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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14. 2022

모두 해독기를 벗어던지고 있는 그대로 듣자

내 말에 내 맘이 바로 담기도록, 상대의 말을 상대의 맘으로 듣도록.

나: 사람들이 에둘러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했었잖아.


너: 너의 이사 에피소드가 떠올랐어. 내가 봐도 그때의 그는 그 시점 전까지 진짜 자기 맘이 명확하지 않았던 거 같거든. 닥쳐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있더라.


나: 맞아, 맘에 뭘 오래 담을 수 있는 사람이 아냐. 그런 면에서 에둘러 말하는 거도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게 뭔지 아는 사람이어야 돌려 말할 수 있으니까.


너: 뻔한 것도 돌려 말하는 건 제외지?


나: 그렇지. 그건 제발 곧이곧대로 말해줘!!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잖아. 말로 하는 게 가장 직접적이고 걔 중에 명확하고 쉽고 빠르니까. 모두에게 대화가 편한 건 아닌 거 같아. 조심스러운 거 말고 말 그대로 표현 매체로서 말이야.


너: 나는 말과 글이 가장 편한 사람이야. 나를 100%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들 중에서는 말과 글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애들과의 대화에서는 그 벽을 많이 느끼거든. 더 솔직히 말하면 남편과의 대화에도 벽이 있지.


나: 내가 표현 가능한 방법이 있고 상대가 수용 가능한 수단이 있어서 거기서 또 삐걱거려.


너: 나는 아이의 모든 걸 감각하려고 애쓰며 노력하면서도, 말로 대화를 시도하잖아. 얘네가 그림 그리면서 놀고 표현하는 건 그렇구나 싶은데 나와의 소통에는 말과 표정에 가장 큰 비중을 두게 돼서 그 무엇보다도 애들이 하는 말, 단어가 크게 남아.


나: 한 티브이 프로에서 어린 딸이 ‘엄마는 나 싫어해요’ 하니까 그 엄마가 속상하고 억울하고 미안해서 엉엉 울었어. 다들 그런 뜻이 아닐 거라며 달래면서 안타까워했거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어른들에게는 싫다는 표현이 강하게 꽂힌 거지. 그 딸이 순간적으로 스치는 감정을 떠오르는 단어에 가볍게 얹어 던졌다고 한 들, 우리 어른 세계에서 싫다는 건.. 싫다는 의미니까.


너: 나 진짜 아무것도 안 한 거 같은데 요새 자꾸 둘째가 ‘엄마한테 사과하고 싶어, 엉엉’ 그런다니까? 난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ㅎㅎㅎ


나: 그 사과가 우리의 사과가 아닌가 봐 그렇지? 하지만 우린 또 사과에 꽂히지.


너: 남편이랑은.. 나는 이래저래 다양한 얘기를 하는데 남편은 자꾸 '왜 자기한테 그러냐'라고 그래. 자기가 주어도 목적어도 아닌 얘기에도 그래, 아주 웃겨.


나: 나와 남편 관계의 역전이네. 대화할 때마다 내가 자꾸 수비하고 있더라고 했었잖아. 그런다는 걸 알고 난 담에는 이제 진짜 덜 그래.


너: 너랑 내 남편 아주 그냥 세상의 주인공이셔!


나: 모 야 모ㅎㅎ! 다들 각자가 가장 편한 기호가 있나 봐. 말도 있고 표정이나 바디랭귀지도 있고 그림이나 음악, 춤 등 다른 매체도 있고.


너: 안돼!!! 저번엔 에둘러 표현하지 말라고 속 시원하게 말하더니 오늘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겐가!!


나: 아니.. 그래도 여전히 1차로는 직접적인 표현을 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어, 말로!


너: 맘 편해졌다, 계속해보거라.


나: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워도 서로를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하는 거 같아. 내 말에 내 맘이 바로 담기도록, 상대의 말을 상대의 맘으로 듣도록. 더 깊고 복잡한 감정은 잠시 제쳐두더라도 말이야.


너: 가끔 대화를 한참 하고 있긴 한데 정말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 보면서 대화할 때도 그렇고 메시지 중에도 그렇고. 심도 있는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 되돌아가게 되는.


나: 대화는 잘 흐르는데 상대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거 말고 그냥 대화 자체가 흐르지 못하는 거 말이지?


너: 응응. 정보가 충분하지 않거나 맥락이 왔다 갔다 하는 거. 물론 나는 화자이기도 청자이기도 해.


나: 음.. 충분히 가깝지 않은 관계에서는 대충 흘려듣고 적당한 반응을 하면 되는데 가까운 사이에서는 그렇게만 할 수는 없지.


너: 서로의 로직 구조가 달라서 그런가. 예를 들어 나는 먼저 결론을 알아야 뒷얘기가 잘 들리는 사람인데 상대는 쩌어 멀리 돌아와야지만 결론을 낼 수 있는 사람인 거야. 그럼 상대가 저 멀리 가있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만 가득한 거지.


나: 그렇지 서로 답답하지. ‘그래서 이렇다고? 이렇단 말이야?’란 말에 ‘좀만 더 들어봐’만 계속되고.


너: 어떤 단어를 서로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도 하고.. 가장 쉽다고 여겨지는 대화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원래 어려운 거니까 그걸 인정하고 더 시간과 노력 들일 필요가 있겠어.


나:  ‘말이 안 통해’로 끊을 수 있는 관계만 있는 건 아니니까. 우리는 참.. 전달하는 연습을 할 기회가 없었던 거 같아.


여기서 오래 생활한 학생들은 글씨가 참 비슷비슷해. 동글동글하고 또박또박해.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그 특유의 글씨가 있어. 선생님들이 어렸을 때부터 강조해서 그런 거 같아. 물론 우리도 강조하지만 여기는 서술형이 많다 보니까 자기가 쓴다, 는 행위랑 누군가가 본다, 는 행위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아는 거지. 상대가 잘 못 알아보면 내가 제대로 써도 틀리는 경험.


우리는 꼭 그렇진 않았잖아. 친구들이랑 편지 주고받는 거 말고는 노트필기도 나를 위해서 했고 문제도 나만 알아볼 수 있게 풀면 됐으니까. 작정하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혼자 문제를 풀어 전교 1등을 할 수도 있던 세대였지.


너: 그러네.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긴 했지만 다른 과목들은 논리적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았어. 인풋 넣으면 바로 아웃풋이 나오는 암기가 많았지. 시험 직전에 서로 문제 내서 맞추기 하던 기억이 난다. 서로 답을 막 외쳐대는데 모든 워딩은 교과서에 있는 그대로였어.


나: 난 언어영역이 그렇게 어려웠어. 그 글이 의도하는 바를 비틀어서 이해하는 버릇이 있었던 거 같아.


너: 이제 교육과정이 많이 바뀌었겠지.


나: 요즘은 온라인을 통해서 자기 생각을 전달하잖아, 나는 요 브런치로 노력 중이고. 글로는 이렇게 길게 쓰면서도 여전히 말로는 뚝뚝 끊겨. 그리고 뚝뚝 끊어, 거 참 나란 놈. 사람들이 글로 그렇게 노력하는 만큼 말로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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