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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10. 2022

네 기준에 안 맞는다고 내가 잘못한 건 아니고요

가까운 관계의 불편함에 대하여

나: 전에 네가 '엄마한텐 잔소리 듣는 거 귀찮아서 얘기 안 했지. 지금까지도 그 일을 모르셔'라고 했잖아.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자꾸 생각나.


너: 그래, 그렇게 큰 경험이었는데 가족은 아직도 모른다.


나: 나도 한동안 정말 가족이 직접 참여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면 얘기 안 하고 싶었어. 결혼, 그런 건 어쩔 수 없다 치고 그 외 다른 일들.


너: 가장 가깝다면서 은폐 쩔어ㅎㅎ


나: 내가 처음 결혼 얘기를 꺼냈을 때 집에서 드라마 한 편 찍었거든. 언니는 말도 안 하고 며칠을 울고 오빠는 화내며 떠나고. 솔직히 너무 이해가 안 됐어. 그 당시에 그 정도로 서로 아끼지 않았거든 우리가. 속상할 수도 있다 쳐. 그래도 '너로 인해 속상하다'를 표현하는 건 언제나 더 조심해야지.


너: 가끔 가까운 사람들이 표현하는 속상하다가 뭔지 잘 모르겠어. '네가 힘들까 봐 속상하다' 인지, '네 선택이 내 예상 밖이라서 내가 속상하다'인 건지.


나: 맞아 바로 그거야. 나 때문인 건지 자신 때문인 건지 애매한 경우가 너무 많아. 그러면 좋은 일도 말 안 하게 되더라고. 그 간극이 크니까.


너: 그렇지.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나는 네가 수치스럽다에서 ‘너’라는 대상이 되는 거 힘들지.


나: 나랑 싱크가 맞으면 또 몰라. 내가 자랑스러울 때 상대가 자랑스러워하고, 내가 수치스러울 때 상대가 수치스럽고 그러면 이해라도 되지. 결혼하겠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말로) 소개하는 건데 곤란하지, 애를 써서 이해시켜야 하니까.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누군가의 선택에 말하는 사람을 우선으로 두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 감정을 더 먼저 표현하는 거 정말 생각해봐야해.


너: 그러게나 말이야. 나를 잘 모르는, 아니면 자주 안 봐도 되는 사람들이 그러면 대충 둘러대고 말건대, 피할 수 없는 가까운 관계에서 그러는 건 상처가 되지.


나: 어떤 사람이 '딩크인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이 '아이 왜 안 갖냐'라고 하는 거 지긋지긋하다'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렸어. 거기에 어떤 사람이 '남이 애 안 가지는 건 관심 없지만 만약 내 동생이 안 가지겠다고 하면 자기는 설득해보겠다'라고 댓글을 단거야. 그래서 대댓글을 달았지. 나는 그 사람이 설득하고 어쩌고에 꽂힌 것보다 '애정을 가진 관계의 참견은 정당하다'는 태도가 옳지 않다고 봤거든. 서로 칼로 물 베기 논쟁을 하다가 운영진 지적받았어. 모.


너: 지적받을 논쟁을 한다고? 흥미롭다야


나: 무갈등이 미덕인 한국 커뮤니티라 그런지 인신공격도 아닌데 대댓 여러 개 달리면 일단 모니터링 들어간다니까. 요즘은 모니터링한다는 댓글 달리면 사람들이 막 뭐라고 해, 왜 모니터링하냐고ㅎㅎㅎ


너: 모니터링이 뭔데?


나: 잘 모르겠는데, 경고했으니 임의로 지울 수도 있다 그런 거 같음.


너: 오메, 이상하긴 하네.


나: 응 암튼 그래가꼬 나는 애정을 가지면 더 서로의 선택을 지지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 설득하겠다는 뉘앙스는 상대가 잘못된 길을 간다는 거 아냐. 얼마나 참신하게 설득할 거야, 어차피 뻔한 얘기지 뭐.


너: 그렇지, 그러네. 법적인 혹은 도의적인 잘못을 했다면 몰라. 근데 대부분은 그런 게 아니잖아. 내 기준에 안 맞는다고 상대가 잘못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 진짜 하면 안 될 거 같아. 가족을 실망시켰다? 인생이 흔들리는 기분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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