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같은 선에 서는 게 능력이 아니어야
동네 피아노 학원 정도의 아주 작은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피아노 연주회에 다녀왔어요. 객석과 연주자 사이에 거리라고 부를 만한 게 거의 없어서 피아노 건반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피아노 프로그램에 두 명의 소프라노가 함께 했어요. 숨소리와 손의 움직임이 여과 없이 전해지는 자리에서 연주와 노래를 듣고 보는 경험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감각을 자극했습니다. 그 장면에 압도되어 문득 이 분들이 이곳에서 이 공연을 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능력이라는 단어를 구체적인 형태로 관찰한 경험이었습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르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자주 잊힙니다. 같은 시간을 들여도 이해 속도가 다르고, 같은 설명을 들어도 받아들이는 깊이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같은 평가방식으로 결과의 합불을 확인하며 자라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시험 점수, 등수, 합격 여부처럼 숫자로 정리된 결과가 능력의 전부인 것처럼 취급되는 사회를 모른 척해요. 어떤 방식으로 가장 무리 없이 도달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까지 감당 가능한지, 무엇을 유독 어렵게 느끼는지는 충분히 살피지 못한 채 다음 단계로 밀려갑니다.
교육이란 '무엇을 더 잘하게 만드는 과정' 이전에 '자기 역량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애써 끌어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지점, 반복과 도움이 있어야 닿을 수 있는 지점, 그리고 어떻게 해도 닿지 않고 재미도 의미도 찾기 어려운 지점을 구분해 보는 것 말입니다. 남보다 수치적으로 더 잘하는 걸 찾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이야기예요.
과외나 학원 같은 외부 자원은 그 지점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반복과 도움이 있어야 닿을 수 있는 지점을 조금 더 연장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이고 교육적일 수 있어요. 다만 그것이 진짜 능력 향상을 돕는지, 아니면 억지로 끌고 가는지는 잘 살펴봐야 합니다. 과외쌤인 저 역시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과제를 대신 해결해 버리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저도 학생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기한 내 제출하고 나면 ‘그래도 해냈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착하고 말아요. 그 과정에서 학생의 실제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는 흐려져 버립니다. 어쩌면 진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학생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한정된 자원인 시간 앞에서 저와 함께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무능력자가 되어버려요.
문제는 억지로 잘 해내는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스스로도 자신의 능력을 오해하게 된다는 거예요. 할 수는 있는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하라니까 하지만 딱히 왜 하는지는 모르겠는, 설명하기 애매한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그 결과 스스로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거나, 반대로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해요. 둘 다 정확한 평가는 아닐 겁니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지 않았을 때의 나 vs. 도움을 받았을 때의 나를 구분해서 바라보게 하는 일 같아요. 그래야 어디까지 혼자 가고, 어디부터 도움을 빌릴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방향이 있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채 적절한 도움을 받아 성취하는 건 분명 대단한 능력이에요.
자기 능력과 한계를 제대로 알게 되면 타인의 능력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는 쉽게 해내고, 누군가는 오래 걸리거나 그만두는 이유를 성격이나 태도로 단순화하지 않게 돼요. 각자 지닌 능력의 크기와 위치가 다르다는 말이 추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실제 감각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비교가 아닌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교육은 모두를 저 높은 선에 세우려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보게 만드는 과정인지도 몰라요. 그 위치가 단순히 높고 낮음으로 해석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때, 우리는 인간과 사회를 더 이해할 수 있고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그리고 사회에도 조금 더 정직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