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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ul 10. 2024

'아'를 '아'로 듣는 건 능력

개떡은 개떡이고 찰떡은 찰떡인데 그게 왜 이리 어려운가

1. 개떡을 말하면 개떡으로 알아듣는 사람

2. 개떡을 말하면 찰떡으로 알아듣는 사람


제 주위에는 2번 유형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전달한 말보다 더 깊이 있는 맥락을 읽어주고,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자극해 줍니다. 내가 개떡을 말했는데 상대가 찰떡까지 알아주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경험입니다.


그들에 둘러싸인 저 역시 2번 유형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아니었어요. 개떡이 찰떡이 되려면 먼저 개떡을 있는 그대로 듣고, 그다음에 숨겨진 것들을 조합해서 찰떡으로 발전시켜야 하는데, 저는 그 과정을 건너뛰고 원래 제가 쥐고 있던 일반적인 찰떡을 여기저기 들이미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제 지인들은 개떡을 개떡으로 듣고 그로부터 파생된 찰떡을 내어놓는 사람들이고, 저는 어떤 개떡이 들어와도 제 찰떡을 내어놓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동안 몰랐는데, 저 진짜 잘 안 듣는 사람입니다. 저는 상대가 전하는 말의 전체를 듣기보다, 그 속에서 몇몇 단어들을 뽑아내고 이를 제 직간접 경험과 연결한 반응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단어 몇 개에 꽂히면 상대의 말을 끊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단어가 인풋으로 들어오면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고 그때부터 듣는 모드가 아닌 생각하는 모드로 전환하고 급성(!) 아웃풋을 내어놓습니다. 그동안 티가 잘 안 나서 몰랐다가 (또는 친구들의 수많은 '그게 아니고 내 말은' 순간들을 기억에서 지웠거나) 두둥 강적을 만났습니다. 바로 남편입니다.


남편과 대화할 때 제가 빨리 결론을 내리면 남편은 그거 아니라고, 다시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듣기에 같은 얘기를 반복합니다. 결혼 초반에는 남편이 제 속도를 못 따라온다며 나이브하고 거만하게 생각했습니다. 뱅뱅 돌아 결국 제 결론으로 돌아오곤 했으니까요, 물론 진짜 전혀 다른 얘기였던 적도 있지만요. 남편은 그 뱅뱅 도는 과정이 필요한 사람이고 저는 결론이 똑같으면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의도하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면 저는 같은 얘기라고 퉁치나 봐요. 그래서 자주 '그게 아니고 내 말은' 상황에서 상대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생각하며, 뭐가 '그게 아닌지' 알아차리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결국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 과정에서 잔뜩 짜증 난 저에게 남편은 즐거운 대화였다는 후기를 전하곤 합니다. 서로 다른 프로세스를 거치는 게 분명합니다.


상대의 말을 그대로 듣는 걸 진짜 못하는 것 같아요. 상대의 입장 20%, 내 경험 80%를 섞다 보니 했던 얘기, 뻔한 얘기만 하게 되고요. 온전히 상대의 입장에 서는 게 가능한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상대 입장의 비율 20%로는 잘(!) 듣는 사람이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제가 그동안 이해한 것들이 사실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각은 꽤 충격적입니다. 저는 제가 이해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그게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게다가 저의 이런 건너뛰는 성향은 제가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줄 테고, 그것 역시 잘 해온 건 아닐 거라는 게 꽤 놀랍습니다. 제 방식이 문제다, 고치겠다 머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살면서 이런 방향으로 최적화했을 텐데 그동안 제 방식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가 알게 되었고 그 방식을 곱씹는 중이랄까요.


오늘은 개떡은 개떡으로, 찰떡은 찰떡으로 일단 알아듣고 싶다는 바람으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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