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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Nov 28. 2022

상상은 정말 능력인가

도무지 상상하지 않는 걸요.

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 있잖아


너: 착한 일진?


나: ㅎㅎㅎ 응, 그런 거. 요가를 할 때 나는 좀처럼 이완이 잘 안돼. 이완을 잘하려면 동작을 더 잘해야 하나 싶어서 더 열심히 하다 보면 더 이완이 안돼.


너: 그러고 보니 '요가를 잘한다'도 이상한 단어 조합이네.


나: 요가 잘하려고 오버하는 그 사람 나야 나. 내가 참여하는 건 대부분 눕거나 앉아서 동작하고 조명도 거의 안 켜서 다른 요가보다도 더 서로의 동작을 볼 기회가 없거든. 그러면 과시하려는 것도 아니고 뭘 잘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 이완하러 가서 이완이 안된다고 고민하면서도, 얼마나 이완됐는가 보다 지금 내 동작이 어떤 모습일까에 더 신경 쓰고 있는 현실.


너: 원래 네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과하게 동작을 한단 얘기야?


나: 적당한 긴장으로 이완을 유도하는 동작들에서 난 기승전 긴장이랄까. 맨 마지막 동작으로 시체처럼 눕는 자세를 하면 여기저기서 쌔근쌔근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그때도 정신이 말똥말똥해. 요가를 하면서 거의 단 한 번도 잠이 든 적이 없어. 충분히 이완된 느낌이 아니야.


너: 움 나는 ‘현재에 머물라’ 뭐 그런 거 어렵던데. 뇌가 ‘하지 마라’는 걸 할 줄 모른다며? 그래서 생각을 비워라=생각을 하지 말아라, 현재에 머물라=미래나 과거를 생각하지 말아라 그게 잘 안된다더라.


나: 진짜 그러네. 동작도 오버해서 하고 생각도 자꾸 비우라는데 넘쳐나니까 정말 피곤해.


너: 요가를 잘한다는 게 동작이 아니라 그런 건가 봐.


나: 그런가 보다. 오늘 요가하면서 우리는 대체 언제 이완하게 되는 걸까 궁금해졌어. 태어나자마자 새롭게 경험하는 감정들은 이완보다는 좀 더 긴장에 가깝잖아, 눈치도 얼마나 봐야 해. 그러다가 학교 등 본격적인 경쟁환경에 놓이면서 더 심해지고, 어느 순간 제어가 안 되는 거지.


너: 그래. 밀물만 들어오고 썰물이 없네 그러고 보니.


나: 나의 극심한 무대공포는 5학년 때 처음 드러났던 거 같아. 아마 그 전에도 떨렸을 텐데 그때는 잘하고 싶은 욕망이 내 긴장된 상태를 넘어섰었나 봐. 그러다 5학년 어느 날 수업 중 선생님이 일어나서 교과서를 읽으라고 했고 그때 목소리가 떨리고 몸이 컨트롤이 안되기 시작했어.


너: 그래. 그렇게 컨트롤이 안 되는 경험을 한 번 하면 그 전으로 돌아가기 정말 어렵지.


나: 그런가 봐. 그 이후로 머 인생에 긴장은 더해지면 더해졌지 줄어들진 않으니 여전하지 뭐.


너: 그러게. 일을 하지 않아도 이완상태가 아니라면, 회사만 문제였던 건 아닌가 봐? 연로한 부모님은 좀 더 이완되어 있나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고. 긴장상태로는 끊임없이 나아가는데 언제 돌아와.


나: 모든 긴장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완이야 말로 정말 뛰어나게 잘하고 싶다야! 아, 요가 중 이완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는데 다른 일로 스트레스가 가득이었을 때였어. 역시 가득 채워야 넘치는 건가.. 훔..


아, 나 오늘 요가 시작하면서 또 선생님이 소원을 빌라는 거야, 그래서 상상하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어.


너: 상상?


너: ㅎㅎㅎ 어. 내가 오늘도 어김없이 시리즈를 봤는데 (아마) 인상주의가 막 시작되던 시절이 배경이었어. 모델을 그리는 드로잉 수업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보이는 대로 그려라’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그중 한 학생이 그림을 막 성질을 내면서 그리면서 이야기가 전개돼.


너: 보이는 대로 그려라..


나: 응 맞아. 거기 주인공은 교수의 가르침대로 눈으로 보이는 대로 그리는 화가였는데 그 성질내던 학생은 그렇지 않았던 거야. 그는 내려오는 얘기를 상상하면서 어둡고 강렬한 그림들을 그리는데 꽂혀있거든.


너: 상상 속에 보이는 걸 그리면서 상상을 구체화하는구나.


나: 그런 거지. 4, 5살이 그린 그림과 비싼 현대미술 작품을 가져다가 구분이 가냐, 면서 인터넷에서 토론을 할 때 그동안은 별 생각이 없었거든. 그런데 저 ‘보이는 대로’라는 말을 들으니까, 현실이든 상상 속에서든 보이고 감각하는 걸 형상화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그려놓고 보니 어떤 그럴싸한 느낌이 나는 건 확실히 다르겠구나 싶었어. 볼 때 구분을 못할진 모르지만.. 난 진짜 못 맞추더라.


너: ‘보이는 대로’라.. 당연히 소재가 있고 그걸 표현하는 기술이 있는 건데 지금까지는 기술 위주로만 생각해왔네.


나: 내 꿈은 현실 확장판이다, 고 말한 적 있지? 막 회사 나오고 그런. 나는 도무지 공상과학이나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스케일은 커녕 현실 기반 어떤 세계관도 안 만들어져. 얼마 전에 이걸 들었는데 내가 만약 도시에서만 산 게 아니라 이런 환경에서 살았다면 달랐을까 싶긴 해.


너: 나는 공포영화를 진짜 무서워하거든. 우연히 채널 돌리다 스쳐봐도 머리도 못 감아. 모.


나: ㅎㅎㅎㅎ 나는 공포영화는 안 무서워. 즐겨보지도 않지만 그냥 내 삶이랑 연결된 느낌이 안 들어서 그런 거 같아. 중학교 때 한창 돌았던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그런 시리즈는 너무 무서워. 링도 너무 무서워, 왜 사람이 티브이에서 나와! 영화도 추격자, 화차 이런 거 너무 무서워.


너: 너는 정말 현실이랑 가까운가 보다.


나: 그런가 봐. 내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 그런데 만들고 싶은 게 없어서 고민이야. 그래서 고칠 게 생기거나 이케아에서 뭐 사 오면 씐나.


너: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지금의 너는 좀 더 기술자구나.


나: 맞아. 지금의 나는 글 쓰는 것도 좋아하는데 쓰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을 때 나오는 답이 없어. 지금의 나는 나의 세계관을 구체화하지 않고 있는 거지, 현실 기반으로라도 말이야. 지금은 감정뿐이라 스토리가 아닌 수다에 머물고 있지만 내 세계가 있으면 글이든 그림이든 표현해내고 싶지 않을까. 뭐 아닐 수도 있고.


너: 음..


나: 동아리 공연 연습하는데 연기 훈련해주던 선배가 동아리실을 꼼꼼하게 보라며 충분히 시간을 줬어. 그러고 나서 눈을 감고 동아리실을 머릿속에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보라는 거야. 책장이 몇 단인지, 그 책장에 책이 얼마나 꽂혀있는지, 각 층마다 그 책들은 왼쪽 아니면 오른쪽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있는지, 동아리실 소파는 다리가 몇 개인지, 쿠션이 얼마나 망가져있는지 머 그렇게. 막상 그리려 해보니까 내가 원래 알던 동아리실 이상으로 관찰을 못했더라고. 그러고 나서 눈을 뜨라고 한담에 다시 관찰해보라고 했어.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그리라고 하니까 좀 더 그려지긴 하는데 아까 언급한 것들 위주로 또 그리고 있는 거야.


너: 나도 그랬을 거야. 인풋이 없이는 상상도 관찰도 잘 안되고 있구나 우리.


나: 내가 시리즈 속 화가였다면 ‘보이는 대로’ 그리라고 했을 때 진짜 순수하게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었을까? 싶었어. 나는 보이는 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내가 보이는 것보다 더 멋진 걸 보는 척하고 싶었을 거야. 그래서 진짜 관찰을 하고 그냥 상상을 하면 될 걸, 어느 시점의 나는 관찰을 잘하고 상상을 잘하려고 하다가 다 관둔 건 아닐까 싶더라.


너: '관찰을 잘한다, 상상을 잘한다'도 이상한 단어 조합이네.


나: 뭔가를 상상할 때 감정이 방해하는 것 같기도 해. 내가 무언가에 실패하는 걸 상상해보면 남들이 비웃거나 동정하는 그 장면만 되풀이되잖아. 성공하는 상상도 좋은 감정 딱 거기에서 끝나고. 내 상황들에서는 감정이 상상을 앞서는데 그 감정들을 회피하지도 못한 채 그 안에 매몰되어 있었어. 왜 이렇게 감정은 덕지덕지야! 모.


너: 우리는 대부분의 것들을 못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데 ‘무언가를 못하는 나’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는 거 같아. 그래서 나 요즘 한창 그거 연습 중이야. 어설픈 나에 관대하기.


나: 그래 그거 꼭 필요하겠어. 팀 버튼처럼 결핍이 만들어낸 그럴싸한 친구를 상상해서 표현하라는 것도 아니고, 나와 내 세상을 좀 더 날것으로 상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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