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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Nov 08. 2022

예민을 표현하는 순간에만 예민은 무너진다

예민하라, 그리고 꼭꼭 숨겨라

나: 예민을 얘기하다 보니 문득 든 생각인데 말이야. 사회에서 예민함 자체는 극도로 강요되는 반면에 예민함을 표현하는 건 너무 금기시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이렇게까지 모두의 에너지를 소진시켜도 되나.


너: 맞아.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든 누구한테든 온전한 편안함을 느끼기 어려운가 봐.


나: 둘만 수다를 떨 때도 나는 예민할 텐데 이 예민함은 뭔가 달라.


너: 오, 어떤데?


나: 지금도 나는 네 눈치를 살피고 있을 거야.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최대한 내 의도대로 전달되고, 네가 이해하고 공감하길 바라기 때문이야.


내가 하는 말이 네 맘을 상하게 할까 그런 걱정도 있을 거야. 내가 하는 말이 너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 않더라도 네가 듣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달라. 그런 걸 라포가 형성되어 있다고 하던가.


그래서 내 예민함은 너보다 너와 얘기하는 자체에 좀 더 집중되어 있어서 너와 대화하고 싶은 맘이 너에 대한 내 긴장감을 넘어서는 거 같아. 내가 이 모든 걸 의식하는 건 아니야,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거.


너: ㅎㅎ 그래 그래. 둘의 대화에서도 자주 고요한 순간이 생기잖아.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걸 각자가 좀 더 생각을 하느라 그런 거라고 받아들이고 하던 대화를 이어가지. 반면 여럿이 있을 때의 침묵은 빠르게 제거해야 할 '문제있는 지루함’으로 취급돼서 뭐라도 채우려 아무 얘기를 꺼내게 돼.


시간이 비어도 둘일 때는 서로에게 잠시 내어주는 시간이라 필요하고 괜찮은데, 여럿일 땐 그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서 결국 무언가로 꽉꽉 채워야만 한다고 생각하나 봐.


나: 그런가보다. 둘 사이의 예민함은 첨예한 긴장이랑 달라서 에너지 소모가 덜 해. 단순히 그냥 둘이라 숫자가 적어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너: 빈 부분을 네가 채워 넣어야 하는 부담이 있을 때 불편한가? 그룹으로 만났을 때 꼭 너인 건 아니지만 너도 채워야 하는 사람 중 하나로써 불편할 수 있으니까.


개개인 간의 라포 말고 그룹 덩어리 자체의 라포라는 것도 있을까.


나: 네가 얼마 전에 지인들 만났던 얘기를 해줬잖아.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누군가는 고양이 얘기를 하고 그랬다고. 그때 든 생각인데, 그룹 수다가 개선(?)된다고 했을 때 수다의 소재 자체가 엄청 많이 달라질 것인가 싶었어. 그러니까 그게 과연 이야깃거리의 문제일까 아니면 상황의 문제일까 그런.


너: 그래, 나도 너한테 얘기하면서 그날 수다의 구조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읭 스러웠어. 같은 조직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얘기를 하고, 그 얘기들이 엄청 서로에게 먼 것도 아니었고, 대화 참여 정도도 꽤 균형이 맞았거든.


나: 그러니까. 그럼 뭐가 문제일까?


너: 음. 문제는 없지 뭐. 겉보기에 즐겁게 열심히 대화에 참여했는데 그 대화들이 지금 나한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거. 모든 만남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날의 만남을 건너뛰고 다음에 만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느낌이 괜찮나 싶은 거.


나: 그래. 우리가 그룹 수다에 제기한 의뭉스러운 문제의식도 거기서부터 시작했지.


너: 남편이 살림을 했다, 미안했다, 그게 뭐가 미안하냐, 워워워 그게 그날이었잖아. 다들 쿠션 들고 있었다, 는.


나는 그 대화에서 아무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도록 예민했어야 하고, 누군가가 나의 심기를 건드려도 내 예민함을 드러내면 안 됐던 거 잖아. 이 공식은 사회성, 매너라는 이름으로 내 그룹 모임마다 적용되고 있고.


나: 그러니까 남에 대해서는 최대한 예민하게 조심하고 나의 예민함은 최대한 억눌러야 해. 모임 자체는 무결한데 그 안의 개인들만 괴롭네 결국.


너: 생각해보니까 예민이 무너지는 순간은 결국 예민을 표현하는 순간이 아닌가, 싶어. 그 친구가 ‘남편에게 미안했다’고 했을 때 내가 갸우뚱한 상태로 헤어지지 않고 ‘뭐가 미안하냐’라고 얘기를 던진 게 잘한 거랄까.


친구들이 나한테 ‘그 말은 좀 그렇다’, 라던지 ‘왜 그렇게 말해’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왔다면 내 말을 더 할 기회가 생기고 좋았을 텐데. 공은 던졌는데 누가 받아주긴 커녕 던지자마자 다들 합심해서 다시 내 주머니에 돌려 넣어 애초에 없던 공이 돼버렸어.


나: 예민을 표현하는 순간에 예민은 무너진다, 공감해.


한때 언니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둘이 있었어, 언니까지 셋. 그중 한 친구가 어느 날 뜬금포로 절교를 선언해. 문제 제기도 없이 그냥 바로 절교. 남은 둘이 얼마나 벙쪄? 그 절교를 원한 친구한테는 그 모임이 불편했거나 무의미했거나 했겠지. 그런데 그런 표현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거야, 남은 둘이 시그널을 해석 못했을 수도 있겠지. 과연 그게 그 친구의 성향이기만 했을까. 언니는 그 이후 둘과 각각 따로 만나긴 하는데 여전히 그때의 이유를 몰라. 다른 둘이 따로 만나는지는 잘 모르겠어. 암튼 셋 일 때 문제였던 건 확실해.


언니 말로는 그 친구가 말없고 묵묵하대. 지금도 둘이 만나면 언니가 대부분의 시간을 얘기하는 거 같아. 그 친구가 자기의 예민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시나브로 울 언니랑 가끔 만나는 관계, 가 아닌 더 가까운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


너: 많이 다른 얘기긴 하지만 나는 뭔가 고민될 때 No 여도 상관없고 부딪혀도 괜찮으니 빨리 해결되길 바라. 나의 그런 면이 항상 맘에 드는 건 아니어도 그게 내 맘이 더 편해져서 어쩔 수 없어. No라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 기분이 좋진 않아도 그 고민을 가지고 있는 내내 예민한 게 너무나 불편해.


나: 그래 맞아. 무너뜨리는 방법을 더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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