 그만하세요’라는 글이 또 올라왔어. 어떤 사람이 사람들의 남편 직업을 언급하면서 비싸면 비싼 대로 싸면 싼 대로 ‘남편이 **인데 저런 백을 들고 다니냐’는 종류의 뒷담을 한다는 거야, 글쓴이는 뒷담이 오가는 자리에 있었을 거고 아마도 저지하지는 않았을 거고 그래도 그 상황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글을 올렸겠지. 사람들이 댓글에서 천박하다느니 거리 두라느니 그러면서 뭐라고 해. 그 뒷담 하는 사람은 이런 얘기가 오가는지 관심도 없고 계속할 것 같거든, 내 생각엔.. 그 사람은 그게 자기가 사람들과 소셜라이징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 다들 그 뒷담이 잘못됐다며 그 명제 자체가 옳지 않다는 판단을 하면서도, 그 수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의식, 의식 중에 애쓰게 될 거야.


너: 선을 친구로, 악을 적으로 두라.. 난 지인들이 어떤 결정을 해도 다 각자의 사정, 이라면서 거리를 둬, 그게 존중의 방법이라고 어디선가 배운 것 같아.


나: 나도 그래, 뭐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삶을 사는 주변인들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선, 악 너무 강한 느낌이라 자꾸 중간에 머물려고 하게 돼.


너: 나도 그래. 음.. 누군가가 내 삶의 방식에 참견(?)하면 아마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거야. 근데 왠지 상대 말을 듣지도 않고 참견이라는 행위에 열받을 거 같아. 아빠랑 티격태격하는 것도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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