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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20. 2022

나한테 잘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아무도 보지 않는 척, 누가 봐도 상관없는 척

나: 요가하면서 보는 사람도 없는데 자꾸 포즈 신경 써서 도무지 이완하지 못한다, 고 했던 거 기억나?


너: 불 꺼놓고 하는 요가에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나: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내가 문제야.


너: 전에도 그렇게 말했잖아, 뭔가 새로워?


나: 음.. 내가 나를 관찰해. 근데 내가 또 욕망이 없다고 했잖아. 이제 보니 내가 나가 아녔어.


너: 알아듣게 말해봐바.


나: 수행하는 사람인 나는 욕망이 별로 없어서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은 확실히 없어. 문제는.. 관찰자인 나는 수행자인 내가 눈치 보게 만들어. 잘하려는 욕망은 없는데 잘 보이고 싶은 맘은 있는 거랄까. 관찰 자체가 부담이야.


너: 아. 그래. 자아의 싸움이구나.


나: 응. 이게 독립된 부캐면 좋을 텐데 그냥 여럿인 내가 수직 관계를 맺다 보니까 k-한국인(먼 말이야)으로서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맘이 있나 봐. 그리고 관찰자가 꽤 위에 자리하는 듯.


너: 다른 사람을 관찰할 때도 그래?


나: 그것도 좀 지켜봤는데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볼 땐 잘한다 못한다에 별로 관심이 없어. 이건 진짜 확실히 그러는 듯. 단체 사진 찍어도 자기만 보는 거처럼, 내 속에 나 왜 이렇게 많니, 모.


너: 네가 전에도 스스로에게 박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관찰자가 주어였나 보다.


나: 전에 내 한 학생이 '제 사촌이 있는데 선생님이 좋아할 거예요. 걘 영재거든요'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성적이랑 내가 좋아하는 정도는 동기화되어 있지 않다'라고 설명했는데 그 학생은 내가 빈말한 줄 알겠지.


너: 그러고 보면 잘한다 못 한다랑 좋아한다 싫어한다는 같은 의미가 아닌데 못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싫어한다고 생각하게 돼.


나: 움.. 수행자인 나는 내가 잘 못하면 관찰자인 나를 실망시킨다고 생각하나 그러면?


너: 네 말을 들으니 그런 거 같아. 어렸을 땐 자신이 아니라 부모나 선생님 등 외부에 관찰자가 있었겠지. 나름 노력해도 자기 기대만큼 남에게 인정받지는 못하는 경험을 해왔을 거야.


나: 그러게. 못한다고 미움받는 게 아니듯 잘한다고 이쁨 받을 것도 아녔을 테니. 어설픈 완벽주의자로 자라면서 관찰도 실망도 자기가 하게 되나 봐.


너: 그렇게 애쓰는데 당최 만족하는 대상이 없다니! 뭐.. 항상 누군가의 만족으로 결론이 흐르는 걸 끊어야겠네. 자기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난 좀 부담스럽더라, 나 충분한 거 같은데 뭘 더 사랑하냐고- 나 나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 오늘 친구를 만나서 주말에 요가한다는 얘기를 하니까 자기는 요가가 너무 힘들다는 거야.


너: 그래 어떤 건 아주 힘들지


나: 그래서 우리는 힘든 거 안 하고 평소의 반대 포즈로 오래 머무는 인(Yin) 요가를 한다, 그랬더니 그게 자기를 힘들게 하는 포인트래.


너: 왜 왜


나: 요가를 하면 잡생각을 없애라 현재에 집중하라 그러잖아. 그 친구 말에 따르면 요가 세션이 가장 잡생각 하기 적합한 환경인데 왜 하지 말라고 하냐고, 자기는 요가 시간 내내 일생각 애들 생각에 머리 터질 거 같다는 거야.


너: 그러네? 산해진미 차려놓고 먹지 말고 참아 그런 셈이라는 거구나?


나; 그렇지. 그러면서 차라리 복싱을 한다면 저걸 피해야겠다, 어디로 주먹이 날아올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테니 오히려 그게 현재에 집중하는 거 아니녜.


너: 진짜네.


나: 요가 중에 나는 관찰하고 있는데 수행자인 나는 관찰자가 신경 쓰이면서 신경 쓰는 건 또 짜증 나고, 생각하지 말라는데 자꾸 생각나니까 그것도 피곤하고 그래서 더 이완이 안되고 있나 봐.


너: ㅎㅎㅎ 그래. 온갖 하지 말라는 건 다 하고 있게 돼 진짜. 나는 나랑 너무 열심히 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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