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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Nov 16. 2022

나 위주의 감정과 상대방을 대상으로 한 감정

나의 것이 아닌 감정들을 상상하지 말고

나: 감정의 종류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타인의 영향을 받는 감정들이 있잖아.


너: 그렇지.


나: 전에 내가 ‘그 시절 오빠는 가족의 빌런이었다‘라면서, 오빠를 미워한 만큼 불행하다는 마음이 컸고 그 불행을 말하는 게 창피하다고 말했었거든.


너: 기억난다. 그즈음 우리가 서로 가족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네가 창피하다고 한 순간 갑자기 네 얘기에 가족 아닌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어.


나: 그랬어?ㅎㅎ 그때 너도 네 얘기를 이것저것 했잖아, 듣는 입장이던 나는 ‘그랬구나, 그때 많이 힘들었겠네, 그건 여전히 힘들겠다‘ 그런 생각을 주로 했지.


나의 '창피하다', 를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상대방을 혼자 상상하나 싶은 거야. 잘 보이고 싶은 상대가 있는데 내 부정적인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그런 상상. 예를 들어 내 얘기를 들은 네가 나를 아니면 우리 오빠를 흉보는 상상?


너: 갑자기? 내가?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쒀!


나: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나도 네가 내 얘기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라고 매우 확신하거든. 그날의 대화에는 그 어디에도 실망할 사람이 없었고 나는 그걸 진짜로 알아. 그렇다면 내 창피함은 어디에서 온 걸까, 혹시 또 창피한 게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나 무의식으로는 네가 나를 비웃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나? 내 무의식 왜 오버해? 모.


너: 네가 얼마 전에 해준 얘기 기억난다. 그때 네가 학생한테 뭔가를 설명하는데 걔가 도무지 못 알아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시도하다 화가 다 나더라고. 그런데 화가 나는 너 스스로가 이상해서 생각해보니 상대방이 잘못한 게 없더라고. 이해가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사과를 해 뭐를 해. 일부러 너 엿 먹으라고 이해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 텐데.


나:  내가 아마 답답함을 화라고 생각한 거 같다고 했어,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답답함은 나 위주의 감정이고 화나는 건 나에게 잘못한 상대방을 대상으로 한 거니까. 감정을 풀 때 혼자 풀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을 참여시킬 건가도 다르고 말이야.


너: 너의 창피함도 다른 이름이 있는 걸까? 알고 보면 너 위주의 감정인데 네가 상대방을 세팅하고 창피라고 부르는 거 아냐? 음.. 겸연쩍음 그런 걸까?


나: 인터넷에서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한 미국인이 비행하는 내내 자기 가족의 좋은 나쁜 기쁜 슬픈 얘기를 하더라,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절친 사이에서도 못 들을 온갖 얘기를 다 하길래 이 정도 관계면 집에 초대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막상 그 미국인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헤어졌더라', 그런 얘기가 있었어.


너: 들어본 듯.


나: 어떤 상황에서 순간 발생하는 감정이 있고 거기에서 더 깊이, 혹은 옆길로 파생되는 감정들이 있잖아. 우리는 자기 일이 아니면 그렇게까지 깊거나 넓게 가지 않는 거 같거든. 지인의 경험에 그 정도로 감정을 소모하면 일상생활 못하지 못해.


저 미국인은 자기 일이, 가족 얘기더라도, 그저 대화 소재 정도라는 걸 알았던 거 같아. 그 소재가 어떻든 그런 대화 상황에서는 자기한테도 상대한테도 감정의 소모가 없을 거라는 걸 말이야. 오히려 듣던 한국인이 '저런 얘기까지 하다니?'라면서 불편했을 지도.


너: 자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버릇해서 그런가. ‘내 일을 듣거나 본’ 상대방도 '나만큼' 깊고 멀리 갈 거라고, 그래서 그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거라고 착각하나 봐.


나: 가까운 사이에서는 좀 더 깊은 공감을 하지만 보통의 관계에서 대화할 땐 ‘그렇구나, 좋았겠다, 싫었겠다’ 이런 1차 감정이 대부분 일 텐데 말이야, 다들 좀 오버하고 있지. 나말야, 오버하지 마!


너: 한창 사회적으로 공감을 엄청 강조했잖아, 예의, 눈치를 강하게 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도 하고. 적당한 거리의 사람들과는 서로 불편하게 하지 않는 정도면 되는 거 같은데 지금은 불편보다 불행을 조심하는 느낌? 근데 어느 정도부터 상대가 불행한 지 잘 모르니까 그 불행을 가장 예민한 사람 기준에 맞춰서 생각하는 거 같아. 그리고 기분 나쁘다,는 과정이 없이 괜찮다가 불행으로 넘어간다고들 생각하는 거 같고.


나: 맞아. 듣는 상대는 별생각 없는데도 말하는 사람은 행여나 상대를 불행하게 만들까 봐 너무 과하게 조심하기도 해.


너: 그러니까 말이야. 듣는 사람이 항상 그렇게 깊은 감정까지 확장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필요가 있겠어.


나: 이건 다른 얘기인데, 한 커뮤니티에 ‘오랜 연인이 있는데 자기(여자) 학력이 훨씬 더 높다, 상대는 나한테 너무 잘하고 둘은 잘 맞다, 상대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고 잘 된다, 결혼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친구들 남편은 다 의사, 판검사인데 내 남편은 별 볼일 없어도 괜찮겠어요?’ 이런 댓이 달린 거야.


너: 아이고야, 별 볼일 없는 건 또 뭐야.


나: 킬링 파트가 한두 군데가 아니지ㅎㅎㅎ 의사 판검사가 뭐가 부러운지는 얘기하지 않기로 하자.


저 댓글을 쓴 사람은 저런 상황에서 감정이 좀 더 멀리 가는 사람인 거 같지? 글쓴이가 '친구는 남편 직업이 좋아서 좋겠네', 이렇게 끝낼 수 있는 사람이면 괜찮은데, 저 댓글을 쓴 사람처럼 '친구는 남편이 의사, 판검사라서 좋겠는데 나는 별 볼 일 없는 남편 때문에 불행하다', 이렇게 모든 결론이 자기로 끝나는 사람이면 안 괜찮은 거지.


너: 친구 남편 때문에 신경 쓰는 시간이 살면서 얼마나 된다고.


나: 내 직업도 아니고 내 남편 직업도 아니고 친구 직업도 아니고 친구 남편 직업이라...  남의 행복은 남의 행복일 뿐인데 그게 나의 불행으로 등치 되면 결혼 못하는 거지.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맘을 어쩌겠나 싶다가도, 맘이라는 게 자주 여기저기 끌려 다니는 거 같기도 하고.. 뻔한 얘기지만 다들 자기 자신을 미리 잘 알고 있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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