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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Oct 26. 2022

예민 버튼이 눌리지 않은 편안한 상태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작은 것에도 무너질 준비가 되어있다고!

너: 지난 주말에 가족여행을 가는데 비행기가 30분 늦게 출발한다고 시간을 착각한 거야. 우리 가족이 서두르는 편이어서 원래 시간 기준으로도 공항에 늦게 도착하진 않았지만..


나: 어머나 놀라라.


너: 알고 보니 애 신분증도 안 가지고 간 거야. 이 모든 걸 공항 가는 차 안에서 알게 되면서 급 스트레스 레벨이 올랐지!


나: 꼭 그럴 땐 평소보다 더 뚝딱거리게 되더라.


너: 그러니까 말이야. 안 그래도 초조한데 주차장에 차를 댈 곳도 없어서 일단 나머지 가족들이 먼저 내려서 수속하러 갔지. 그날따라 사람이 좀 많아?


나: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너: 탑승 문 닫기 15분 전인데 아직 게이트 통과도 못한 거야! 가족 모두가 어쩔 줄을 몰랐어. 비행기 놓친다고 부탁해봐도 안되더라고.


나: 아이고 조마조마해라.


너: 암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어찌어찌 제 시간에 비행기 잘 타고 계획대로 출발했어.


나: 아우 야 다행이다 진짜.


너: 응응. 늦었지만 그래도 예약한 비행기를 탔고 계획에 차질은 없으니까 상황이 잘 마무리됐잖아? 그런데 그 조급함과 초조함에 올라간 스트레스가 진정이 안되더라고.


나: 아 그럴 땐 진정이 안되지 정말


너: 응.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침내 다 같이 웃으며 '해냈다 결국! 휴, 다행이다 하하하'' 정도의 헤프닝이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이미 발작 버튼이 눌린 거지.


나: 그래. 너 늦는 거 싫어해서 평소에 일찍 일찍 준비하잖아. 그게 네 버튼 중 하나구나.


너: 그렇더라고, 이번에 한 번 더 제대로 확인했지.


게다가 친정 가족이랑 여행 간 거라서 모든 결정들이 다 나를 거쳐가는 상황이 된 거야. 챙길 게 좀 많아? 모두가 나한테 별것도 아닌 것까지 다 물어보는데 그걸 예민 보스인 상태로 해결하느라 좀 많이 힘들었지.


나: 그랬겠다. 평소에는 별것도 아닌 것들이 예민할 땐 어찌나 짜증을 돋우는지. 나도 비슷한 성향이라 억울할 때가 있어.


너: 억울한 건 또 머야.


나: 짜증 버튼이 눌린 예민한 상태가 있으니까 반대로 버튼이 눌리지 않은 편안한 상태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아서?


너: 아. 그니까 내가 만약 여유롭게 여행을 출발했어. 그러고 나서 가족들이 다 나한테 똑같이 질문을 해, 어차피 그건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랬다고 한 들 내가 편안하게 하하호호 웃으며 속 편한 여행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거지?


나: 그렇지. 나는 내가 평소에 감정적 텐션이 좀 높다고 느낄 때가 많거든. 아무 일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주 숨을 깔딱깔딱 쉬거나, 한숨을 깊게 쉬거나 그러기도 하고.


너: 아 맞다, 나도 일상 속에서 갑자기 숨을 멈추고 있더라. 평소에 자주 겪는 상황들이 있잖아, 예를 들어 지우개로 뭘 지우다가 잘 안 지워져서 약간 짜증이 나, 그럴 때 보면 내가 숨을 안 쉬고 있어.


나: 바로 그런 상태! 평소에 이미 넘칠랑말랑 한 상태이다 보니 버튼이 하나만 눌려도 큰일 나는 거지. 그 버튼은 그냥 1도 끌어올린 거였을 수도 있는데 내가 평소에 99도야, 뭐 그런.


너: 맞아. 게다가 다 큰 어른으로써(!) 내 스트레스를 겉으로 마구 표출할 수도 없으니 내 감정은 이미 폭발한 걸 억누르는 부가적인 일까지 해야 하고, 얼마나 고생이 많아.


나: 그런 거지. 평소에 그 텐션을 좀 헐렁하게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어 진짜!


너: 우리는 자기 상태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거 아냐. 그래서 더 대화를 못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드네.


나: 오, 그건 무슨 말이야?


너: 텐션이 높으면 작은 것에도 쉽게 화나고 흥분하잖아. 그러니까 너무 조심하느라 상대의 그 어떤 것도 아예 건드리지 않는달까. 그러니 애초에 너와 나는 대화에서 배제하고, 저 멀리 있는 소재를 가져오느라 뒷담이나 하는 거지.


나: 오 그게 맞는 거 같아. 생각해보면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더 조심하느라 말을 뱅뱅 돌리잖아. 또 그게 예의라고 받아들여지는 거 같기도 하고.


너: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친구나 지인들한테 더 관대한 거 같거든, 물론 싫어하는 상대한테는 그러지 않겠지만.


나도 듣는 입장일 땐 상대가 하는 말들을 비꼬거나 그러지 않는 거 같은데, 말할 땐 상대가 내 의도대로 받아들이는지 확신이 없어서 상대의 대답이 조금만 지연돼도 표현을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바꾸면서 상했는지 안 상했는지도 모를 기분을 풀어주려고 한단 말이지.


나: 맞아. 맥락을 이해하려는 질문 혹은 공감하려는 표현 등 꼭 필요할 때에도 그걸 못하겠어. 물론 그 맥락 싱크가 안 맞으면 애초에 안 맞는 사람일 거고.


너: 그래도 여행 가서 서울과 다르게 낮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있는 모습을 보니까, 아 이런 데서 살면 좀 더 마음이 여유로우려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나: 텐션이라는 게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과거에의 후회, 미래의 불안 머 그런 거 아니겠어? 결국 현재에 있지 못하는 게 문제지. 새로운 걸 보고 자연 속에서 걷고 예술에 감동받고 이런 게 필요한 진짜 이유가 적어도 그 순간에는 현재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너: 맞는 거 같다 정말. 그렇다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울을 떠나? 그게 진짜 답인 건지도 모르겠고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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