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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18. 2022

자기를 지배하는 감정도 변할 그런 순간들

꽂히는 스토리

너: 작은 아씨들 봤어? 내가 끝까지 보는 시리즈가 많이 없는데 이건 다 봤네.


나: 오, 재밌나 보네?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아직 안 봤어.


너: 응. 나는 1화가 인상적이었어. 두 언니가 막내 생일날 해외 수학여행 다녀오라고 돈을 모아서 주거든. 그걸 엄마가 '우리 식구 중 아무도 못 간 해외여행을 막내가 꼭 가야 하냐'며 들고 튀어.


나: 오마나..


너: 더 재미있는 건 그 얘기가 그 이후로 그다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거야. 딸들이 엄마한테 복수하지도 않고 원래 미워하던 것보다 특별히 더 미워하지도 않아. 보통은 드라마 안에서 가족이라면 응당 서로를 너무 소중히 여기거나 그러지 못했을 때 죄책감 가지거나 그렇게 그려지잖아. 특히 엄마는 말해 뭐해.


나: 그렇지. 현실엔 '이상적 엄마'에 못 미치는 엄마들이 더 많은데도!


미디어는 유독 부모, 특히 엄마를 전형적인 모습으로 많이 그리는 거 같아. '이렇게 표독스러운 건 내 가족과 내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야!', '내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바쳐서 희생할 거야, 나는 엄마니까악!' 이런 걸 온몸으로 표현하잖아. 그런 역할은 미워하고 욕하면서도 찝찝하지.


너: 그니까. 그런 면에서 저렇게 자식 등치는 엄마가 심판받아 마땅한 대단한 악마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볼 법한 나쁜 사람 정도로 그린 인트로가 인상적이었어.


나: 재미있다. 의도가 뭐였을까? 그 인트로 없이도 자매들은 애초에 가까운 거 같은데.


너: 그러고 보니 그러네?


나: 요즘 '시리즈 제 속도로 보기'를 하고 있어. 원래는 어떤 플랫폼이든 최대 속도로 봤거든. 그랬더니 분명 같이 울고 웃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안나더라고.


너: 가끔 팟캐스트 빠르게 듣거든? 맥락을 타긴 하는데 애매한 구석이 있어. 게다가 빠르게 들으면 듣다가 웃을 때도 그 속도로 웃는다니까. 옆에서 누가 보면 얼마나 읭 스럽겠어.


나: 최근에 라켓소년단을 다시 봤거든. 내가 딱 중고등학생들 얘기를 좋아해. 학교 같은 드라마 보면 생뚱맞은 씬에서 눈물 흘린다는 얘기를 했던가? 막 매점 씬 이런 거. 내 학창 시절이 특별히 힘들거나 그랬던 기억이 전혀 없는데 그렇게 그 시절 얘기에 약해. 월플라워도 그렇고.


너: 성장드라마 말하는 거지? 20대 초반 드라마는 어때?


나: 그때 얘기는 또 별로 관심이 없어. 세상에 도전하고 기성세대에 부딪히고 복수하고 그런 건 흥미가 안 생겨. 동백꽃 나저씨 슬의 그런 드라마들도 착한 보통사람들 얘기인데 재탕할 정도로 좋아하진 않더라고. 어른들의 성장엔 관심이 없나 봐 나.


너: 학교 드라마는 다 그래?


나: 그건 아니야. 우정이라는 키워드가 큰 건가. 내가 우정에 목마른가.. 아니면 그 시절이 뭔가 비어있나?


너: 정말? 의왼데~


나: 가장 예민한 때잖아, 가족에 한창 거리 둘 때고. 자기네 세상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부드러워지고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재미있어. 부모가 속한 세상 속 어른들의 어쩔 수 없음을 알아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친구들끼리도 서로의 방식이 효율적이거나 최선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적당한 거리에서 존중하면서 기다려. 선을 넘지 않고 말이야. 서로 대화할 때 비꼬지 않고 그 의미 그대로 흡수해. 그런 드라마 보면서 아, 저 사람은 저렇게 성장하는구나, 라면서 감동하는 듯.


너: 음..


나: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모든 장면에 친구들이 있지만 같이 뭘 한 기억이 없어. 치열하게 뭘 좋아하거나 싫어한 기억도 없고. 그냥 텅 빈 곳에 스냅사진들이랑 어떤 감정들만 덩그러니 있어.


너: 그러게. 나도 '그때의 우리들'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게 없긴 하다.


나: 쿨병 중증였어서 모든 것에 심드렁했어. 친구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게 모두에게 거리를 둔 거 같기도 하고.


너: 기억할만한 추억을 공유하지도 않고 지금의 속마음을 나누지도 않는데 다들 왜 열심히 만나고 있는 걸까?


나: 그게 내가 풀고 싶은 방정식이야. 그러니 만나지 말자, 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 뭔가 있긴 할 거 같거든.


너: 그래, 그렇겠지.


너: 바로 '그' 장면과 그 안에 같이 있던 바로 '그' 인물들이라서 중요한 그런 기억을 가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런 순간들이 모이면 자기를 지배하는 감정도 변할 듯.


나: 그렇지. 누구였어도 상관없었을 기억이 잔뜩인 거랑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도 자기의 소중한 사람들이 강력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애초에 다르겠지.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참 살기 맛날 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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