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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23. 2022

점으로만 존재하는 나, 어쩌면 좋을까

나만 없어, 공간의 의미

나: 어제 읽은 책에서 유라시아 지역에 커피가 전파되면서 사람들이 (술값보다 훨씬) 저렴하고 맨 정신으로 커피하우스에 모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철학이나 과학 등 중요한 모임이 만들어졌다, 남편이 그 재미에 집에 늦거나 안 들어온다고 많은 아내가 공식적인 항의를 했다, 그 대화에 끼고 싶어서 남장을 하고 카페에 들어간 여자들도 있었다, 민주적으로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게 정치적인 위협이 돼서 위정자들이 카페를 폐쇄하기도 했다 그런 내용이 나왔어. 근데 그게 너무 찐 같지 않은 거야


너: 어떤 면이?


나: 사람들이 그냥 모여서 저렇게 즐겁게 대화하고 저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싶어서? 지금은 잘 세팅된 카페가 있고 그걸 구성하는 요소로 사람들이 있는 거 같잖아. 깨뜨리면 안 되는 분위기의 공간이 갑이고 사람은 액세서리 같은 느낌. 책이 말하는 저 때는 '그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게 재미있어서 그 공간에 가는 거 아냐, 사람이 공간에 선 느낌?


너: 음.


나: 사람들이 돈 없어도 모일 수 있는 좋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 지인들이 있었어. 공원, 광장 그런.


너: 그렇지, 그런 거 있으면 좋지.


나: 그 지인들의 의도도 저런 거였어.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야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듣고 의견을 나눈다고. 근데 나는 그때도 지금도 산책 장소 이상의 상상이 안돼서 갸우뚱하거든.


지금까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목적에 맞는 관계만 맺어 봐서,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낯선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만들고 그러는 게 뭔지 모르겠어.


너: 그러게. 맞아 그렇지, 나도 그래.


나: 지금 몇십 년 지기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우리의 관계라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잖아. 그렇게 오랜 시간을 꽤 주기적으로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하는데도 잘 얽히질 않으니까.


너: 개인은 아무 크기도 무게도 없는 점 이잖아. 그런 우리가 연결되면서 길이를 가지는 선이 되고, 그것들이 연결되면서 면이 되고 입체가 되면서 부피나 무게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영향력이 생기는 걸 텐데.


나: 그렇지. 그런데 나는 점에서 도대체 더 나아가지 않는 거 같아. 너 포함 개인적인 몇몇 지인들과는 선을 만드는데 그게 면으로 연결이 안 돼.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친구들 하고만 선으로 발전하는 거 같거든. 그래서 선 자체가 짧달까. 그 선이라는 게 공감이나 위로를 넘어서야 하는데 다 내 안에서 이해하고 극복하고 끝이라서 수신재가치국평천하 중 수신에서 맴돌아.


이래서야 도대체 사회인으로서 평생 누구를 위협할 수나 있겠어?


너: 나는 요즘 점점 고심해서 알아낸 '나'가 알고 보니 우리 세대의 공통분모라는 걸 이해하고 있어. 그동안 혼자만의 고민이라고 끙끙댔는데 너도 그렇고 팟캐스트에 나오는 사람들도 완전히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라고. 같이 해결하면 일 타 몇 피야 이게.


나: 바로 그거지. 어디서 들었는데 정신과, 상담 이런 게 현 사회를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거야. 많은 경우 사회의 문제인데 개인이 참고 극복하도록 유도해서 사회 전복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면서.


너: 그러네 진짜. 현재로 안되니까 과거를 들쑤시고 말이야.


나: 우리는 공간을 딱 그 목적으로만 '소비'하잖아. 먹으러 가서 열심히 먹고, 마시러 가서 열심히 마시고. 그러고 보니 분명 누군가를 만나려고 그 공간에 가는 건데, 공간이 제공하는 거 이상의 경험을 만들지 않아.


너: 왜 그럴까? 대학교 다닐 때도 동방, 과방 이런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친목이나 연애는 해도 그 이상의 사회적인 액션으로 넘어가진 않았던 거 같아. 뭔가에 불만이 생겨서 열띤 토론을 한다던지 그런 거. 몇 번 있었는데 행동으로 연결이 되진 않았어. 나만 그랬나.. 행동하는 친구들도 많긴 했지. 내 주위에 적었을 뿐.


나: 그게 시대 특징이 있었던 거 같기도 해. 우리 윗 학번 들은 안 그랬을걸? '우리가 사회를 바꾼다' 이런 생각을 가진 선배들도 많았잖아. 그때는 그런 게 더 일상이었을 거야. 우리 이후 학번들도 달랐던 거 같고.


우리 때는 농활도 농촌 체험 이상은 아니었어. 원래는 농촌 청년들과 대학생들의 정치적 연대가 컸었다는데 언제부터인지 그런 정치색을 다 빼버렸다고 들었어. 대학 때 선배랑 집회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싸우러 나갔으면서 오히려 잔뜩 쫄아서 돌아왔다니까. 어떤 선배들은 우리 학번이 그렇게 사회 문제에 파이터 기질이 없다는 데 불만을 가지기도 했어.


너: 그래. 우리 때가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세련된 것처럼 퍼지던 때였어.


나: 맞아 진짜 그랬어. 아 맞다, 또 생각나는 게 있는데


너: 뭔데 말해봐바.


나: 세미나 하면 쉬는 시간에 복도나 홀에 다과 공간이 있잖아. 난 아는 얼굴 보면 인사하거나 과자 몇 개 집어서 자리로 돌아가거나 그랬거든. 무슨 세미나든 그런 시간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어.


여기에서 몇 번 토론회 같은 걸 갔었는데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서 엄청 대화해. 토론회를 보면서 생각했던 얘기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다니 재미있더라 머 그런 것들. 다들 대단한 의견을 나누는 건 아니지만 그 공간이 그 토론회의 연장선이랄까. 그러면서 연락처를 주고받고 각자의 액티비티에 초대하고 그러더라고. 나는 거기서도 꿀 먹은 벙어리야.


너: 음 왜 그러는 걸까?


나: 토론회를 볼 때는 나도 영감 받고 그러거든, 써먹어야지 그러면서 필기하고. 근데 내 밖으로 그런 것들이 하나도 안 나가. 영어가 어려운 것도 있지만 그걸 누구랑 나누기 겸연쩍기도 하고, 그럴 생각도 안 하고, 나는 나눌 정도의 레벨은 아니다, 고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고.


너: 그렇구나. 그냥 부끄럼 탄다고 볼 게 아닌 게 내가 볼 땐 상당수의 한국인들이 그럴 거거든.


나: 내가 아닌 타인과의 연결, 감정뿐 아니라 객관적인 어떤 것도 공유, 개인적인 일이야 말로 매우 사회적인 일이라는 인지 이런 것들이 전반적으로 장착이 안되어 있으니 같은 공간에 있어도 연결이 안 되나 봐. 점으로만 존재하는 나,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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