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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탐구생활

결론을 내지 않으려면 연습이 필요해

달리는 계산calculating, 머무는 생각thinking

by 오월

어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생각보다 계산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자주 발견합니다. 큰 일로는 입시, 입사, 사람을 만나는 일 등이 그럴 텐데요, 그 외의 더 작은 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이득일까 손해일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할까. 늘 더 나은 답이 있다는 전제로 머릿속 회로가 작동하고,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빠르고 적절한 결론을 내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몸에 밴 거죠. 하지만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 보면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분주한데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더 나은 답이 있다는 생각 때문일 거예요.


생각thinking은 계산calculating보다 훨씬 느리고 불편한 일입니다. 계산이 정답을 찾는 일이라면, 생각은 모르는 것을 붙잡고 있는 일이라고 해요. 어떤 감정이 생겼을 때 곧장 원인을 추측하기보다 그 감정을 그냥 바라보는 일일까요. 결론이 목적이 아닌 상태로 머무르기, 생각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멋진 답을 몇 초 만에 보여주는 AI, 이미 내가 좋아할 것을 예측해 주는 알고리즘이 일상인 시대 덕분에 우리는 모르는 상태를 견디는 힘을 점점 잃어갑니다. 모르는 건 불편, 느린 건 잘못인 세상에서 생각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생각하는 힘은 속도를 늦추는 데서 자란다고 하니, 판단을 유보하고 질문을 오래 품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질문의 방향이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할 때 비로소 계산이 아닌 생각이 시작된다고 해요. 누군가에게 서운함이 밀려올 때 ‘저 사람은 왜 그랬을까’보다 ‘내가 서운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를 묻는 식일까요. 내 안을 들여다보는 건 불편한 감정들과 마주칠 수도 있고 유쾌하지 않지만,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앉아 있는 게 바로 생각하기 아닐까 싶습니다.


쓰기는 생각의 좋은 연습 도구라고 해요. 머릿속을 맴도는 감정을 문장으로 옮기려면 그 감정의 형태를 오래 살펴봐야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하루 한 편 쓰기를 하고 있는데요,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동안 생각이 깊어집니다. 쓰다 보면 의외의 단어와 문장이 불쑥 나올 때가 있고, 거기서 다시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어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나를 읽는 것 같은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내 안에 하나의 방을 만들고, 그 방 안을 조금씩 채워가는 기분. 이건 계산보다 생각에 더 가까운 일일 거예요.


계산은 효율을 키우지만, 생각은 나를 깊게 만듭니다. 결과를 바로 주지 않지만, 대신 방향을 조금 바꿔놓습니다. 계산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지만, 생각은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 낯섦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알아차리게 됩니다.


생각은 답을 향해 달리기보다, 그 답이 생기기 전의 혼란을 견디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진짜로 성장하는 순간은 바로 그 혼란에 머무르는 느린 시간 속에 있습니다.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생각하다 보면 자기 삶의 결을 조금 더 섬세하게 느끼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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