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를 결심
어젯밤 꿈에서 지금의 제가 수능을 다시 보기로 결정하고 실제로 시험을 봤습니다. 목적은 분명했어요 — 졸업한 그 학교, 그 학과에 다시 들어가는 것. 동아리는 그리웠지만, 전공을 다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건 추억을 되짚는 일이 아닙니다. 그저 선택이라는 오래된 감각을 되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다닐 때 저는 늘 성적에 맞춰 주어진 선택지를 택했고, 취업이 잘 될 거라며 주변이 권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 시절 대부분이 하던 라떼의 경로를 저도 따라갔죠.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내가 정한 길, 나에게 맞는 길을 걷고 있다’는 감각은 없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줄기는 통제 불가능한 채로 두고, 동호회나 취미 같은 가지치기로 위안을 삼으며 그렇게 사는 게 자연스러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무언가가 마음 어딘가에 계속 남아 있었나 봅니다. 회사를 그만둔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요.
꿈속의 저는 이미 그 학교를 졸업한 지금의 저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들에게 말했죠.
'나, 수능 다시 보려고-'
꿈속에서 그 말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오래 미뤄둔 결심의 회수였습니다. 그 과목들을 다시 공부해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번엔 내가 선택해서 그 자리에 가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도착 지점이 같더라도, 이번엔 다를 거라고 생각했나 봐요. 저도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꿈은 금세 바뀌어 저는 벌써 수업 중에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어린 학생들이 있었고, 저는 노트를 펴서 필기를 하고 있었어요. 같은 교실, 같은 책, 같은 과목이었지만 분명히 달랐습니다. 저는 머물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머물기로 선택한 사람이었어요. 그때는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갈팡질팡하는 어린 학생들을 향한 안타까움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 수업 시간에, 제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새로운 것을 택하는 걸 더 용감하다고 여깁니다. 같은 곳에 머무르거나, 같은 길을 다시 걷는 건 겁이 나서 안전을 택하는 일처럼 보이죠.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닌가 봅니다. 이미 걸었던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다시 걸어 보는 것, 어쩌면 그것도 가장 근본적인 변화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어요. 방향에 집중하던 것에서 벗어나 주체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아침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새로운 걸 택해야만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니! 같은 길이라도 내가 고른 발걸음으로 다시 걸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삶이라는 걸 그동안 왜 몰랐을까요. 선택의 본질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가 결정하느냐에 있다는 말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동안 '다시 공부를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거냐'는 질문에 늘 답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곳으로 돌아가서 이번엔 진짜 어떤지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