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다이어트를 할 수는 없잖아
‘싫다고 했잖아’, ‘너무 좋아’, ‘그건 좀 불편해’, ‘슬프다’, ‘기쁘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듣고 말하는 표현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하는 용기로 여겨지기도 하고 솔직한 감정 표현이라고 칭찬받기도 하죠. 그런데 이 익숙한 표현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생략하고 정리하고 덮어버리는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좋다, 싫다, 불편하다 같은 말은 실제 감정이라기보다 감정을 평가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해석이자 판단이며, 요약입니다.
문득 이런 표현이 지나치게 평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이 마치 두께 없는 직선처럼 얇고 반듯하달까요. 좋다, 싫다, 괜찮다, 짜증 난다, 불편하다—그 모든 말은 상황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기능적인 표현처럼 느껴집니다. 이 말들은 감정의 미세한 결이나 흐름을 담지 못하며 무언가를 정리하거나 종료하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분명 표현은 했는데 어딘가 갸우뚱한 기분. 저만 느끼는 건 아닐 거예요.
우리는 종종 감정을 좋다, 싫다 같은 단어로 충분히 표현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건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이름을 붙인 것, 그것도 단순화된 결론을 말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 사람 괜찮더라’고 말하면서, 막상 어려운 일을 겪으면 ‘그 사람 같지 않아, 그럴 줄 몰랐어’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정말 몰랐던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만든 요약 표현에 스스로 속았던 걸까요?
감정은 즉각적인 반응이 아닌, 기억과 경험, 기대가 얽혀 만들어진 복합적인 감각입니다. 두려움 속에 안도감이, 기쁨 한가운데 외로움이 함께 깃들기도 합니다. 감정은 겹겹이 쌓이고 흐르며, 머물렀다 흘러가기도 하고, 문득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처럼 입체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조차, ‘기분이 좀 그렇더라’, ‘그냥 짜증 났어’, ‘불편했어’처럼 납작한 단어로 처리해 버리곤 합니다. 어쩌면 회피에 가까운 말들입니다.
감정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으면 해소되지도 못한 채 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감정을 조절하거나 관리해야 할 것으로 여기고, 터질까 봐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감정 자체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통제가능한 영역이 아닙니다. 그렇게 계속 생겨나는 감정이 흐르지 못하고 막혀 있다는 전제는 사회 곳곳에 깔려 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사회적으로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너무 얕고 얇고 짧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게다가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설명하려 하면, 사회는 이를 귀찮아하고 과민반응으로 간주합니다. ‘예민하네’, ‘그 정도 가지고 왜 그래’, ‘불편하니까 그만해', '나보고 어쩌라고’. 감정을 듣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회가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입니다.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의 층위, 그리고 그런 언어가 받아들여지는 환경입니다. '그때 존중받지 못한 기분이 들었고, 순간 위축됐어요' 이 문장을 말하려면, 그런 문장을 꺼내도 되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정리하는 데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감정을 해석하는 능력보다 감정을 감추고 협상하고 조정하는 기술이 먼저 발달했달까요.
요즘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불편해요’라는 말을 가르친다고 해요. 공격 대신 말로 선 긋는 방법을 배우는 건 중요하지만 그 표현이 너무 일찍 감정의 결론처럼 굳어져 버릴까 봐 걱정입니다. 창피함, 외로움, 무서움, 민망함, 서운함 같은 다양한 감정이 ‘불편해요’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버리면, 아이들은 감정을 시작하는 언어가 아니라 감정을 끝내는 언어만 배우게 되다가 나중에 우리처럼 퉁쳐서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감정을 표현할 언어 없이 자란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해명할 수 없고, 타인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며, 감정이라는 말 자체에 거리감을 느끼게 됩니다. 감정은 해소되어야 하는 문제, 혹은 조정하거나 견뎌야 하는 과제로만 남습니다. 그렇게 감정은 흘러가기보다 고이게 되고, 언젠가 터지게 됩니다. 못되게(!) 터지거나, 착하게(!) 눌러두거나.
감정은 하나의 단어가 아닙니다. 감정은 이야기이고, 맥락이며,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흐름입니다. 감정을 잘 표현한다는 것은 요약의 기술이 아니라 복잡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미세한 결을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용기입니다. 감정을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어휘가 필요합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져도 괜찮고, 충분한 근거 없이 설명해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감정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존중받아야 합니다.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한다는 것은 타인의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눌러온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쉽게 귀찮아하고, 불편해하며, 때로는 유머로 소비하거나 조롱합니다. '뭘 저렇게까지…' 같은 말로요. 감정을 겪고 표현하는 일이 낯선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점점 감정 없는 척, 감정 몰라도 되는 척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복합적입니다. 그 두께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언어도 두꺼워져야 합니다. 감정은 이야기로 이어져야 하며, 그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부터 연습해야 할 때입니다. 익숙하고 단순한 표현을 잠시 멈추고, 일부러 낯선 어휘를 엮어가며 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기승전결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머물고 흩어지고, 이어지지 않은 표현들을 꺼내보는 겁니다.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고,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감정이 흐르는 물꼬를 틀 수만 있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