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언제나 현재를 이길 건가 봐요?
- 오월아, 족발 시켜 먹을까?
오랜만에 만난 엄마가 건넨 말입니다. 이 상황은 여러 번 반복되었는데, 여러 번 단호하게 말해왔습니다.
- 나 고기 안 먹잖아. 몇 번을 말씀드려요.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정말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 엄마, 지금 나한테 묻는 거 맞아요?
저는 15년 넘게 페스코 채식을 해왔습니다. 족발은 채식 전 제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인데 엄마가 그걸 기억해서 꺼내신 제안인가 봐요. 아니면 지금의 제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걸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족발 먹기를 기대하신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후자라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문득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에서 자주 미니족발을 사다 먹던 아이, 엄마가 만들어주는 맵고 짠 음식을 잘도 먹던 아이.
제 식단은 꽤나 오래전 완전히 달라졌지만, 엄마에게 그 시절의 제가 지금의 저보다 더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엄마는 그때의 저를 기대하며 말을 건네시는 것처럼 보이고요.
그런데 나야말로, 지금의 엄마에게 대답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내 식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를, 앞으로도 아마 그러실 엄마를 (이해를 막연하게 기대하며) 계속해서 타박하는 건 아닌가 싶달까요.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의 서로에게 그때의 서로를 기대하며 투닥거리게 되겠죠?
그리고 더 멀리, 내 친구들은 ‘언제 적 그들’일까, 내가 인식하는 나는 ‘지금의 나’인가.. 영 모르겠습디다?
언젠가 저는 일상의 시간을 크로노스(선형적이고 흐르는 시간)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시계가 돌아가고, 나이 들어가는 걸 온전히 경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조금만 더 확장해 보면 제가 기억하고 반응하는 세계는 어쩌면 카이로스(멈춰 있는 순간, 의미와 감정이 밀도 높게 붙잡힌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그렇다면 강도 높은 과거가 언제나 흘러가버리는 현재를 이길 건가 봅니다?
엄마는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 것 같지만, 실은 예전의 딸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기억 속 익숙한 엄마, 역할 속에 놓인 엄마, 내가 오래전부터 '안다고 믿는' 그 사람을 앞에 두고 말을 건네나 봐요.
엄마의 질문은 그때의 나를 향하고 있는데 지금의 내가 대답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니 이걸 어쩌죠. 조금은 그때로 돌아가서 서로를 대하는 게 서로를 위한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엄마는 또 물으실 겁니다.
- 족발 시켜줄까?
그리고 저는 채소를 잔뜩 버무린 비빔국수를 뚝딱 만들어내며 말씀드리겠죠.
- 엄마, 저는 요새 요게 주식이에요.
엄마는 곧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 와 오월아, 너무 맛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물으실 거예요.
- 간단하게 족발 먹을까?
우리가 서로의 현재에 존재하는 게 영 가능해 보이지 않으니, 그땐 의문을 가지기보다 그냥 같이 한 번 웃어야겠어요.
우리, 몇 살의 서로끼리 만나는 중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