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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06. 2022

인생의 원동력이 되는 상징을 찾아서

이전 스테이지의 아이템이 자꾸 나와요, 버그에요 버그

나: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이 이미 정해진 몇 개의 결론에 도달하는 걸 반복하며 사는 거 같지 않아?


너: 많은 동화가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뭐 이렇게 대충 마무리되고, 다양하고 다른 복잡한 맥락이 실 생활에서 화, 분노로만 표출되고.


나: 아무것도 합의 안됐는데 시간만 지나고 급 마무리되는 뻔한 회의. 진짜 궁금해서 묻는 왜, 라는 질문도 말대꾸나 건방짐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들.


너: 어떤 사람한테는 항상 화가 나는 나도 그렇네? 야 PTSD 온다, 심호흡 좀 하고 가자 ㅎㅎㅎㅎ. 아, 그래서 우리가 일상을 루틴이라고 부르나 보다.


나: 그 루틴이 그 루틴은 아닌 거 같다만 그렇다 치자ㅎㅎㅎㅎ


사람들이 직접적인 표현보다 에둘러서 표현하는 게 관계의 윤활유라고 생각하잖아. 상대방을 이해할 때도 상대방의 속에 뭐가 있는지 상대방을 직접 잘라봐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자기 상상을 키워가며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고 말이야.


너: 그냥 '숙제해'라면 될 걸 '숙제 왜 안 했어? 숙제 하자?'라며 옥죄는 거. 그게 바로 에둘러 표현하는 거 아냐.


나: 그런 거지. 엄마는 단순하게 숙제시키려는 게 다였는데 아이는 내가 숙제를 안 하면 엄마가 불행하구나, 나를 미워하는구나 그렇게 행간에 많은 감정들을 담고 멀리 가는 거지.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상대를 그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자꾸 눈치껏 알아서 이해해.


너: 상대가 에둘러 말하면 찐 의미를 파악하기 너무 어려워. 돌려서 표현한 건지, 진짜 그걸 의미하는 건지도 헷갈리고. 어느 지역에서는 집에 사람을 초대했을 때 ‘차 더 드릴까요?’ 이렇게 묻는 게 ‘이제 집에 가라’고 눈치 주는 거라대? 나는 예의 차린다며 거절 못한 채 차를 서너 번은 더 받아 마시고 그 집 대대로 손절당할 듯.


나: 내가 상상하는 캐릭터에 내 해석을 담기 시작하면서 현실 속 찐 관계가 삐걱거리는 게 아닐까. 울 엄마도 맨날 ‘오빠가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한테 실드 치다가 언니랑 나의 공격을 자주 받으셨지ㅎㅎ


너: 히치콕 감독 손녀가 할아버지 영화를 비평하는 숙제에 히치콕 감독 본인의 조언을 받았는데 점수를 엄청 낮게 받았다더라.


나: 푸하하. 이 정도면 찐 의도는 안중에 없는 거 아냐.


너: 너는 뭘 싫어해?


나: 갑자기? 음.. 당장 확인할 수 없는 걸 별로 안 좋아해. 지금은 이런 상황이 없긴 하지만 메시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메시지가 온다던지, 누군가가 '오월아' 이렇게 이름만 메시지 보낸다던지 그런 거. 본론을 들을 때까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돼서 불안이 쾅하고 내려쳐.


너: 오, 그렇구나. 나도 안 좋아하긴 하는데 내가 안 좋아하는 이유는 답답해서 같아.


나: 아무리 나쁜 일이어도 당장 본론을 듣는 걸 선호해. 급 떠오르는 건 저거다. 너는?


너: 뭐가 있을까. '너 때문에'?


나: 누군가가 네 탓하는 거 말하는 거야?


너: 그게 내 탓일 때도 있으니까 그 말 자체는 상관없는 거 같은데 가끔 너무 무거워. 과거에 자주 들었나? 기억에 남진 않았는데.


나: 음 그래. 순식간에 우리를 과거의 그때로 몰아가는 상황들이 있는 거 같아. 나나 언니에게는 ‘철없는 오빠’라는 아이템이 그래. 그 아이템을 획득하면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가지.


너: 야 그거 아이템이라고 하니까 쉽네.


나: 아이템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보자. 현질도 하고 스테이지도 깨면서 다른 아이템을 장착해 나가며 강해진다고 쳐. 그래서 더 이상 ‘철없는 오빠’아이템이 활성화되지 않아. 그러면 그다음은 뭘까?


너: 그래. 중세시대가 배경인 게임에서는 기사들이 최종 단계에서 괴물을 죽이면서 공주를 구하는데 우리한테도 먹히는 목표인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지.


나: 그 시절 공주가 트로피로서 최강 힘 있는 자들만 얻을 수 있는 상징이잖아. 근데 스테이지는 다 깼는데 사실 자기는 공주는 관심 없고 스테이지 깨는 거 자체가 목표였던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이제 여기는 다 깼고 힘은 증명됐으니 옆 나라에 또 스테이지 깨러 가는 거지. 그 사람에게는 상징이고 뭐고, 최강 힘 있는 자라는 타이틀이 필요 했던 거.


너: 이번에 월드컵을 보면서 그 많은 비싼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하고 명예라고 생각하는 게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도 물론 우리나라가 이기면 좋지만 거기에서 막 진짜 역시 한국 짱, 최고, 이런 국가 자체로서의 큰 의미를 얻지는 않거든, 한국 선수들 대단하다 싶은 거지.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강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모습을 보는 건 의미가 크지만 말이야.


선수들이라고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애국심을 장착하고 있어서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걸까. 국가대표라는 게 스포츠인 개인으로서 상징적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 분리시킬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팀의 승리만큼 자기가 국가대표라는 스테이지에 올라갔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 싶었어.


나: 공주, 최강이라는 타이틀, 국가.. 우리에게는 어떤 상징이 있을까. 상징이라는 것도 인생의 원동력인 거 같은데 말이야.


너: 그동안 사회적으로 가족의 행복이라는 상징을 주입했던 거 같아.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해도 결과적으로는 행복한 거라는 강요. 회사에서 깨지고 힘들어도 그 월급으로 자식들이 치킨 먹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는 아빠, 고생하신 부모에 졸업모 씌워주며 활짝 웃는 우등생 자식의 이미지.


여전히 가족의 행복이 진짜 자기의 행복으로 등치 되는 사람이 있지만 지금은 가족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중이잖아. 그래서 가족이라는 상징이 전처럼 강하지는 않은 거 같아.


나: 그렇지. 지금은 돈이라는 상징이 있는 걸까? 돈이 많으면 언젠가 행복하다는 주입?


너: 근데 돈을 벌어도 딱히 안 행복해지니까 모자란가 싶어서 더 버느라 또 안행복해.


나: 어차피 행복할 순 없으니 멀리 보지 말고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라, 라는 소확행 강요는?


너: 푸하하, 그걸 그렇게 해석하다니, 너는 진짜 나랑 비슷해.


나: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졸업, 입사, 결혼, 출산 뭐 이런 스테이지 생각해보면 결국 그다음 행복한 가족 양성을 위한 루트야. 부모 세대는 ‘어쩌겠냐 그렇게 사는 거지’, 우리 세대는 ‘해보니 이건 아니다’, 다음 세대는 ‘해보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거 같아.


너: 내가 너한테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상상을 동원해서 되고 싶은 게 뭐냐’고 질문했더니...


나: 그때 내 대답이 너무 별거 없었어.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온갖 영화와 시리즈들이 떠오르는데 그것들을 말하고 싶진 않은 거야, 내 상상이 아닌 게 티나니까. 그래서 나뭇가지의 이파리가 되고 싶다고 했던가?


너: 네가 우리 만나기 바로 직전에 에에올을 봐가지고, 평형 우주를 건너 다니며 파워를 다 장착하는 인물을 보고 와가지고!


나: 맞다 야. 아무리 상상력이 부족한 나여도 콘텐츠를 봤을 때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했다 싶은 게 그렇게 많진 않거든, 근데 에에올은 그랬어. 그리고 나는 네 질문에 대답하면서 또다시 상상 열등인으로서 좌절을 맛봤지. 질문을 들으면 답은 하고 싶어 가지고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도 못해.


너: 나도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내 것 아닌 상상들 속에서 힘들었어. 인풋이 들어가면 좀 가공이라도 돼서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 내가 또 그 얘기를 했었지. 전에 한창 지원서 작성하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쓰라고 했고 그 당시 지원 대마왕 전문가였던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고.


나: 벌써 몇 년 전인데 지금 쓰래도 못써.


너: 그래서 아직도 그 질문이 남아. 그 질문 자체가 나에게 좀 충격이었던 듯. 그니까 질문보다는 그 질문에 답을 못하는 내가 충격이었던 거지. 그리고 나는 아직도 답을 못하고 있어.


나: 답이 빈칸인가, 아니면 계속 바뀌는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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