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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Nov 30. 2022

우리 일상의 99.9%는 시시콜콜이니까요

너와 나는 좀 더 시시콜콜하자

나: 이소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는 노래 알아? 한창 쓸쓸함을 기본으로 장착하던 시절에 정말 많이 들었던 노래거든. 노래 생각만으로 벌써 쓸쓸해.


너: 제목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라서 가벼운 수다 떠는 노랜 줄 알았다가 듣고 깜짝 놀랐지. 어제 자다가 모기를 물렸는데 그 바로 옆에 또 물렸다, 머 이런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TMI 그런 게 시시콜콜한 이야기 아녔냐고!


나: 그러니까 말이야. 딱히 내용은 없지만 주저리주저리 말하게 되는 거, 혼잣말인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도 헷갈리는 그런 거.


너: 움.. 왜 시시콜콜한 이야기라고 했을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헤어지기 싫어하는 상황을 너무 잘 그렸으니 가슴 저미는 이야기 머 그런 제목이어야 할 거 같은데 말이야.


나: 가끔 가까운 관계가 아닌데 듣기에도 불편한 너무 사소한 신변 잡설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들으면서 속으로 계속 ‘안 궁금하다고!’를 외치게 되는.


너: 지난 수다에서 네가 감정이 길다, 는 표현을 썼던 게 기억나. 노래에서 화자는 무거운 감정이 길다 못해 일상이 돼버려서 시시콜콜해졌나? 알고 보니 ‘아놔 짜증 나, 이거 완전 나 무시하는 거 아님? 야야, 자냐 자? 친구가 어? 이런 인생 고민 중인데 잠이 오냐!!!’ 이런 건가? 급 수다로 돌변.


나: 워워, 내 쓸쓸 앗아가지마!!


근데 나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 저마다 시시콜콜 정도가 다른 게 아닌가. 너의 시시콜콜은 무엇이니.


너: 음.. 딱히 큰 감정도 논리도 담지 않은, 아까 말한 모기 같은 진짜 잡설들. 시시콜콜한 대화에는 핑퐁보다 토스가 맞는 거 같아. 그렇게 소재들이 꼬리를 물다가, 피식 웃음을 유발하거나 아니면 가벼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얘기들. 너는 어때?


나: 나도 비슷한 거 같아.


너: 그러고 보니 나는 친구들과 있을 때, 막상 ‘우리 기준‘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거의 안 하네. 그럼 우리는 누구랑 시시콜콜하니. 둘일 때는 그래도 자주 이 얘기 저 얘기가 엮이는데, 여럿이 있을 때 시시콜콜한 얘기로부터 얽힌 소재가 더 먼 대화로 진행된 기억이 별로 없긴 하다.


너: 주로 나누는 회사나 가족 이야기들, 그게 그룹에서 ‘작게 시작할 수 있는’ 시시콜콜한 소잰가. 알고 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그것들이 ‘옛다, 이 얘기나 하자’라며 가볍게 던질 수 있는 소재인 건가?


나: 움 그런가. 대부분의 소재는 한 명으로부터 뚝 떨어져서 토스 없이 대화가 진행돼.


너: 우리가 대화 소재로 삼는 것들이 순전히 한 명의 것은 아니잖아. 그런데도 우리의 얘기가 아니라 네 얘기로 대화가 진행되는 느낌이야. 내용이 별로 없는 건 그럴 수 있는 거 같은데, 그 대화가 끝나고 아무 잔상이 안 남아


나: 숫자의 문제일까? 나 알고 보니 너무 내향인이야?


너: 음...? ㅎㅎㅎ 너 그 정도로 낯가리진 않지!


나: 사람들이 좀 더 가볍고 시시콜콜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전에도 쓴 거 같은데, 서로의 일상이 고만고만하게 엮여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거든. 그래야지 더 깊은 얘기까지 공감할 거 같아서. 참고로, 나는 내가 시시콜콜 못한다는 걸 알아. 과묵하긴 커녕 오히려 수다쟁이에 가까운데도 내 얘기를 던지지 않는 듯.


너: 확실히 이제는 사람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더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지. 읽다 보면 '맞아맞아글'이 꽤 많아. 시시콜콜도 익명이 필요한가 봐.


나: 기혼 여성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는 남편에 대한 '일상 속 시시콜콜한' 글이 자주 올라와. 그런데 기혼 남자들이 가는 커뮤니티에 일상 속 아내에 대한 글이 얼마나 올라올까 생각해봤을 때 분명 차이가 있을 거 같거든.


너: 움, 남편이 바라보는 일상 속 아내.. 기억나는 게 딱히 없긴 하다.


나: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아내들은 자꾸 다른 아내들의 의견을 필요로 해서 그런 거 같아. 자기감정을 허락받거나 해결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고 하는 거지.


너: 맞아. 진짜 단골로 올라오는 글, 남편이 반찬투정을 한다! 그냥 아, 저 반찬 안 좋아하는구나~로 끝내도 되는데 그 투정이 자기한테 남으니까 자기가 해결하려고 글을 올리는 거지. 아내가 ‘요즘 입을 옷이 없네’ 그런다고 남편이 아내 옷을 직접 고민하진 않잖아, ‘옷 좀 사’ 이러면 양반이지.


나: 그래. 사랑하는 맘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뭔가 서열이 보이는 사연들이 많아. 남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해결하는 게 자기의 일상이 돼버린 조마조마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남의 일상은 남의 일상으로 두는, 둘 수 있는 사람도 있어. 자꾸 성별을 언급하고 싶진 않다만.. 이놈의 사회는 대체로 참 강력하네.


너: 그러게나 말이야. 남의 일상을 해결하려는 ‘을’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아까 나는 시시콜콜이 감정을 담지 않는다, 고 했는데 당사자의 감정은 안 담겼더라도 해결하려는 사람의 ‘내가 잘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보이는 경우가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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