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탐구생활

우월한 어른, 열등한 아이...?

우열, 나이와 별개의 성숙

by 오월

어른이 되면 모든 게 저절로 성숙해지는 줄 알았습니다. 감정도 똑 부러지게 조절하고, 선택도 냉철하게 하고, 인간관계도 적당히 거리 두면서 우아하게 유지할 줄 알았죠.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어 보니 감정은 여전히 폭주기관차, 판단은 여전히 감으로, 관계는 오히려 더 복잡합니다. 마음속에서 오늘도 메아리칩니다.

‘야 너어는.. 대체 언제 철드나?’


나름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삶에 대한 가치도 붙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을 잘 따라주지 않아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기 위해 경제 활동에 집중하다 보면 ‘의미’에 내어줄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그 소중한 의미는 유튜브 알고리즘 속 누군가의 입을 통해 두 배속으로 흘러나올 뿐입니다. 이게… 진짜 성숙인가요?


'성숙’이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이제 모두 눈치챘습니다. 철없고 욱하는 어른도 많고, 반대로 삶을 더 깊이 바라보는 어린 사람도 많으니까요. 결국 성숙이란 건, 나이보다 태도에 가깝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내려본 성숙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자극이 들어왔을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한 번쯤 '내 안의 복잡한 내부 상황'을 들여다볼 줄 아는 능력

감정은 충분히 느끼되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생각은 깊고 멀리 확장하되 너무 무겁게 잠식되지 않는 상태

거기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놓치지 않고, 그 기준으로 행동까지 연결해 내는 것

이 정도면 성숙하다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나라는 존재가 단단하고 건강하고 다차원적인 합성함수로 작동하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숙은 현자나 도인 같은 정형화된 이미지나 묵묵히 다 참는 그런 게 아닙니다. 나의 방식으로 단단해지는 것. 아마 성숙한 미래의 오월도 지금의 오월이 하는 말과 행동에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반대로 감정이 올라오면 그대로 말하고, 생각보다 기분이 우선이고, 당장의 만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이런 반응은 미성숙함에 가까울 것 같아요. 입력되자 마지 출력되는 구조 - 합성함수가 아닌 속성함수. 물론 미성숙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성숙과 미성숙은 우열이나 선악의 개념이 아니고, 발달의 스펙트럼입니다(다리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걷지 못하는 아기를 나쁜 사람이라고 보지 않는 것과 비슷할까요?). 미성숙은 성숙으로 가기 전 단계일 뿐이고, 삶의 맥락은 모두 다르니까요. 모두 어느 부분에선 미성숙하고, 또 어떤 부분에선 성숙하기도 하죠. 사람은 그렇게 조합된 덩어리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성숙한 내가 미성숙한 타인(혹은 나 자신)을 볼 때 생기는 태도입니다. 어느새 내 잣대를 들이대고 '쯧쯧, 왜 저러냐, 아직 멀었군' 하고 우월해지려는 순간, 성숙함은 코너에 몰립니다. 진짜 성숙한 사람이라면 미성숙함을 판단하고 분별하되, 비난하지 않을 거예요. 도와줄 수 있다면 돕고, 기다릴 수 있다면 기다리겠죠. 성숙은 시간 내 마쳐야 하는 과제가 아니니까요. 내가 더 낫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지 않게 자기 마음을 관리해야 합니다. 성숙함은 오르는 계단이 아니라 오르고 있는 길목인가 봐요, 늘 휘청이고, 때로 다시 돌아가서 떨어뜨린 게 없나 확인해야 합니다.


또 흥미로운 건 각자의 성숙함은 다른 모양이라는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성숙이고, 또 어떤 사람은 묵묵히 속으로 다스리는 걸 성숙이라 생각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으로 깊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도 있어요. 성숙함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나랑 다르다고 함부로 미성숙하다고 단정 짓는 건 꽤 위험한 함정입니다. 그냥 다른 방향으로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을 뿐.


그럼, 성숙한 개인이 많아지면 사람 사이의 관계나 사회도 성숙해질까요? 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사회는 단순한 개인들의 합집합이 아니라, 관계, 조직, 제도, 문화가 뒤엉킨 거대한 복합체입니다. 성숙한 개인이 조직 안에 있어도, 그 조직이 권위적이면 성숙한 행동은 묻히고, 반대로 제도가 잘 짜인 사회는 개인이 조금 미성숙해도 덜 흔들릴 거예요. 성숙한 사회를 위해서는 개인의 성숙과 함께 제도, 문화, 집단 간 관계 등 구조적인 성찰과 설계도 필요합니다. 성숙은 도착지점이 아니에요.


게다가 각자가 성숙해질수록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개인은 자유와 자율을, 사회는 안정과 공공선을 원할 수 있어 무조건 충돌이 생깁니다. 혼자인 게 좋은 성숙한 개인에게, 사회는 사회적 관계와 기여는? 하고 되묻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도 이런 갈등은 익숙하게 경험됩니다.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과 조율의 문제, 서로 다른 가치를 어떻게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것, 바로 그게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겠죠. 에너지가 많이 필요합니다.


성숙함은 어떤 상태나 자격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인가 봐요. 때로는 나를 단단히 붙잡는 것, 때로는 나를 살짝 내려놓는 것, 매번 그 경계를 찾아가며 조금씩 더 유연해지고 조금 더 경계를 확장하고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일. 내가 걸어보지 않은 길 위의 사람을 못 본채 하는 게 아니라 그 길이 단단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


성숙함은 정답이 없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덜 흥분하고, 덜 비난하고, 조금 더 묻고 기다릴 수 있다면, 나는 그만큼 자란 거겠죠. 물론 며칠 후 다시 무너지겠지만 그래도 또 단단히 내일을 살아내면 됩니다. 서두르지 말자고요. 성숙해지려고 애쓰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성숙의 일부일테니까요. 애쓰고 있는 우리는 이미 철이 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어요, 진짜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몇 살의 서로와 만나는 중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