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고 존재감도 지키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균열들이 생깁니다. 가벼운 질문 하나가 누군가의 깊은 마음을 건드리는 순간이 있고, 그 흔들림이 아주 작은 틈으로 새어 나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 틈은 말과 표정보다도 빠르게 움직여서 공기를 미세하게 바꿉니다.
- 숙제를 안 보냈던데요?
- 거의 다 했는데… 찢어버렸어요. (아마 부모님과 다툰 듯한 중얼거림)
- ... 괜찮아요?
- (그렁그렁) 괜찮아요. 근데 그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아요.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뫄뫄뫄를 해봅시다.
학생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제가 자기감정에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어난 일을 말했고 저는 그가 감정을 더 꺼내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그의 감정은 그 자리에 두고, 우리의 일상인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의 감정은 여전히 그의 안에 있고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니까요.
학생이 그 얘기를 더 하고 싶지않다고 했을 때, 이효리 씨가 핑계고에서 말한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 일상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밥을 먹다가 내가 갑자기 눈물이 좀 났어. 상순오빠가 '어, 너 울어?' 그러길래 내가 '아냐, 하던 얘기 계속해' 그랬더니 '그래서 우리 세금이 어쩌고 저쩌고..'
감정은 종종 이렇게 흘러나오곤 해요. 감정 소유자는 괴롭지만 그걸 지금 당장 함께 다루고 싶지 않을 수 있어요. 어떤 감정은 함께 볼 수 있게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지지만, 어떤 감정은 주인이 원하지 않게 갑자기 새어 나와 버려요. 감정 소유자가 괴로운 건 마찬가지여도 한쪽은 공유된 것이고 다른 한쪽은 아직 공유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터져버린 감정은 누군가가 손을 대기에는 너무 뜨겁고 너무 빨라서, 사실 아직 그 사람의 내부에만 있어야 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다급하게 위로를 얹거나, 다독이거나, 부드럽게 조언을 건네면 이상하게 마음이 어긋납니다, 어딘가 틀에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자기 안에서 이미 벅찬 감정의 주인에게 외부의 반응이 들어오는 순간 시선과 에너지가 갈라집니다. 나의 감정에 머물러 있어야 할 힘이 상대의 표정 말투 분위기로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의 감정이 터지는 장면에 우리는 멈칫하게 됩니다. 들어가야 할지, 나서면 방해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빠르게 계산하지만, 언제나 어렵습니다. 감정을 본 이상 모른 척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너무 깊이 스며들기엔 상대의 리듬을 침해할 것 같아 조심스러워요.
그럴 때는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 나는 지금 외부인인가, 아니면 초대받은 사람인가. 내가 혹시 이 사람이 정리되지 않은 자기감정을 잘못 설명해 내도록 유도하는 건 아닌가.
감정은 관계의 진입을 허락하는 문이고 그 문은 감정의 주인만 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문 앞에서 손을 대지도 않은 채 조용히 서 있어야 할 때가 많아요. 관찰자로서의 태도는 아주 담백하고 단순합니다. '괜찮아? 필요해지면 말해.'
문을 억지로 열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문이 닫혀 있을 때는 닫힌 대로 두고, 열릴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발을 살짝 들여놓을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누군가의 감정이라는 개인적인 방 앞에서, 우리는 침묵과 존재감을 동시에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해요. 우리의 감정이 아닌 이상, 우리는 다시 일상의 리듬을 따라가야 합니다. 조심스럽지만 과하지 않게 감정의 주인이 스스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을 만큼 공간을 넓게 남겨두면서, 흩어진 숨이 제자리로 천천히 돌아가도록 시간을 내어주면서.
누구에게나 자기감정은 어렵고 복잡해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는 권한은 언제나 그 감정의 주인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그 결정을 존중하며, 때로는 가까운 사람으로서 때로는 조용한 외부인으로서 원래의 공기를 지키는 역할을 하면 돼요. 네 감정의 주인이 우리가 아님을 인정하면서, 그만 울고 침착하게 말해보라며 다그치지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