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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06. 2022

감추는 게 미덕인 그 감정, 내가 젤 잘 감춰

그냥 그 감정 자체로 둬도 될까요

나: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감추는 게 미덕’인 감정들이 있잖아, 욕심, 질투..


너: 응응


나: 학생 중 하나가 공부를 아주 잘해. 계속 전교 1등이야. 그런데 등수에 예민해. 그러니까 그냥 등수 자체에 예민해. 공부를 하다 보니 잘하는 거지 남을 이기기 위해 잘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아주 강해. 어떤 비교 표현이든 그 자체에 알레르기 같은 반응을 보여.


너: 그래그래.


나: 그 언니도 내 학생이었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거든. 합격 소식을 듣고 내가 동생인 학생과 수업 중에 ‘와 언니 정말 잘됐어요’ 이랬더니 ‘그걸 왜 저한테.. 저랑 무슨 상관이라고..’ 이런 반응을 보이더라고. 정확한 표현이 기억은 안 난다만, 그 아이가 누구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아마 더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지난 수다 때 내가 ‘공부를 잘했다고 행복한 적도 못했다고 불행한 적도 없다, 공부가 내 감정을 결정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잖아.


너: 그래. 네가 공부를 잘한다고 어머님이 힘드신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며,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암튼 그래서 네가 공부에 무감각했다고 했어.


나: 맞아. 사실 그땐 공부를 잘하는 게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거 같아. 대학 가서 등록금을 대출받으면서 처음으로 아, 이래서 서울대를 가나보다 첨 생각해봤어. 고등학생 때 입으로는 이 대학 저 학과 얘기하기도 했었는데 으레 하는 말였지 딱히 의미 없었어.


너: 그래. 언니 얘기도 해줬어. 얼마 전에 ‘더 공부 못 시켜서 미안했다’고 그랬다며.


나: ㅎㅎ 응. 내가 울 언니 맨날 선 넘는다고, 자기 생각 좀 먼저 하지 그런다고 그랬지.


아,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고3 때 수학 경시대회를 나갔는데 살면서 거의 본 적도 없는 그런 문제들이 나왔어. 내가 반에서는 수학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거기서는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가 하나도 없는 거야. 의식하진 않았더라도 나는 수학만큼은 자신감에 차 있던 상태였을텐데 그때 처음으로 그런 문제를 막힘없이 푸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무력감을 느꼈던 거 같아. 다음 날인가.. 친구랑 걸으면서 그 얘기를 하다가 내가 울었어, 마침 고3이었어서 크게 다가왔나 봐. 그때의 나는 정말로 내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던 시기라 그 친구가 당황했을텐데 그래도 같이 울어줬어. 친구가 기분 전환하러 가쟤서 둘이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는데 목소리는 잔뜩 잠겨가지고 계속 ‘흠흠 내가 원래 이 정도로 못 부르는 건 아니라’면서 목소리 가다듬음. 모.


너: ㅎㅎㅎ 그 친구는 너를 참 잘 알았네. 거기서 사실 무슨 말이 위로가 됐겠어, 기분을 푸는 게 젤 좋은 방법이었을 거고 잘했네.


나: 대학 때, 그땐 왜 카페 문화였잖아, 다음 카페. 우리 과 한 친구가 어떤 맥락인진 기억이 안 나지만 ‘네가 작아진 게 아니라 더 큰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글을 카페에 올렸는데 그게 가끔 생각나. 그때의 우리한테 다 필요했던 말이었던 거 같아.


너: 야야 브라질 축구 생각난다. 경기를 보면서 저 상황에서 무언가를 욕망해도 되는 건가 싶더라 야. 대체 왜 세상은 크기만 하니!


나: 야 진짜 너무 잘하니까 멘탈이 깨지지도 않더라ㅎㅎㅎ.


너: 무서운 이야기에 전교 2등이 전교 1등 죽이는 그런 거 많았잖아. 그러고 보면 그것도 공부 욕심을 탐욕으로 그렸어. 왜 여학생들 사이의 스토리만 다루는지는 여기서 얘기하지 않기로 하자.


나: 지금의 나는 욕심 자만 이런 게 꼭 나쁜 건가 싶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뒤끝이 길어 남을 해하거나 무시하는 건 문제지만 결국 다 살아가는 원동력인데 말이야.


너: 요즘 원동력에 꽂혔구나.


나: 응. 욕망을 고민하다 보니 비슷하게 따라온 의문이야. 잘하라고 이기라고 빨리 하라고 강요하면서 막상 대놓고 등수에 연연하는 건 유치한 걸로 치부하는 이 꼬인 경쟁 사회도 웃겨.


너: 맞아. 그리고 만족감 역시 금기야. 어디에 속해도 더 나은 곳과 비교하면서 후려치는 게 너무 일상 같아. 그래서 더 나은 곳에 가면 또 그다음과 비교하지.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이재용도 행복하지 못할 거라고 그러는데 진짜 공감해.


나: 그러고 보면 고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쌤들한테 열심히 한다는 얘기를 한 번도 못 들었어, 맨날 너희보다 더 잘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이런 얘기만 했어. 자극도 안되는데!


너: 어디서 보니 칭찬을 칭찬으로 못 받고 별거 아니라고 자신을 낮추는 거, 그거도 자기 멘털 관리에 좋은 건 아니라고 하더라. 겸손이랑 좀 다른 거 같은데 뭐라고 불러야 하는진 모르겠네. 비하까지도 아니고. 그런 건 또 바람직하다고 하고 말야!


나: 아니 그럼 그 상황에서 뭐라 그래?


너: 누가 ‘오월님은 어쩜 글을 이래 잘 써요’ 이런다면,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이 그 사람은 나를 그렇게 생각한 거니까 그 칭찬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된대.


나: 헐, 그거 담백하고 좋네.


너: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들여서 ‘나 사실 별거 아님’을 설명하려 노력하는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도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도 참 별로야.


나: 수업하다 보면 ‘라떼처럼’ 겸손이라 부르는 낮춤을 강요받았나 싶은 학생들이 많아. 그들이 잘한다 = 남들이 열등하다, 아니잖아. 그냥 그들이 그거 잘한다는 거 그 자체로서 즐겼으면 좋겠어. 남들이 1등이라 좋겠다, 그러면 그냥 ‘하하, 응’ 이러고 넘겼으면 좋겠어.


너: 그러고 보면 하지 말라는 거 하라는 거 참 많아, 그렇지?


나: 그래 맞아, 참견 쩔어. 사소한 것에 울고 웃고 하는 것도 촌스럽다고 후려치니까 그럼 어떤 사이즈부터 웃고 울어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감정 표현을 잘 못하고 다들 냉소적이 되는 거 아냐. 그러다 결국 왜곡된 감정이 송곳처럼 튀어나오고 마는 거지.


너: 맞아. 다시 또 내 남편의 ‘워워 지금 화나는 거 아니야’ 이 이상한 표현이 떠오르는 시점이다 야.


나: ㅎㅎㅎ 그때 네 그 말 듣고 보니까 나 역시 감정에 대한 반응 말고 나 포함 상대의 감정 자체를 부정하는 표현들을 자주 쓰더라고. 반성했음, 아니지 반성 중임. 진행형이야.


너: 나도 그러더라. 그런데 참 희한하게 남편이 하는 말에 예민하게 레이더를 올리게 된다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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