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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10. 2022

아무도 채택하지 않는 모범답안 뿐

너는, 내 알에 노크해주겠니

너: 친구가 뭔지 궁금해, 그니까 다른 존재랑 친구는 뭐가 다른지. 지금 우리 나잇대에서의 친구라는 걸 생각해보면.. 너무 다르니까.


나: 그렇지. 가족, 회사 동료 등등이랑 다르지 달라. 친구는 꼭 있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깍두기 같은 느낌이 있지.


너: 이 시점에서 다른 존재들은 하루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직접 같이 보내고 같은 사건을 경험하는데 친구들은 그렇지는 않잖아. 내가 내입으로 전달하는 것들만 알 수 있고.


나: 그러네. 학창 시절이나 같은 곳에 속한 친구는 (이해관계야 다르지만) 마치 직장동료처럼 비슷한 걸 경험하고 서로 아는 사람을 욕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경험도 불만의 대상도 달라.


너: 친구들이랑 주기적으로 만나잖아. 안 만난 지 오래되면 누군가가 '본 지 오래됐다, 함 봐야 하지 않겠니' 그러면서 만나고 만나면 또 마냥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3개월에 한 번 만나도 3년에 한 번 만나도 다른 게 없어. 음.. 다르지 않아서 만나나? 암튼.


나: 나는 만나지 않을 때랑 만날 때의 느낌이 좀 다르긴 해. 만나지 않을 땐 '다들 잘 살고 있나' 몽글함이 있는데 주말에 눈치 보면서 애들 맡기는 등 다 제쳐두고 만날만큼 그 만남 자체에 큰 애틋함이 있는가,라고 했을 때 머뭇거리게 돼.


너: 하루라는 건 가족, 일 등 물리적인 것들로 가득 차서 돌아가잖아. 그런 매일을 살면서 일상이 삐걱거리지 않길 바라니까 어느 정도 나도 포기하고 상대에게 포기를 강요하기도 하면서 끼워 맞추면서 살게 되잖아? 인생은 또 얼마나 예상 밖의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근데 '나'라는 사람은 그 물리적인 것들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지. 감정, 취향, 욕구, 욕망... 게다가 감정 하나만 봐도 얼마나 복잡해. 호오, 희로애락, 공포 분노 행복 혐오 슬픔 놀람 등등.


나: 그렇지. 우리가 같이 사는 구성원은 달라도 각자의 루틴이 있고 뭐 먹을지 고민하고 청소 귀찮아하고 뭐 그런 비슷한 패턴으로 살겠지. 그렇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개인적인 고민은 너무 다를 거 아냐.


근데 이상하게 각자 매우 다른 사람들인데도 막상 대화에서 나오는 건 뻔한 것들밖에 없어. 가끔은 같은 경험이더라도 큰길에서 벗어난 옵션에 대한 고민도 있을 텐데 그런 얘기는 거의 안 나와. 아무도 채택하지 않는 모범답안 뿐이야.


너: 나라는 집합은 다른 경로들을 통해서 내가 하지 않았던 경험이나 감정이 들어오면서 확장되지. 가족 직장 동료 등등이랑은 물리적인 교집합이 있지만 친구들이랑은 옛 추억 말고는 딱히 이렇다 할 교집합이 있는 건 아니고. 그럼 친구는 교집합을 만들 게 아니라 나라는 집합 안에 들어와서 나를 확장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나: 움. 내 친구들과 나는 서로에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나, 나도 그걸 기대하고 있나 생각 좀 해보자.


너: 그걸 생각해봐야 안다, 아닌 거지. 지금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대화하는 방식 때문인가' 싶어서 너도 수다에 꽂혀있는 걸 거야.


나: 맞는 거 같아. 알을 깨고 나온다, 고 하잖아. 알은 자극을 받아야 깨지는 건데 막 오은영 선생님처럼 나보다 너무 잘 알고 나를 다 들여다보는 것 같은 사람이 항상 우리를 자극할 순 없고. 그 자극은 너무 크고 막연하기도 하고. 그래서 비슷비슷한 친구들이 내 알 밖에서 노크라도 해주는 거지. 똑똑, 오월아, 여기도 길이 있네, 이리로 나와도 안전해, 요정도는 괜찮다야. 머 이런.


너: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역할을 한다면 좋을 텐데. 그러면 일상의 복잡한 감정들과 경험에 맞닥뜨렸을 때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싶고 그 얘기를 듣고 싶고 그럴 거야. 지금처럼 '함 만나야지'나 '생일 축하해' 말고 단톡방에서도 좀 더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가 오갈 수 있을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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