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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16. 2022

그 순간도, 그 순간에 머물던 나도 그립지 않다면

이제는 맘껏 유치할 나이

나: 수다가 콘텐츠만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


너: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던 참이야.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패턴을 관찰해보면.. 여기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지 싶거든.


나: 지오디가 나오는 콘텐츠를 보는데, ‘멤버들이랑 있으면 그냥 나’라는 거야. 감정의 긍부정 이런 게 개입할 필요도 없이.


너: 그래, 동네 친구들 만나면 현실을 잊고 진짜 자기 자신이 된다고들 하잖아.


나: 만나면 퇴행하는 관계가 필요한 건가 봐.


너: 퇴행?


나: 응. 나도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굳이 그 시절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이 그때랑 비슷해지는 거? 아니면 그때의 내가 될 수 있는 거?


너: 그때의 감정.. 음..


나: 지금 그게 포인트야,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 같이 돌아갈 시점이 없어. 차라리 이제라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게 더 나은가 싶다가도 뭔가 겸연쩍고, 그렇다고 그때의 관계를 불러오는 것도 아니고 애매해.


너: ‘학창 시절 친구’라며 만나고는 있는데 딱히 그때 가깝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때 진짜 친했던 친구들 어딨어.


나: 개인으로 만나고 있어, 모. 관계가 그때도 점으로 머물고야 말았쒀. 지금의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때의 나도 그랬다니 충격.


너: 그때가 별로 즐겁지 않았나?


나: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도대체가 왜 그건 기억에 안 남은 걸까.


엄마는 고등학교 때 운동을 해야지만 등록금을 해결할 수 있어서 배구 선수를 했거든, 근데 엄마는 공부가 더 좋았던 거야. 운동 째고 몰래 숨어서 공부하다가 붙잡혀 가서 운동하고 그러는 걸 반복했어. 학교도 멀어서 먼 친척집(?)에서 눈치 보면서 다녔대. 엄마는 ‘그때 이렇게 힘들었다’, 는 얘기를 싫다, 짜증 난다는 감정을 담아서 얘기하질 않아. 엄마의 과거를 들으면 우리는 막 경악하는데 엄마한테는 ’그냥 그랬다‘ 유형의 에피소드들이야. 엄마 주변은 다들 그렇게 살았기 때문일까? 크게 보면 우리도 친구들이랑 비슷한 고민하고 비슷한 스트레스받고 그러면서 고만고만하게 살지 않았나?


너: 음.. 이제 와서 생각하시니 추억이 되었나?


나: 그것도 아니야. 가끔 이런 얘기를 해주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지금 내 나이랑 비슷했던 엄마도 기억나거든.


그때가 지금보다 좋았지,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 그런 건 아닌 거 같지만 엄마는 그때의 친구들을 만나는 걸 분명 좋아해. 엄마라는 역할이 아닌 누군가의 친구라는 게 좋은가.


너: 엄마, 며느리, 아내, 직장 그런 거 다 떼어놓고 그냥 개인끼리 모여도 결국 역할 이야기뿐이야. 자식 걱정, 남편 시댁 불만.. 이상하긴 하네. 게다가 이 모임 저 모임에서 다 고만고만한 얘기를 하고 있다면.. 역시 이상하네? 우리 막 역할에 지배당하고 있나?


나: 일대일로 만날 땐 소속이나 역할 얘기를 많이 하는 거 같진 않아.


너: 티브이에 부부가 서먹해서 고민이라는 사연이 나왔어. 둘 다 칼같이 역할을 수행하고 보이는 관계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데 둘은 알고 있는 거지, 그런 관계를 부부라고 하는 게 이상하다는 걸. 누군가가 ’서로 애교를 부리나요? 사소한 부탁 같은 걸 하나요?‘ 이런 질문을 했어. 그랬더니 정색하면서 그런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하더라고. 그 질문을 한 사람 말로는 부부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관계라 그 사이에 퇴행이 일어나야 건강하대. 거기서 퇴행은 내가 미흡한 것을 상대가 알아챌까 겁내면서 어른인 척 하거나 그러지 말고 덜 자란 모습까지 더 드러내서 서로 보완해야 한다 머 그런 맥락이었던 듯? 야야 기억 안 난다 야.


나: 그 정도면 다 전달됐어, 모. 이놈의 어른들 다들 너무 독립적이다 보니 저기서 퇴행은 서로에게 조금은 더 기댈 수 있어야 한다는 거 같다.


너: 보통 어른인 상태로 만나서 부부가 되잖아. 아마 서로가 ‘어른스러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거 같긴 해. 하지만 금방 들통나지 나처럼 하하하.


나: 저 사연처럼 칼 같진 않지만 나도 내가 독립적이라는 걸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거 같아. 그러나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부르며 더 우스꽝스러운 땐쓰를 추고야 말지 하하하.


너: 우린 왜 유치하지 않았을까? 학창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때의 나는 한껏 시크해서 유치하지 않으려 노력하던 중이었어서 지금이랑 크게 달랐을까 싶어.


나: 지금의 나는 오히려 그때보다 더 유치한 거 같은데 친구들을 만나면 마치 그때의 나처럼 유치하지 않은 척 애쓰는 거 같기도 해. 음.. 가족들이랑 있을 때에도 으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말이야, 알고 보면 나 대박 유치한데!


너: 그동안 집에서도 맘 놓고 유치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어? 이제라도 맘껏 유치해질 테다. 요즘 나는 ‘못해도 괜찮으니 그냥 하기’ 등 으른스럽게 잘 해내던 나를 깨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나: 유치해지거나 역할을 새까맣게 잊을 수 있는 시간이라면 지금 여기 진짜 내가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지금 친구들과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면 누구랑 만나서 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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