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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05. 2022

초보들한테 더 친절한 세상, 나만 바라냐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훨씬 모른다고!

나: 며칠 전에 언니랑 통화하다가, 이사 에피소드를 들었어.


너: 언니가 최근에 이사했던가?


나: 아니, 벌써 3년은 된 얘기야. 무슨 얘기하다가 나온 건진 기억이 안 난다야. 아, 내 이사 얘기하다가 그랬나 보다.


너: 그래 가지고,


나: 그래 가지고. 그때 언니가 처음 집을 사서 이사했거든. 전세 사는 동안은 내가 같이 있었다가 언니가 모든 처리를 거의 다 한건 처음이었지.


너: 신경 쓸 거 엄청 많았을 텐데, 힘들었겠다.


나: 그랬을 거야. 대출부터 혼란이었어. 아니지, 이사 결심부터지. 그전에 살던 집은 교회가 주인이었거든. 법인이랑 계약하면 대출도 안 되는 등 개인과 하는 계약이랑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 그때는 나랑 같이 해결했었어. 거기서 거의 8년은 살았을 거야.


그 아파트는 처음부터 이상한 게 있었어. 등기 상 소유주에 교회 외 개인의 이름이 올라가 있었는데 계약할 땐 곧 그 개인의 소유권이 교회로 완전히 넘어올 거라고 했거든. 그리고 계약 자리에 그 개인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교회가 법적으로 대리하는 서류를 다 준비해와서 우리도 믿고 계약을 했지.


너: 그랬는데?


나: 그 이후로 수 번 재계약을 했는데 그 이름이 계속 거기 있는 거야. 법적 절차로는 매번 문제가 없어서 우리도 흐린 눈 했지. 바야흐로 그 3년 전, 재계약 일이 다가오고 다시 등기를 떼어본 언니가 찝찝해서 이번에 소유권 정리 안 하면 계약 안 하겠다, 고 미리 얘기했어. 그 교회랑 우리 사이가 나쁘진 않았고 그 교회에서도 이번엔 확실히 정리하겠다, 고 했어. 그러고 나서 계약서에 도장 찍으러 부동산에서 만났는데 여전히 정리가 안된 거야. 그래서 언니가 화가 잔뜩 나서 재계약 안 하겠다! 고 했지. 집에 문제 발생 시 거주자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서 전세금을 날릴 수도 있다더라고.


너: 어머나, 무섭다야.


나: 응, 그래 가지고 그때부터 급하게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지. 그게 8,9월이었어. 계약 전에 은행에 가서 대출에 대해 알아보긴 했는데 언제나 대답은 계약서를 가져와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지.


너: 그래 가지고,


나: 가고 싶던 지역에 가고 싶은 아파트가 날짜도 비슷하게 하나 딱 나와서 예산은 초과했지만 조마조마하게 계약을 했지. 막 당장 계약해야 되는 것 같이 몰아가잖아, 그때 매물도 거의 없었기도 했고.


너: 아이고 그래도 다행이네.


나: 계약서를 들고 은행을 갔어. 그게 한 10월 중순? 말? 정도였을 거야. 그랬는데 대부분의 은행에서 대출 보유금? 이 바닥이 났다며 그 해 말까지는 대출이 안 된다는 거야! 이사가 12월 초니까 난리 났지.


너: 헐..


나: 이 은행 저 은행 이 지점 저 지점 발품 팔아서 겨우겨우 대출을 받았어. 대출 보유금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네. 그 시기에 이사해본 사람들은 알아서 연말엔 이사를 피한대.


너: 그렇구나. 그래서 봄에 이사가 많은 건가.


나: 그런가 봐, 날씨 좋아서 하는 줄로만 알았지.


너: 그러니까.


나: 대출도 계약 금액에 따라 나오는 게 아니라 감정원 시세 기준이고 그건 당시 실거래가보다 한참 적더라고, 그래서 예상한 금액보다 대출이 덜 나왔어. 모자란 돈들을 마련하는데 서울은 다 투기과열지구였어서 돈 마련하는 것도 하나하나 다 증빙하고 복잡했지.


암튼 여차저차 이삿날에 만나서 계약을 완료하기로 하고 이삿날이 됐어. 이삿날에는 톱니바퀴처럼 이쪽저쪽 딱 맞아야 하잖아. 아우 진짜 아슬아슬해.


너: 정말 쫄려 그거.


나: 가기로 한 아파트에 원래 살던 사람이 지방으로 이사 가느라 거기 계약 해결하고 온다고 오후에 계약을 하게 됐나 봐. 그러기로 미리 구두 합의를 했었고.


너: 그래그래


나: 이사하는 날 짐을 아침 일찍 빼잖아, 그게 암묵적 룰 아냐. 마침 언니가 이사하는 곳이 차로 10분 거리밖에 안 되거든. 도착했더니 그쪽에서도 짐 다 빼서 비어있었대 이미.


너: 아, 너 무슨 얘기 할지 예상 가능하다야


나: 응 맞아. 이삿짐을 넣기 시작했어. 근데 그게 계약 도장을 찍기 전이었던 거야!


너: 아이고야. 큰일이네


나: 응, 부동산에서 와서 짐 빼라고 막 화를 냈대.


너: 그래 가지고 어찌 됐어


나: 왜 화를 내냐 따졌지? 그랬는데 법적으로 무단침입이라고 그랬다는 거야.


너: 그렇지 그렇긴 하지


나: 그런 거 잘 몰랐던 언니는 오늘 계약일이니 오늘부터,라고 생각한 거지. 시간을 명시하는 건 아니니까.


언니는 부동산에서 그 비싼 수수료 받으면서 왜 사전에 그런 상세한 고지를 안 해주냐며 속상해했어. 자기만 모르냐며, 사람들은 다 그런 걸 알고 있는 거냐고.


너: 그러게 말이야. 사람들이 '상대방이 어느 정도까지 모르는지'에 대해 너무 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부동산은 자기네한테는 너무 당연한 거니까 계약자들도 당연히 안다고 본건가. 분명 비슷한 상황 여러 번 봤을 텐데 오후에 계약하기로 했을 때 미리 주의를 좀 주지.


나: 내 말이. 살다 보면 처음 경험하는 게 대부분이고 그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보다 훨씬 더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데 말이야. 언니가 집을 또 산다면 그때보다는 더 잘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집을 또 안 살 확률이 높고, 그럼 그냥 그 경험은 그렇게 끝나버리는 거야. 그래서 너한테라도 이렇게 전달해놓는다.


너: 맞아. 세상은 정말 디테일한 것들 투성이잖아. 모르는 거 한 바가지라서 전문가 조언을 구하는 건데 그 전문가한테 모른다고 혼나버렸네.


나: 세상이 초보들한테 더 친절했으면 좋겠어. 우리 모두는 다 오늘도 내일도 처음인 초보아냐. 나도 더 친절해야지. 참고로 언니는 동네에서 그 중개인을 봐도 인사 안 하는 걸로 복수한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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