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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07. 2022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무서워서 피하지

오늘부터 원투 원투 잽잽

나: 격하게 욕하는 순간이 있는데..


너: 오, 누가 우리 오월을 분노하게 하는가


나: 보통은 언니가 회사 얘기를 할 때야. 움.. 그때뿐이긴 하다 야, 모.


너: 나도 이제 화가 차오를 땐 욕설을 내뱉기로 했어. 혼자 있을 때 욕 좀 한다고 누구를 해하는 것도 아니고 순간 기분도 풀리고 괜찮더라고.


나: 그니까. 그게 뭐라고 우린 자발적으로 욕도 검열하며 살았나몰라. 서열 확인하려 시비터는 용도도 아닌데 말이야.


너: 응, 더 욕하자.


나: 언니네 회사는 내 기준에서 진짜 어이없이 열받는 일이 많아. 언니는 짜증 난다 말고 뭐 더 말도 못 하니까 제삼자인 내가 나서서 대신 욕해주는 거지.


너: 은근 그런 거 도움 되더라. 자기가 직접 겪는 일이면 자기 아는 사람들이라 욕할 때 눈에 밟히잖아. 또 착하게 살아온 우리는 짜증을 내면서도 결국 계속 같이 지낼 수밖에 없는 그들을 이해해보려 하면서 마무리를 하게 되고. 너는 정말 단순하잖아 관계가. 파생 관계, 즉 모.르.는.사.람.들.


나: 맞아. 가끔은 내가 욕하면 언니가 ‘얘 왜 이럼’ 싶은 거 같음. 근데 가족 얘기엔 내가 속시원히 대응을 잘 못해서 언니가 답답해하는 듯, 암쏘쏘리ㅎㅎㅎ


너: 전에 네가 얘기했던 김원희 배우 맞짱 에피소드 말야.


나: 아! ㅎㅎㅎ 응 그 얘기 나 너무 좋아하지. 중학교 땐가, 일진들이 불러서 옥상 올라간 얘기.


‘네가 이쁘면 다냐, 그렇게 잘났냐?’ 머 이런 소리 듣다가 선빵 맞았는데 별거 아니더라고. 맞을만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도 같이 때려서 싸우다가 결국 혼이 났나 어쨌나..


너: 그래 그거! 진짜 우린 겁 많이 먹으면서 살잖아, 겪지도 않은 일에.


나: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고는 하지만 많은 경우 무서워서 피하지.


너: 안 맞아봐서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면서! 항상 싸울 필요야 없지만 알아서 쫄아가지고 자기 자신도 보호 못하고 자발적 호구가 돼서 살아왔어.


나: 한 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치마를 친구한테 빌려줬어. 친구라기보다 그냥 같은 반 아는 애? 근데 걔가 그걸 계속 안 주는 거야. 달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준다고 준다고 하면서 피하기만 하고. 그러다가 졸업할 때가 됐어. 그 치마는 더 이상 구할 수도 없고 얘는 계속 꼭 돌려받고 싶고 애를 태웠는데 엄마가 그냥 버린 셈 치고 잊으라고 그런 거야. 그때의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게 밖에 못했을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억울한 걸 참으라고 하는 게 속상했어.


너: 맞아, 애들이 학교에서 잃어버린 거 다른 애들이 가지고 있는 거 봐도 잘 안 따진다며. 저 재수 없는 놈 그러고 말고.


나: 응, 정말 많은 한국인들 대응방식이지. 만약 그때 그 엄마가 일부러 ‘걔네 집 어디야, 지금 가자! 우리 딸 치마를 왜 안 줘!’ 그러면서 오버했다면 그 딸이 쪽팔리다며 엄마를 말렸겠지. 치마를 못 받았으니 결과야 같았겠지만 그래도 그 딸은 아, 이게 내가 화내도 되는 상황이구나, 엄마도 나랑 싸울 준비가 되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든든해서 입꼬리 한쪽 올렸을 거야.


너: 그래. 그 엄마가 막 진짜 화나서 그 집 찾아가, 그건 완전 다른 얘기지ㅎㅎㅎㅎ


나: ㅎㅎㅎㅎㅎ 야 그럼 딸만 말려? 아들도 말리고 경찰도 말려. 모.


너: 내가 전에 강해지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


나: 완전 기억나지. 언제부터인지 나 포함 친구들 사이에서 갖고 싶다, 먹고 싶다, 쉬고 싶다, 관두고 싶다 머 이런 것만 듣다가 강해지고 싶다,가 등장했는데 그걸 어떻게 잊니.


너: ㅎㅎㅎㅎㅎ 그래. 그때 내가 느낀 감정도 비슷한 거 같아. 무력한 나에 대한 문제제기를 스스로에게 처음 하기 시작한 순간이었어. 아니 어찌 그 전에는 무력하다는 게 문제 있다는 걸 몰랐나 몰라.


나: 맞아. 우리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신을 먼저 지킬 준비를 해본 적이 없는 거 같아. 자기도 못 지키는데 사랑하는 사람들 어떻게 지킬 거야.


너: 그니까.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도 본인 먼저 쓰라고 하는데! ...음? 그니까 내 말은 본인을 먼저 지켜야 타인도 지키지.


나: 쌉이해. 내가 지금은 언니 회사 일에 메시지로 쌍욕 박는 게 다지만, 진짜 이놈들 계속 그렇게만 해봐라. 모.


너: 나도 나 지키고 애들도 지키고 애들한테도 자기를 먼저 지키도록 준비시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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