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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09. 2022

꼬아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 적도 없는데

감정을 진짜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면

나: 전에 남편이랑 이사 얘기를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았다, 는 얘기를 했었잖아? 그가 자기는 지금 집에 남길 바랐는데 속맘을 몰랐던 건지 뭔지 나한테 말을 안 했더라며.


너: 그래. 그가 네 제안에 대해 별로다, 싫은 건 보러 갈 수 없다, 왜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냐, 그 사건 말이지?


나: 응응 맞아. 그때 너랑 수다 떨면서 '정말 내가 왜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더니 네가 어떤 건 개인적 일 수밖에 없지 않냐 그랬지


너: 그래 그거. 왜?


나: 그 후에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이상한 순간에 개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내심 결론으로 '아 이렇게 어떻게 살지? 남들도 다 이렇게 산다고?' 이렇게까지 멀리 간다는 걸 알았는데 말이야.


첫 번째 에피소드는, 우린 주로 내가 식사 준비를 하고 남편이 설거지 및 뒷정리 등을 해. 아침 준비라고 해봤자 시리얼 정도인데, 가끔 내가 준비하고 있을 때 와서 이것저것 거들거든? 그러면서 한마디 해. 예를 들어, 자기 시리얼 이번엔 좀 많다, 호두는 두 개만 있어도 된다 머 그런 거지. 그럴 수 있잖아. 점심이라면 '내 밥은 내가 풀게' 머 이런 거.


오늘 반찬 왜 이러냐, 그러면서 내가 준비한 거 투정 부리는 거 절대 아니고 그냥 자기 먹는 양을 조절하겠다, 이건 확실해. 내가 겉으로 뭐라고는 안 하는데 속으로는 화나서 표정이 굳어. 남편이 '내가 뭐 잘못했어?' 이렇게 물어보는데 뭐가 기분 나쁜지 스스로가 이해가 안 돼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빡치는 포인트가 뭔지 진짜로 잘 모르겠거든.


너: 음, 준비해주는 대로 먹지, 그런 건가?


나: 굳이 남의 시리얼에 들어가는 양을 통제 못한다고 해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던지 그런 건 아니잖아.


너: 너무 가는 거지 그건. 평소에 다른 상황에서도 느끼던 감정이 그때 팍 커지는 건가?


나: 움 그런가.. 섭섭함 정도인 거 같은데 뭐가 섭섭한지 모르겠어. 난 네가 이만큼 먹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적게 먹다니, 섭섭하구나, 이상하잖아! 진짜 '주는 대로 먹어라', 그거도 내가 이상한 거지.


너: ㅎㅎㅎㅎㅎ


나: 두 번째는, 우리가 둘 다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가 나와서 극장에 보러 갔을 때야. 그날따라 에어컨이 센지 너무너무 춥고 극장 안에 이상한 관람객 무리가 있었어. 여러 명이 한 줄 전체에 앉았는데 영화 보는 도중에 갑자기 폰으로 게임을 한다던지, 5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간다던지 등등. 극장 안에 몇몇이 '그만하라'라고 했는데도 계속 그래서 집중을 할 수가 없었어. 춥고 집중도 안되니 둘 다 짜증이 났지.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남편이 '당장 나가자. 여기 진짜 최악이다' 이렇게 얘길 했어. 나도 완전히 똑같이 생각했으면서도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게 싫더라고! 나한테 짜증 낸 것도 아니고 나도 짜증 나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야.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순간적으로 나한테 불평하는 것처럼 받아들였던 거 같아.


너: 왜 그랬을까? 말투가 그랬나?


나: 상황에 짜증 내는 말투랑 나한테 짜증 내는 말투가 얼마나 다를 수 있겠어. '그래 진짜 짜증 난다, 빨리 집에 가자' 그렇게 나도 그때 생각한 대로 말하면 끝날걸 나는 또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하냐' 이렇게 받아치는 거지.


너: 그러면 남편은 뭐래?


나: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가 생각하는 걸 말한 거뿐이야' 이러지 뭐.


너: 그렇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걸 네 개인적으로 받아들인 걸까. 너 너무 인생의 주인공 아냐?


나: 그런가 봐 진짜!


너: ㅎㅎㅎㅎ


나: 참고로 나는 지금 '내가 이상했던' 에피소드들 위주로 말하는 거라는 거 염두해줘. 나 보통은 괜찮은 사람이야. 모.


너: 너 알고 보면 통제형 인간인가? 그래서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기분이 확 나빠지나?


나: 그런가. 우리가 식성이 비슷해서 외식할 때 주로 가는 식당이 있고 주로 먹는 메뉴가 있거든. 가끔 남편이 '오늘은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다'라고 할 때도 급 섭섭하다고 얘기 한 적 있지? 오늘은 같이 안 먹을 랑가, 생각하는 순간 내 맘속에서 이제 앞으로 영원히 다시는!으로 발전하는 것도 어이없고 웃겨. ‘뭐 먹게?’ 그러면서 어차피 또 같이 고르거든, 진짜 어이없네 나.


너: 다시 들어도 웃기다야. 그렇게 시켜서 또 같이 나눠먹는다며! 하다못해 너도 네가 먹고 싶었던 걸 먹으면 될 걸.


나: 내 말이 그 말이야. 회사 막 입사했을 때 어떤 사람이 '오월씨는 관상으로 봤을 때 과장 전에는 회사에서 힘들 거예요' 그러는 거야. 왜요? 그랬더니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래. 그때 속으로 '뭐래, 다들 그런 거 아닌가' 그랬는데 나, 진짜 그런가 봐!


너: 그건 나도 그런 거 같은데. 많이들 그럴 거야, 너무 연결시키지 않아도 될 듯. 귀에 걸면 귀걸이 코걸이 모 그런 조언 같은데.


나: 그러네. 암튼 내 사건들의 포인트는, 그때마다 내가 가진 감정의 종류나 깊이 등등이 똑같진 않을 거거든. 그런데 뭔지 잘 모르니 그럴 때마다 '섭섭함'으로 퉁치니까 설명도 안되고 가끔은 남편과의 사이가 끝나는 상상까지 격하게 가게 되는 거야. 그럴 때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든, 이럴 일이 아닌 것도 알고. 그런데 그렇게 가버린 걸 또 어떡하겠어, 근데 그게 또 이상하니까 내가 다시 내 맘을 끌고 오지, ‘야야, 너무 간다 너’ 이러면서.


너: 감정이 가던 곳으로만 길이 나있어서 그런 걸까.


나: 그런가 봐. 내가 이 시시콜콜한 감정들을 느끼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그 감정들의 이름을 알고 그 깊이를 적절히 이해하고 그 정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상대의 모든 반응에 나를 주인공으로 놓지 않는다면 좋겠어. 그러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투닥거리면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감정들이 내 인생의 위기까지 발전하진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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