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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n 06. 2023

역할과 서비스의 애매한 경계

깔끔한데 답도 아냐

너: 시댁은 잘 다녀왔어?


나: 응, 가족 중 올 1월에 아이를 낳은 커플이 있거든. 이번에 갔을 때 그 아빠는 요트 여행 가고 엄마는 우리랑 저녁 먹는 자리에 나왔는데 네일아트가 엄청 화려한 거야. 일과 사회생활을 다 다시 시작한 지 좀 됐대.


너: 오우야, 나는 그즈음 오늘 죽나 내일 죽나 그런 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거 같은데 대단하다야.


나: 어린 시절 그녀를 봐준 유모가 지금 자기 아이까지 봐주고 있다더라고.


너: 그래, 그렇게 믿으니까 온전히 맡기고 복귀했구나, 복이다.


나: 그 유모는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르겠는데 이제 나이가 좀 됐지. 그런데 자기 생활에 꽤 만족하는 것 같아. 자기 딸도 유모 하라고 불렀대.


너: 오, 정말 잘 맞았나 보다. 딸에게까지 추천할 정도면. 나는 요전에 지인을 방문했는데 그 집에도 메이드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 관계를 보는 내가 너무 불편한 거야-


나: 기억나, 네가 그때 해줬던 얘기.


너: 응, 그 나라도 메이드가 꽤 일상적이라 어딜 가도 가족과 함께 있는 메이드를 볼 수 있었거든. 그들의 관계는 아마 문제가 없었을 거야. 나도 가끔 힘들 때 청소업체에서 사람을 부르는데, 그때도 뭔가 편하지가 않아.


나: 움 왜 그럴까? 그 조카 커플을 보면서 매우 신선했어. 그 엄마 아빠는 각자 아이에게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거나 불편해하지 않아. 아이가 자기네 생활을 정복하지 않은 게 너무 자연스럽더라. 마치 원래 자기의 역할이 아닌 것 같이 말이야.


너: 유모 문화가 자연스러운 환경이라 그런가?


나: 유모의 역할이 서비스로 깔끔하게(?) 분리된 게 낯설었어. 그 유모도 딸을 부를 정도면 그 역할에 꽤 만족하는 것 같고.. 고객도 서비스제공자도 다 만족하는 그 상황에서 어리둥절한 사람은 나뿐이었달까. 아마 나는 아직도 유모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나 봄.


너: 그러게.. 아마 너는 일할 때 유모가 보는 건 어쩔 수 없고 일 끝나면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본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저녁약속이 아이를 보는 것보다 우선시된 게 낯설었나 봐.


양육 기간 동안 내가 나의 다른 역할을 다 뒤로하고 엄마역할만 집중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다고 그 역할을 깔끔하게 아웃소싱한 그 상황을 듣는 게 마냥 최고라는 생각도 안 들고 마음이 복잡해!


나: 사업이라는 게 그렇게 발굴되잖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서 수익화하는 거.


너: 예를 들어 나는 대리운전, 발레주차를 맡길 때는 그 일을 해주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이 전혀 불편하지 않아. 하지만 만약 내가 아이의 양육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맡긴다고 생각하면 일을 맡기는 나, 일을 맡아주는 상대 양쪽에 대해 벌써 마음이 복잡해. 죄책감에서 자유롭지도 않고.


나: 네 일을 떠넘기는 것 같나?


너: 음.. 뭔가 엄마가 그 일을 해내야 아이에게 좋다고 주입해 와서 그런가? 그러니까 나한테는 그게 서비스가 아니라 역할인거지. 그래서 그 지인의 메이드를 봤을 때에도 저런 일을 굳이 메이드가 해야 하나 하는 맘도 생기고, 그 메이드가 가족도 아닌 것이 외부인도 아닌 것이 출퇴근 없는 어색한 수직관계가 일상인 것도 불편하고.


나: 간병인 서비스도 가족들이 정말 시간을 낼 수 없을 때 최후의 보루로 쓰잖아(아닌가?). 우리에겐 많은 역할이 서비스로 분리가 안되다 보니 돈으로 산다는 게 낯선가 봐.


너: 전통적으로 사랑을 기반으로 한 희생으로 틀어막던 엄마, 딸, 며느리의 일이 특히 그런 것 같아. 하찮다고 여겨지는 일이기도 했고 나 역시 어쩌면 상당 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나: 그걸 서비스화 하는 건 엄마 딸 며느리인 우리가 어디까지 환영해야 하는 걸까? 진짜 야 뭐가 뭔지 헷갈린다. 결국 내가 그런 걸 다 돈으로 해결할 정도로 돈이 많다면 나는 이런 고민을 안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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