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의 시간’으로 사라지는 학창 시절에 대하여
우리는 본능적으로 미래의 성장을 기대하며 기꺼이 현재의 노력을 내어줍니다. 지금의 노력은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가 되고, 다음 단계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한 발판이 되죠. 우리는 늘 다다음을 계산하며 살아갑니다.
이 태도는 교육 현장에서 조금 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데요, 학창 시절, 특히 고등학교 3년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대학입시라는 미래에 종속시킵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선택과 경험은 '입시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단 하나의 필터를 거쳐야만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수시 전형은 과정을 평가한다지만 실제로는 학생의 경험을 입시에 맞춰 조직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동아리, 프로젝트, 탐구 활동의 기록은 배움의 흔적이라기보다 입시에 유리하도록 다듬어진 문장으로 채워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성 평가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학생의 개별적인 성장은 결국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정량화되곤 해요. 그러다 보면 학창 시절의 자연스러운 배움과 감정의 순간은 기억되지 못한 채 희미해지기 쉽습니다. 친구와의 작은 협력, 어렵던 개념이 이해되는 순간의 기쁨, 교사와의 대화 속 미세한 변화 같은 배움의 경험은 입시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치가 줄고 기억 속 자리도 좁아집니다.
국제학교의 Prediction(예측점수)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교사는 시간이 흐르며 학생이 보여준 변화의 궤적, 이해의 속도, 도전의 태도를 꾸준히 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에 예상되는 성취를 기록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성적을 올리려 노력한 태도도 좋은 성적만큼이나 중요해요. 입시용 활동을 만들 필요도 없고, 무엇을 포장해 보여줄 이유도 없이 학교에서의 꾸준한 배움과 태도가 그대로 prediction으로 이어집니다. 학교에서의 시간이 대학 입맛에 맞는 데이터로 가공되지 않습니다.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며, 고등학교를 하나의 완결된 시기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지금 배우는 것’과 ‘내가 지금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지’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상적으로는.
수능과 final exam도 비슷한 맥락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수능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에 고등학교의 많은 순간이 오직 수능을 중심으로만 돌아갑니다. 졸업 시기가 되어도 그동안의 시간을 정리하거나 감정적으로 마무리하기보다 수능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분위기가 더 강합니다. 고3 겨울, 수능과 졸업 사이 그 텅 빈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12년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고 정리할 기회도 없이 갑자기 다 끝나버렸다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final exam은 이름에서부터 마침표의 결을 드러냅니다. 학생들은 한 학년 또는 두 해 동안 배운 내용을 정리하며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을 마치는 순간 그 과정이 완전히 끝났다는 실감을 합니다. 그렇게 학교 시절과 각 과목이 하나의 완전한 경험으로 남고, 학생들은 그 마침표를 지나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동합니다.
final exam을 앞두고도 대학 입시와 직접 관련 없는 동아리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거나, 약속된 행사에 끝까지 책임감을 보이는 국제학교 학생들에 대해 한국 부모님들은 걱정합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굳이 그걸 해야 하느냐고요. 심지어 final 직전에 가족 여행을 떠나는 다른 나라 가족들의 이야기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 역시 수능세대이기에 부모님들에 깊이 공감해요. 아무리 다르게 생각하려 해도 ‘지금의 시간은 미래를 위한 도구’라는 감각이 제 안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어느 시스템이든 장단점이 있고 어떤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final exam과 prediction도 그에 따라 지원 가능한 대학이 달라지고요, prediction을 잘 받지 못하면 쌤에게 항의를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고등학교 시절이 대학이라는 미래와 너무 강하게 연결되면 고교 시절을 그 자체의 독립된 서사로 마무리하기 어려워진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들에게 각 단계의 배움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교육과 평가 구조가 자연스럽게 결정합니다. 대학을 가지 못하면 학창 시절이 의미 없어지고, 취업을 하지 못하면 대학 경험이 가치를 잃는 '조건부 의미 부여'의 뿌리는, 현재를 미래를 위한 도구로만 여기는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