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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Nov 12. 2022

왜 대화 중 상대방 빼고 모두를 실드 치는가

모르는 이의 편이 되기 위해 기꺼이 너와 싸우겠다

나: 아까 나의 ‘중립 강박’에 대해 얘기했잖아.


너: 응응, 왜 대화 중 상대방 빼고 모두를 실드 치는가를 얘기하다가 나온 말이었지.


나: 맞아 맞아. 내가 티브이 보다가 ‘아우 저 캐릭터는 진짜 왜 저래’ 이러면 엄마가 ‘쟤는 이래서 저러고 저래서 저러는 건데, 너는 그걸 왜 뭐라 그러니!’ 이렇게 반응한다며 엄마가 내가 까는 모든 것을 실드 친다 그런 얘기였어. 써놓고 보니 울 엄마 진짜 웃기네ㅎㅎ


너: 응, 우리 엄마 역시 ‘기억도 안나는 과거 이웃의 편은 될 순 있지만, ‘딸 보호하기, 딸 편 되기’는 DNA에 없더라’는 얘기도 했지. 아, 수치심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랬다. 누군가에게는 ‘남 창피하게’가 너무 큰 이유가 되는 게 이해가 잘 안 된다며.


나: 아 맞네. ‘김서방한테 창피해서 내가 얼굴을 들 수 없다’ 그 에피소드였다! 다시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 그 많은 이유들 중에 입 밖으로 낸 게 그거라니 고개가 앞으로 끄덕여지는 게 아니라 옆으로 갸우뚱~


너: 그래서 네가 ‘사람들이 대화 속 어떤 모난 것도 싫어해서 상대방의 정을 치는 게 아니냐’고 했어. 모난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을 반박하면 하려던 말은 어딘가로 날아가고 대화는 정말 산으로 가잖아. 이미 대화의 평화는 깨졌으니 평화 강박인 것도 아니고 대체 뭐야. 네가 티브이보다 한마디 했을 때 어머님도 ‘그러니까, 쟤 왜 저러니’ 이러고 마셨으면 그야말로 평화인데 티브이 속 ‘쟤’를 지키기 위해 너와의 전쟁을 선포하신 거 아냐.


나: 그러니까! 이 상황을 말로 표현하니까 너무 웃긴다 진짜.


너: 그래서 네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때의 너는 중립 강박이었던 거 같다고 얘기했어. 시댁 흉을 보던 친구 앞에서 기꺼이 시댁 편을 들던 흑역사.


나: 야 부끄럽다, 모. 과거의 나는 그게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었을 거야. 친구의 편이 되는 것보다 그 상황을 ‘어떻게든 설명해내려고’ 노력했어. 이성이 모든 것을 뚫고 나오는 쿨병 말기에 걸려있던 때였어.


너: 그게 네가 생각하는 너의 인기 이유이기도 했잖아.


나: 맞아. 학창 시절 친구들이 나를 좋아했었는데, 차분했던 게 이유였나 싶은 거야. 차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부분의 상황에 무관심했기 때문인 건데 친구들은 내가 자기를 남들보다 더 이해한다고 생각했어. 그때 나도 엄마랑 마찬가지로 내 사람들을 챙기지는 못했네.


너: 왜왜


나: 나는 기억이 안나는 에피소드인데, 고등학교 때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 중 하나가 반에서 누명을 썼어. 우린 다른 반이었는데 그때 누군가 거짓말을 퍼뜨려 내 친구를 모함했대. 나는 쉬는 시간에 건너 들었는데 아마도 모함, 거짓말 그런 뒷얘기를 몰랐던 거 같아. 사실 관계가 어떻든 친구를 찾아가서 ‘너 괜찮아?’ 물었어야 하잖아, 그런데 ‘너 대체 왜 그랬어?’ 이랬다는 거야 베프인데! 그 친구가 그 상황에서 다른 친구들이야 자기를 오해할 수도 있고 그러든지 말든지 크게 관심 없었는데 내가 가서 왜 그랬냐고 한 게 너무 충격이었대.


그니까, 저 쪽에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도 기꺼이 아무 편에도 서지 않았던 거야. 그때의 나는 내 친구 편이 아니었던 거지. 난 이걸 기억도 못하다니 그것도 참 미안해 그 친구한테.


너: 우리 고등학교에도 그런 일이 참 많았다.


그때는 친구 무리가 있었고 무리 전체가 스펙트럼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었어. 쟤네는 노는 무리, 저기는 맨날 공부하는 무리 머 그런 식으로.


나: 나는 여기저기 무리에 친구가 있었는데 막상 내가 속한 무리는 없었던 거 같아. 그래서 그 스펙트럼 어딘가에도 내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어.


너: 어떻게 그런 관계가 가능하니.


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아까 말한 그 친구가 나를 분석해줬어. ‘오월학 박사, 논문 새로운 내용 없나?’ 이러면 그 친구가 나에 대해 얘기해줬거든. 내 생각엔 그 친구가 분석을 통해 그때의 섭섭함을 뒤로하고 나를 여전히 친구로 남겨둔 거 같아ㅎㅎㅎ


그 친구 말로는 나를 따르는 친구는 많았지만 막상 나는 누구에게도 감정적인 에너지를 쏟지 않았던 거 같대. 학창 시절에는 교우 관계를 통해서 어느 정도 감정적인 해소를 하게 마련인데 나는 그걸 안 했달까. 그때의 나는 가족이 무거웠고 사춘기가 심해서 내 안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느라 누가 다가오든 떠나든 그 자체로 큰일이 아니었어.


너: 고등학교는 야자 때문에 정말 오랜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잖아, 가족에게 거리를 두고 싶은 욕망이 가장 클 때 물리적으로 떨어질 수 있었어. 그런데 학교에서 성취감을 느낀다든지, 다른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던지 그랬던 건 아니라서 아직 가족과 분리된 찐 개인인 나를 인지하진 못했고 그러니 가족과의 심리적인 거리는 미처 조정이 안됐던 거 같아.


나: 친구들과는 그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고 부딪히면서 아마 많은 스파크가 일어났을 거야.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더 강한 애착, 질투, 집착, 이간질, 열등감, 피해의식 등등 자연스럽게 낯설고 새로운 감정들이 올라왔겠지. 아마 그 친구는 그 시기의 내가 이 부분을 건너뛴 거 아닌가라고 해석했던 거 같아. 어디까지나 그 친구의 해석이지만.


너: 그래? 그랬던 거 같아?


나: 그 호기심 많은 친구는 자기 경험에 빗대어 나를 해석했을 거잖아. 걔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저 아이는 궁금하다’, ‘쟤는 나랑 안 맞겠다’ 싶었대. 나도 궁금한 친구 중 하나였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됐지. 나는 전혀 그런 성향이 아니었으니까 그 친구는 내가 자기가 느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얘기한 거 같아.


너: 오, 재미있다 그거.


나: 그 친구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별로다, 안 맞을 줄 알았는데 괜찮네 이런 걸 학습하면서 로직을 수정했고 그러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직접 만들었어. 그래서 막상 나랑 친한 친구들에 대해서도 그 친구를 통해서 들은 게 더 많아.


너: 나도 그 시기를 무겁게 지냈거든. 그 오랜 시간을 학교에서 보냈는데도 여전히 그 시기의 내 감정이나 가족 기억이 더 잔뜩이야. 그때 가끔 너를 보면 마냥 잘 지내는 줄.


나: 학교에서는 진짜로 잘 지냈어. 나도 그게 어떻게 가능했었는진 모르겠지만 감정 소모 없이 모두와 잘 지냈어. 중고등학교 친구들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도 없고. 움.. 알고 보면 인기가 많았던 걸 내가 즐겼을까? 그러니까 그 관계들을 다 적절하게 유지하느라 중립 강박에 걸린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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