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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Nov 24. 2022

실패를 만날 때까지 더 나아가는 건 언제나 최선인가

여기도 저기도 압도당하는 사람만 있습니다.

나: 이번 주에 급히 일을 하느라 수다를 맘껏 못 떨어서 입이 근질근질해!


너: 무슨 일.


나: 지인이 갑자기 면접이 잡혔다고 도와달래서 매일 같이 준비하는 중. 면접까지 5일밖에 시간이 없거든, 지인은 그 안에 그걸 준비하느라 방대한 콘텐츠 양에 뇌에 과부하 오고 소화도 안돼서 밥도 못 먹고 있대.


너: 기술 인터뷰?


나: 그런 셈. 인성 면접을 나랑 준비하진 않지. 나 인성 필기시험에서 떨어진 적 있다고 말했니? 진짜 야 어디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하고 서류에서 떨어진 척 한다.


너: 야 너도 안 맞는 곳 미리 거른 거지. 간당간당하게 갔어봐, 그거 어째.


나: 그러네, 앗싸. 그 지인은 사실 인터뷰를 보러 가고 싶어 하지 않아. 지금 준비해도 합격 가능성이 많이 희박하거든. 지원한 거 보면 맘이 없는 건 아니니까 인터뷰 기회를 날리기도 애매, 면접장에서 4~50분을 자신 없이 앉아 있을 거 생각하니 그것도 벌써 자존심 상해서 애매..


너: 움.. 면접을 안 가면 '서류 합격'에서 멈추지만 '면접 불합격'하면 아무리 그 누가 아니라고 해도 자기가 부족한 느낌에 멘탈이 흔들리지


나: 맞아, 나 브런치 작가 떨어졌을 때도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론 열받았어!


너: 야 티 났어. 모.


나: 야, 모ㅎㅎㅎㅎㅎ. 그 지인은 주위에서 하도 좋은 기회라고 하니 억지로 떠밀린 거 같아.


너: 아이고.. 참 누구한테 좋은 기회인지를 모르겠어, 각자 상대방에게 좋은 기회라며 서로를 만족시키려고 무리하다 '다 너 때문'이라고 터지는 거지.


나: 그러게나 말이야. 좋은 기회 잡아도 또 다음 좋은 기회 쩌어기 있다며 인생 끊임없이 힘들기만 하고 그 좋은 기회 덕은 언제 보냐.


너: 꼭 나 같다 야, 내가 맛있는 vs. 맛없는 음식 있을 때 맛없는 것부터 먹는다고 얘기했니? 맛없는 거 먹다 보면 배불러서 더 못 먹어. 그러면 다음 식사 시간이 되고 또 거기서 맛없는 거 먼저 해치운다며 손을 뻗어- 그러다 보면 계속 맛없는 것만 먹게 되는 걸 알면서도 참 못 바꾸더라고. 뭘 자꾸 해치우겠다는 건지.. 원 참, 인생.


나: 회사 다닐 때 부서 바꾸고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나갔는데, 진짜로 쌩판 처음인 분야여서 스트레스가 심했거든. 고객님 앞에서 모르는 티를 낼 수도 없고.. 그때 내가 속한 파트에 리더가 있었는데 하는 것마다 완벽하게 해내는 천재형 완벽주의자였어. 그는 자기 압박과 스트레스가 심해서 모든 손톱이 다 망가져있었어, 손톱을 피날 정도로 마구 물어뜯었거든.


너: 그래, 우리 윗세대 여자 상사들이 자기 증명을 하느라 고생이었지.


나: 맞아 그랬지, 기회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초반 기회를 잡은 사람들은 또 힘들었어.


내 부서는 고객사에 부문별 프로젝트를 수행했거든. 그러다 여러 부문을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면서 딱히 그 분야가 아닌 나도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그도 처음으로 리더 역할을 하게 된 거야. 그는 누가 쫓아오지 않아도 알아서 항상 전속력으로 달리는 사람인데 어리바리한 내가 팀원으로 들어가면서 제동이 걸렸지.


너: 이제 누가 포식자이고 피식자인가.


나: ㅎㅎㅎ 맞아 진짜, 그가 리더로서 나를 끌고 가야 하니 대 환장이지, 서로가 서로의 빌런이었어. 음.. 모르는 사람은 감도 못 잡는데 설명하는 사람에게는 별거 아닌 것들이 있잖아. 예를 들면 달리기는 어떻게 하나요?라는 질문에 '몸통을 약간 앞으로 숙이고 스텝에 맞게 발을 내딛으며 손을 앞뒤로 움직여주면 됩니다, 진짜 그게 다예요'(나 설명 왜 이렇게 못해)라고 하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 그렇지,라고 하지만 애초에 달리기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만으로 찐 달리기가 뭔지는 알 수 없잖아. 암튼 그때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야. 그는 그렇게 다다다다다 설명을 하자마자 바로 '음 얘는 왜 100m를 13초에 못 들어오지' 라며 의아해하던 사람이고.


너: 그래, 상황이 그려진다.


나: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그가 나한테 '운전을 처음 배울 때 면허 따고 바로 남편이 나를 고속도로로 데리고 갔어. 너무 무서워서 엉엉 우는데 죽지 않으려면 운전은 해야겠고 미치겠는 거야, 그렇게 운전을 배웠어 나는' 그러더라.


너: 움 애매하다. 그는 그렇게 항상 전투적으로 살았나 보다.


나: 그랬나 봐. 프로젝트 그거 별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그가 너무 몰아붙여서 그 크기가 어떤지도 모른 채로 압도됐었거든. 프로젝트도 성공적이었고 많이 배웠지만 힘들었던 기억이 강렬해서 회사 다닐 땐 그와 다른 프로젝트도 많이 하고 가깝게 지냈는데도 지금은 연락 안 해. 나를 몰아붙이던 것보다 더 강하게 자기를 몰아붙였을 걸 아니까 짜증 나면서도 왠지 지금도 어디선가 그렇게 힘들게 자기를 괴롭히고 있을까 봐 걱정되고 그래. 그도 가끔은 이완이라는 걸 하길 진심으로 바라.


너: 너 그거 스톡홀름 증후군이야~ 좋아하거나 미워하거나 하나만 해라.


나: ㅎㅎㅎ 이놈의 이중 감정. 그땐 가스 라이팅 이런 개념이 이리 넓게 퍼지지도 않았지. 고객! 회사! 라면 상사가 스트레스 주고 내가 그 정도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한 줄 알았어. 모든 잘못은 항상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고.


프로젝트 스트레스에 그는 손톱을 뜯고 나는 머리를 끊고 다른 팀원은 수염을 뽑았거든. 우리 파트가 주도하는 회의라도 들어가면 아주 볼만했지.


너: 그 습관이 그때 생겼구나?


나: 시작은 모르겠지만 그때 더 강화된 건 확실해. 지금 내 지인이 실체 없는 '좋은 기회'에 압도돼서 밥도 못 먹고 스트레스받는 거 보니 그때의 나도, 그때의 그도 생각나네.


그때의 우리는 왜 그렇게 몰아붙이는 걸 감당하는 게 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몸을 해하면서까지 자발적으로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때보다 10여 년은 더 지난 지금 이 지인을 몰아붙이는 건 누구일까. 돕는 나 역시 일조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몰아붙였더니 합격하면 그건 해피엔딩인 걸까. 그다음은 어떤 더 큰 좋은 기회가 괴롭힐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불가피한 걸까. 어느 정도까지 몰아붙여야 원래대로 회복할 수 있을까. 이렇게 반복하다가는 회복 스프링이 늘어나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 생길까. 내 스프링은 어떤 상태일까.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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