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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n 12. 2023

스트레칭이랑 근육이 찢어지는 건 완전 다른 얘기

결국 자기는 자기가 가장 잘 아니까

나: 요가를 갔는데 자세를 바꿀 때마다 쌤이 하는 말이 있어.


너: 뭔데?


나: 고통은 잠시 머물다 간다, 고통을 응시하라 뭐 그런 말들.


너: 포즈의 고통으로 인생을 통찰하네.


나: 맞아. 그러면서 무리할 필요는 없대. 아니지, 절대 무리하면 안 된대. 스트레칭이랑 근육이 찢어지는 건 완전 다른 얘기라는 걸 하는 거 같아.


너: 초심자들이 그 차이를 어떻게 알아?


나: 그렇긴 하지만 결국 자기 몸은 자기만 아는 거니까.. 스트레칭은 고통의 강도가 점점 작아지는데 찢어지는 건 처음보다 나중이 더 괴로우니까 다른가? 그러면 잠시 머물다 가는 고통이 스트레칭이고 영원히 남는 건 근육이 찢어지는 걸 말하나?


너: 홈.. 그 얘기를 들으니 평상시 나의 건강한 상태라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그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 저항을 해서 다시 돌아오지.


나: 여기 커뮤니티에 남편이 쌍욕을 한다는 푸념글이 올라왔어. 남편이 이제는 아이들 앞에서까지 자기한테 쌍욕을 한다는 거야. 맥락 상 그 커플은 우리 나잇대 혹은 그보다 어린것 같은데.. 그 글을 보면서 나도 딱 네 말처럼 생각했어.


너: 헐.. 지금 2023년 맞지? 그게 푸념이야? 당장 액션을 취해야 할 거 같은데?


나: 그 상황이 그녀의 원래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고 되돌려 놓으려는 액션을 바로 취했어야 하는데 지금 그녀는 남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와 무력감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더라고. 사실 아이들 앞에서 욕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 이미 그 쌍욕들을 받아냈다는 거잖아.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어.


너: 홈.. '맘 놓고 미워할 수도 없는 가까운 사람'이 주는 고통은 잠시 머물다 가지 않잖아. 그 외에도 피할 수 없지만 평생 가는 고통은 너무 많아. 그니까 근육이 찢어져버린 거지. 그런 건 어떡해?


나: 가볍게 말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 고통이야 큰 흉터로 남았더라도 나의 다른 일상을 일단 돌려야 하지 않을까. 움 잘 모르겠다.


이번에 시댁 갔을 때 남편이 '오늘 모인 이 사람들은 이혼을 했거나,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거나, 40여 년을 데이트하면서도 결혼 생각이 없거나 제대로 된 커플이 없어! 하지만 적어도 다들 행복해.'라는 농담을 섞은 얘기를 하더라고. 남편 친구들은 이혼 안 한 친구들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야. 그들은 그 둘의 관계가 산산조각 나기 전에 '이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 각자에게 더 행복한 선택을 하나 봐.


너: 움..


나: 학생들에게 스몰톡으로 학교 잘 다녀왔냐, 주말 잘 지냈냐 그런 얘기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걸 질문해야 할 때가 있어. 수학에서 소논문 같은 걸 작성할 때 주제를 개인 관심사로 잡는 게 중요하거든. 그런데 정말 많은 아이들의 대답이 '그냥 뭐... 딱히 없는데..' 그래. 그럴 땐 지금 듣고 있는 과목 위주로 다시 생각해보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재미있는 거, 좋아하는 거, 시험 끝나면 하고 싶은 거' 이런 게 좀 더 명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 수학의 주제로 삼을 만한 건 없다, 그런 뜻 아닐까?


나: 그럴 수도 있어. 아무리 내가 아무거나 얘기해 보라, 고 해도 필터를 열심히 돌리겠지.


너: 음.. 지금의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 하지만 조만간 나 역시 내가 우려하는 학부모 루트를 타게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거든. 그게.. 아이들에게 어떤 길을 걷게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니까 지금 서 있는 트랙이 아닌 저 멀리 있는 목적지만 보라고 해서 그런 건가 싶다.


나: 우리가 어렸을 때 훌륭한 사람이 돼서 효도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잖아. 미디어에서도 그렇게 아직도 말하고.


너: 나는 (부모와 사회에) 자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지 않아. 그러면 좋기야 하겠지만 자랑스럽기 위해서 자기의 상당 부분을 나에게 숨길까 봐 조심스러워. 아이들이 건강한 일상이라는 게 뭔지, 평소에 느껴야 할 안정적인 감정 상태가 어떤 건지 등을 알았으면 좋겠어.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회복탄력성을 장착하길 바라.


나: 맞아. 울 엄마는 친구분들에게 자주 뭔가를 자랑하고 싶어 하거든. 근데 뭐.. 뭐가 있겠어? 그래서 가끔 '딸과 사위가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그런 아이템을 드러내셔.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남편과 사이가 안 좋으면 엄마가 불행하겠다, 남편과 사이가 안 좋더라도 절대 엄마에겐 말할 수 없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야 말아.


너: 움... 그게 바로 내가 걱정하는 모습이고 나 역시 같아. 잠시 머물 일들과 영원히 함께 짊어질 것들을 정말 잘 알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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