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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09. 2022

못해줘서 미안한 그 마음, 해준다고 해결되나요

나의 행복을 내가 욕망하면 그게 또 나의 행복

나: 엄마가 길 가다 가방을 사셨나 봐. 가방 패턴에 GD라고 쓰여있는 거 보니까 구찌 짝퉁인가 싶은데 모르고 사신 듯.


너: 그런 가방 아닌 걸 찾기가 힘들다더라,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알 수도 없어.


나: 엄마가 그걸 책상 아래에 두셨는데 언니가 회사 다녀와서 보고 속상하다며 나한테 사진을 찍어 보냈어.


너: 왜 뭐가 속상해.


나: ㅎㅎㅎㅎ 너 왜 나랑 반응이 같니. 나도 아, 엄마 저런 가방 사셨네-에서 끝이 났거든. 아마 언니는 엄마가 명품 가방을 욕망하다가 짭을 샀다고 생각했나 봐, 속상한 거 보면?


너: 아! 그러셨나?


나: 글쎄 잘 모르겠어. 울 엄마 성격에 명품을 사고 싶었으면 그냥 사거나 아니면 한 번쯤 티 냈을 거야. 그런 언급 하신 기억이 없는 거 보니 특별히 욕망 하시진 않은 거 같아.


너: 움 그렇구나.


나: 언니가 속상해하고, 나는 언니의 속상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엄마-언니-나의 주요 소비 패턴이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보게 됐어.


너: 오호라 재밌다 재밌어.


나: 가족 중 가장 소비를 많이 하는 울 엄마 먼저. 소비하는 상황 자체가 중요해.


제품을 엄청 욕망하는 건 아닌데 낯익은 매장 직원이 몇 마디 거들었을 때 안 사는 걸 겸연쩍어한달까? 이 정도쯤은 사는 사람이야! 를 보이고 싶으신 건가. 동행한 친구가 '어머나, 이건 오월 엄마 꺼네, 너무 잘 어울리네~' 이러면 또 비상이야. 사놓고 안 입고 안 쓰는 게 얼마나 많은지! 무소비인인 언니나 나는 엄마 패턴을 아니까 그렇게 사 오시면 뭐라고 하고야 말지. 그러면 막 정당화해, 이 옷은 어떻고 이 신발은 어떻고. 그러면 아, 울 엄마 또 넘어가셨군 그러는 거지 뭐 어쩌겠어. 내가 볼 땐 저 가방도 성당에 들고 가볼까 싶은 작은 필요와 안 사기도 애매한 상황 속에서 큰 의미 없이 소비하신 게 아닌가 싶은데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너: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는 자기를 위한 아이템을 잘 안 사시나? 엄마가 엄마 아이템을 사는 장면이 안 떠오르네.


나: 대부분의 엄마들이 본인 거는 한창 나중에야 사는 거 같긴 해.


다음은 나. 나는 실용 불치병에 걸렸어. 실용적이지 않은 소비를 하면 큰일 나 아주.


곧 필요할 예정이거나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그것도 꼭 필수적으로 소유해야 하는 거 아니면 흐린 눈 하면서 안 사. 전에 내가 드레스 입어야 하는 상황에 신발은 둥근 락포트 신었다고 얘기했지? 그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야.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되는, 공짜라도 더 있으면 불편한 사람.


너: 나도 비슷해. 내가 또 미니멀리즘 한다고 지금은 소비보다 판매나 나눔에 열심이지.


나: ㅎㅎㅎㅎ 나도 한국 잠깐 갈 때마다 당근당근 불나지.


마지막으로 언니. 가끔 언니의 소비는 불편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 같아.


언니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기를 위한 소비를 거의 안 하는 사람. 우리 집과 서울 집은 서로 안 쓰는 물건을 주고받거든. 우리가 방문하는 입장이니 종종 선물을 들고 가기도 해. 언니가 생각할 땐 이래저래 우리가 서울 집으로 가져가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나 봐, 그니까 기브 앤 테이크에서 균형이 안 맞으니 맘이 불편한 거지.


전에 집에 갔는데 새 이부자리가 있는 거야. 알고 보니 언니가 우리 온다고 우리 기준에서 엄청 비싼 걸 준비한 거. 언니는 고마운 맘에 뭐라도 준비하고 싶었대. 굳이 이부자리를 왜 그렇게 비싸게 준비했냐고 했더니 너(나, 오월)가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니까 자기는 도대체가 줄 게 없다고 하더라고. 음.. 언니 맘이 편해졌다면 됐지 뭐.. 근데 당사자인 나는 언니의 소비금액만큼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그만큼 행복할 것도 없잖아. 그리고 우리가 한국 갈 때마다 신세 지는 건데 거 참.


너: 너도 좀 받아 그냥..이라고 하고 싶지만, 또 양쪽 맘을 알겠어서 뭐라 말을 못 하겠다. 내 기준에서도 이부자리는 아깝다, 너 친정 며칠이나 간다고. 근데 지금의 너는 생활 패턴도 단순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 뭐 필요한 것도 없고 언니가 고민해도 답이 없었겠어.


나: 그러니까. 근데 이번 엄마 가방 사건(?)도 뭔가 비슷한 거 같아. 언니가 맘이 불편한 상황에는 그 상황을 유발한 인물이 있잖아. 이부자리 경우는 내가 있었고 이번 가방의 경우는 엄마가 있고.


너: 언니는 그 인물들의 입장보다 자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결정을 하는 건가보다! ...근데 다들 그러는 거 아냐?


나: 아까 언니가 '엄마도 인생에 한 번쯤.. 하나 사드려야 하나' 이러더라고. 나는 그게 엄마의 욕망이면 상관없지만 그냥 언니의 죄책감인가 싶은 거야. 죄책감이 맞는 표현은 아닌 거 같은데 암튼 언니는 나나 엄마한테 자꾸 뭘 못해줬다고 생각해. 얼마 전에 공부 더 못 시켜서.. 사건도 있고!


너: 더 해주고 싶은 맘인 게 아닐까? 두 맘이 비슷하잖아.


나: 음.. 나한테는 그 맘일 수도 있겠다- 근데 엄마한테는 확실히 뭔가 보상하려는 맘인 거 같아.


못해줘서 미안한 마음이라는 게 뭘 해준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게 문제야. 근데 애초에 못해준 것도 없거든 서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하려고 하면 했지. 전에도 얘기했지만 언니에겐 어떤 '정상'의 이미지가 강하게 있는 거 같아. 아마 언니 머릿속 정상가족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요소들이 있나 봐? 필수인 것도 아닌데 언니에겐 아쉬운 그런 것들.


너: 음, 나는.. 타인의 인생은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던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진짜 알겠어. 앞으로는 절대 남의 인생의 행복이나 불행을 과장해서 상상하지 않을 거야.


나: 그래,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찾는 게 맞지. 서로의 무게는 각자가 이미 지고 있는데도 언닌 자꾸 뭐라도 가져가서 원래 무게보다 더 무겁게 짊어지려고 해. 우린 각자 알아서 잘 살고 있는데 언니한테는 왜 그렇게 가족이 무겁나 싶고 맘이 좀 그래. 그 맘 언제 덜어내냐고요!!


너: 음. 자기 욕망에 더 집중하고 각자 알아서 실현하면서 살면 될걸. 그게 그렇게 어려워.


나: 응 내 말이. 자기 욕망에 써야 하는 에너지로 상대의 욕망을 추정해서 대신 해소해주려 하는 거.. 그 추정에는 죄책감이 깔려있는 게 보이니 영 불편해. 물론 오늘 얘기는 전부 나도 대상자이자 피대상자야.


너: 그래, 부모를 위한다는 착각으로 싫어하는 공부만 하던 모범생들은 그러다 결국 부모를 싫어하게 되고, 자식을 위하는 길이라며 안 먹고 안 놀러 가고 공부시킨 부모들도 변한 자식들에게 섭섭하게 되는 거지.


나: 그런 거지. 고마해라, 다 컸다 아이가.


너: 작은 아씨들에서 돈 들고 튄 엄마가 필요하다!! 다들 역할로만 존재하지 말고 개인의 욕망을 팍팍 드러내자 드러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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