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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Dec 25. 2022

쟤 때문에.. 진짜 아직도 쟤 때문에..

평면 위 평행선을 굴곡진 입체로

나: 요즘 엄마 언니랑 통화를 하면 엄청 바빠, 아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셋이 오디오가 물리고 물려.


너: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해.


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화하면 엄마는 시작과 끝에만 인사하고 통화는 곁으로 둔 채 티브이 보시거나 그랬거든.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갑자기 셋 다 관심 있는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바빠졌어.


너: 그럴 얘기가 있어?


나: 임영웅, 엄마 친구분들 얘기 머 그런 거? 엄마 친구분들은 우리 어렸을 때부터 이어지는 관계여서 우리도 대부분 다 알거든. 울 엄마가 모임이 많잖아, 모임 다녀왔다, 누구 오셨냐, 누구누구 왔다, 오 다들 안녕하시냐,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관계가 물리고 물려서 진짜 드라마야. 예를 들면 그룹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멤버가 있어, 그런데 그 멤버가 꼭 계속 문제를 일으켜, 보통 돈 문제지. 근데 그렇게 ‘계속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다른 멤버들이 너무 착해서인 거야. 서로 너무 잘 알아서 너무 이해하는 거지.


너: 아, 그래.


나: 돈을 빌려줬는데 안 갚았다 쳐. 그러면 돈을 달라, 그러면 지금 없어서 못준다, 이게 반복되다가 달라는 사람이 화나잖아. 그러면 막 더 강하게 달라며 여럿이 몰려가서 따져. 그러면 ‘지금은 못준다잖아! 나중에 줄 건데 왜 그래!’ 이렇게 적반하장으로 나와. 그 몰려간 친구들이 사정을 또 잘 알아, ‘그래.. 뭐..’ 이렇게 깨갱하고 돌아와. 그러면서 아직도 계속 만나고 걔 중엔 돈 못 받은 사람 천지야!


너: ㅎㅎㅎㅎㅎ 어렵네 어려워.


나: 나랑 언니는 이성을 장착하고 ‘다들 왜 만나?’ 그러고, 엄마는 ‘사정 뻔한데 뭘 또 안 만나’ 그러면서 또 그 문제 멤버 입장을 대변해! 그러다가 얘기가 길어져ㅎㅎㅎㅎ 엄마 친구들 얘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맺고 끊음이 없어.


너: 어머님이 이제 너희와 대화를 재미있게 하신다니 고무적이다 야.


전에 네가 죽음에 대해 얘기했었잖아. 깜비에 대해.


나: 응. 그동안은 ‘사라지는’ 주체가 물건이었어서 누구에게 준다, 버린다, 닳는다, 잃어버린다 머 이런 사라지는 이유가 있었는데 깜비가 죽었을 땐 깜비가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너: 그래, 그러면서 네가 사후 세계를 갑자기 받아들이게 됐다매. 아, 거기에 갔구나, 나도 곧 만나겠구나 그렇게.


나: 맞아. 어느 순간 갑자기 감정이 정리가 되면서 슬프다, 고 생각하지 않게 됐어.


언니가 얘기해줬는데 얼마 전에 오빠가 집에 왔을 때 아빠가 꿈에 나왔다는 얘기를 하더래. 나랑 언니는 너무 어렸을 때 아빠가 돌아가신 거라 애초에 아빠 기억이 없거든, 그러면 꿈에도 안 나온다데?


너: 오, 그거 참 희한하다. 아버님 사진이랑 이런 걸 봐서 얼굴은 아는 거잖아. 그래도 안 나오나 봐?


나: 그런가 봐, 생각해보니 아빠가 정말 꿈에 나온 적이 없더라고, 그동안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 아빠 제사 즈음 엄마도 가끔 꿈을 꾼다고 하시더라고.


너: 오 몰랐던 사실이다 야.


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한테는 아빠가 안 계시다는 게 그냥 친구들과 다른 상황에 대한 어색함이었어. 그걸 밝히면 잘해도 못해도 꼬리가 붙는 불편함, 그 정도? 그땐 불행인 줄 알았지만 이제 생각하면 어색함, 불편함이 맞는 듯.


오빠는 참 혼란스러웠을 거야. 오빠도 많이 어렸을 때였는데 오빠는 아빠와 상호작용이 이미 있다가 사라졌으니까. 아빠가 오빠를 강하게 키운다며 혼도 심하게 냈었대, 그래서 무서우면서도 미워하지도 못하고 그랬겠지.


너: 그래, 어떤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 거야.


나: 맞아, 갑자기 우리를 대하는 모두의 태도가 달라졌을 텐데 오빠는 그것도 무거웠을 듯. 얼마 전에 또 오빠가.. 음 우리 오빠 수다맨? 모. 암튼!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무슨 일 있나 싶어서 깜짝깜짝 놀란대. 사실 이게 언니랑 나도 똑같이 겪는 증상이거든. 그래서 나도 누가 이름만 부르는 메시지를 겁내기 시작했던 거고.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그랬었거든.


너: 오빠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어!!


나: 맞아. 혼란이야! 언니랑 나는 항상 맘속에서 오빠를 중심에도 주변에도 빼지도 두지도 못했었잖아. 서로 남매라는 역할은 있는데 애정이라기엔 갸우뚱하게 되고 말아. 지금까지 오빠에게 누가 있었을까 생각하면 좀 아찔해. 오빠 곁에.. 오빠라도 꼭 같이 있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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