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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Nov 14. 2022

당신의 의자는 어떻게 배치되어 있나요

그 의자 진짜 다 당신 꺼요?

나: 사회성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여전히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라는 무대 주변에 의자를 몇 개 어떻게 놓는지 결정하면서 발달하기 시작하는 거 같아. 더 잘 맞는 이미지가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은 우선 의자.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나: 태어나면 주변에 이미 내 의지에 상관없이 세팅된 가족 혹은 가족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있어. 그러다가 누구에게나 의자 배치를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 이때는 아이들이 의자 배치를 빠르게 많이 할수록 부모들이 안심하고 주위에서 칭찬을 해. 물론 그 반대 상황에서는 부모들이 안절부절못하고 걱정하니 아이는 눈치 보게 되겠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건 나쁘고 문제 있는 거 그리고 친구가 많으면 칭찬받는 거 이렇게 생각하게 될 거야.


너: 그래 그렇지.


나: 문제는 내가 의자를 내 맘대로 놓기도 전에 사람들이 먼저 들어와 버렸어. 내가 초대한 사람도 있고 억지로 끌려온 사람도 있어. 급한 맘에 막 중구난방으로 의자를 배치해서 보이는 대로 우선 앉혀. 거리도 개수도 생각 안 하고.


문제는 일단 자리를 잡으면 그 담에는 온전히 내 의지로 컨트롤이 안 되는 거야. 쟤는 좀 나갔으면 좋겠는데 안 나가고, 다른 애를 저 위치에 앉게 하고 싶은데 그것도 안되고, 더 알고 싶은데 떠나고 등등. 그러다 절친이나 연인이라도 생기면 전체적으로 자리 재배치가 일어나겠지. 그렇게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에너지를 다 쏟다 보니 정신없는 와중에 가족들이 안보임. 가족이란 자고로 의자도 없이 바닥에 철퍼덕 앉아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다 사라졌어.


너: 그다음엔?


나:  위치는 제각각이더라도 급하게 가족 자리를 마련해보겠지? 누군가는 가까운 자리에, 누구는 보이지도 않는 먼 의자에 앉게 하고, 또 누구는 자리 없다며 내보내는 거지, 가족인데도 얄짤없어.


일단 의자가 놓이면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도 생기고 의자에 앉아있는 누군가가 떠날까 봐 전전긍긍해. 눈앞에 사람이 보이면 앉게 하려 의자를 억지로 마련하게 되고 그 전후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이 당최 오질 않아. 그 와중에 내 에너지는 소진돼.


의자는 나의 확장판인데 내 맘대로 세팅할 여유가 없어.


너: 알고 보면 나는 의자가 가까운 곳에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사람일 수도 있고 의자가 멀리 있더라도 숫자가 많아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런 고찰을 할 기회는 막상 없네. 내 생각에 바쁠 땐 관계를 바라볼 수 없고, 관계에 너무 바쁠 땐 내 생각할 시간이 없어.


나: 맞아.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에너지가 남은 사람은 의자를 더 가까이 당겨오거나 새로운 의자를 더 배치하고, 에너지가 소진된 사람은 의자를 필요한 수 보다도 더 없애버려. 자기의 무대 자체를 남에게 내어주는 큰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근데 여전히 이 모든 과정에서 의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모자란 지 보다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 위주로 보게 되는 거 같아.


너: 그러게, 어떤 사람에겐 주위에 사람들이 다가오는데 내어줄 수 있는 의자가 없고, 또 어떤 사람은 의자는 비어있어도 앉을 사람이 없겠다. 정말 자기가 어떤 타입인지를 먼저 알아야겠어.


나: 얼마 전에 언니가 ‘나는 친구도 없고 정상이 아니잖아’ 그러는 거야. 내가 놀라서 언니가 말하는 정상이 뭐냐, 물었더니 다들 친구도 많고 즐겁게 지내는 거 같은데 자기는 아니다, 고 하지 않겠어? 나는 언니가 말하는 소위 주위에 친구가 많아 보이는 사람 중 하나지만 그 시간을 고민하잖아. 그래서 친구가 많지만 즐겁지 않은 사람도, 친구가 없지만 즐거운 사람도 많다고 뻔한 얘기 하면서 드라마에 속지 마라, 고 말해줌. 모.


너: 전에 네가 얘기했을 때 언니는 혼자 새로운 걸 하기 어색해하는 거 같더라. 가서 친구를 만들기보다 친구랑 같이 가서 그 시간을 보내는 타입? 너보다 더 관계형이랄까. 그러니 친구가 없으면 일단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어렵겠네.


나: 맞아. 내가 이 의자를 생각하게 된 것도 언니와의 대화 때문이거든.


언니는 남들처럼 20대까지는 의자를 많이 배치했는데 친구들이 결혼하고 육아하고 생활방식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의자를 들고 떠났어. 빈자리에 새롭게 의자를 더 놓으려 노력하지 않는 거 보면 자기가 감당할 가까운 의자가 많은 사람은 아니고, ‘정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거 보면 적당한 거리로 유지되는 관계는 지금보다 더 있었으면 하는 거 같아. 지금은 가족이 가까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여전히 한두 개는 비어있거든, 언니의 나머지 의자에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앉아서 균형이 맞았으면 좋겠어.


너: 너는 어때?


나: 지금의 나는 몇 개 의자를 매우 가깝게 놓고 좀 떨어진 주변에 상당히 많은 의자들을 배치한 듯. 오월의 친구 포기 못해.


너: 어쨌든 그룹 친구가 필요한 거네. 그래서 ‘재미있지 않으면 안 나가면 그만’ 이런 접근 방식이 아니라 지금 그 친구들과의 시간을 바꿔보고 싶은 거구나.


나: 그런가봐. 한창 연애 강박이 있던 시기가 있었어. 그때는 연애중이 아닌 내가 부족한 거 같고 그게 창피했던 거 같아.


너: 그래, 그런 시기가 있지.


나: 소개팅을 하면 상대가 인상적이지도 않고 그 시간이 재미있지도 않고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데도 애프터가 들어오지 않으면 감정 소모가 일어나는 거야. 그렇다고 애프터가 들어오면 행복한가, 확실히 그것도 아냐.


너: 그때의 너에게는 연인이라는 의자가 비어있던 게 아니라 없었던 거네. 그걸 알았다면 쓸데없는 낭비 안 하고 좋았을걸. 의자야 내가 필요할 때 세팅하면 될 걸 뭐하러 그랬나 몰라.


나: 그러게나 말이야. 너는 어때.


너: 지금 내 가장 가까운 의자에는 우리 애들이 앉아 있어. 음, 얘네는 거의 5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데? ㅎㅎㅎ. 그래도 요 녀석들이 내 자리 자체를 차지하지는 않도록 조심하고 있어. 조만간 내 고민은 이 아이들이 의자를 배치할 때 과연 나는 어떤 의자에 앉아야 하는 걸까 가 되겠다.


나: 자리 마련해 줄 때까지 인내심 가지고 기다려야 해, 비집고 들어가면 안 돼!


너: 알았어, 알았다고!ㅎㅎ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익명의 관계를 맺잖아. 나에게 반응하는 사람들, 내가 반응하는 사람들도 내 의자 어딘가에 앉아있는 걸까?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 그건 아닌 거 같아. 참 애매한 게, 서로 전혀 모르는데 가끔은 너무 훅 들어오잖아. 훅 들어오는지 내가 훅 받아들이는지 암튼 영향을 크게 받지. 그들의 말을 직접 듣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방식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이니까 말이야.


가상의 인물인데도 내가 이 거리 저 거리 비어있는 의자에 자리를 내어주게 되다 보니 오히려 너무 큰 위로나 상처를 받게 되는 건가 싶어.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 신경 쓰지 말자’, 이 단순한 거리 유지가 안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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