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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탐구생활

다시, 오월

희망을 가지지 마라, 완벽을 바라지 마라

by 오월

오월은 시험의 달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상당수의 학생들이 파이널 시험을 치루거든요. 이맘때쯤 저는 어김없이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못할 인과관계 속에서 허덕이게 됩니다.

- 내가 좀 더 나은 선생님이었다면 아이들의 미래가 더 나아질 수 있었을지도 몰라.


여기에서 말하는 '더 나은 선생님'이란, 더 카리스마 있고 더 권위적이며, 성적이나 숙제로 학생들을 휘어잡는 선생님을 말합니다. 평소에는 이런 유형이 더 낫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시기, 결과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지금만 되면 어쩔 줄 몰라하며 학생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문제를 보자마자 풀이과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무조건 넘어가세요. 넘어가는 거 연습 없이 안 돼요.'

'고민해서 문제가 풀릴 거라는 희망을 가지지 마세요. 끝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시간이 남으면 그때 돌아오세요.'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점수를 얻는 것만 의미가 있어요. 완벽하게 문제를 푸는 건 시험 때 할 일이 아니에요.'

'.....'


상황을 떼어내고 보면 어이없는 말들입니다. 희망을 가지지 마라, 완벽을 바라지 마라 등등. 시험이라는 프레임을 붙이면 이런 말을 매일 반복할 정도로 절박하지만요.


평소 저는 성적보다 시험 보고 난 후 학생들의 기분이 더 궁금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도 그래요. 몇 점을 맞았는지보다 모르는 문제가 나왔더라도 후련하게 풀어나갔는지, 아쉬움이 남았더라도 할 만큼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모르는 걸 우연히 맞추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물론 모르는 걸 풀어내는 건 다르지만요.)


하지만 오늘, 저와 학생들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더 높은 성적.


더 높은 성적을 위해서는 콘텐츠 외에도 시간 관리, 멘털 관리까지 필요합니다. 이 시기쯤 학생들도 자기 상태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봅니다. 물론 실력보다 조금 더 잘 보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지만요.


큰 시험을 앞두면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색이 늘죠.


열심히 하는 것과 시험 성적은 인과 관계일까 상관관계일까, 그 관계는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정말 열심히 하지만 그만큼 성과가 나지 않는 학생들도 있어요.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학생들도 분명히 있어서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넘어갑니다. 이렇게 다 다른 학생들이 다른 에너지를 투입해 다 다른 결과가 나는 걸,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이 난다, 좋은 성적이 아니라면 열심히 하는 학생이 아닌 것이다'는 단순한 논리 하나로 설명하는 건 너무 잔인합니다.


더 높은 성적을 바라는 지금도 여전히 놓을 순 없는 건 학생들이 시험 보고 나서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지입니다. 이 성적 때문에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진심입니다.


수학 시험까지 이제 정말 2주 남았어요. 어떤 학생은 시작하기도 전에 긴장하지 않는 약을 먹습니다. 어떤 학생은 '긴장하는 건 아닌데 집중이 안되고 잡생각이 든다'라고 합니다. 이것도 긴장이라죠. 모두 다 다른 학생들이고 큰 일을 대하는 반응도 다 다른데 어쨌든 시험의 결과로 사회에 진입하게 되겠죠.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오늘도 외치겠습니다. 희망을 가지지 마라, 완벽을 바라지 마라! 그리고, 시험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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