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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an 02. 2023

링 위에서 같이 주먹을 뻗는 우리 편

싸우자

나: 언제부터 공감이라는 게 사회의 정의와 부정의를 이해하는 큰 기준이 됐을까. 공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흐린 눈 하는 게 모두를 설득시키는 이유가 돼도 괜찮은 걸까.


너: 안 맞고 이해가 안 되면 안 만나고, 내 세상만 좁고 강해지고..

 

나: 도덕적 상상력이 결여된 채로 살아도 괜찮은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너: 전에 네 공감에 상관없이 옳은 일에는 당연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했잖아. 너는 그러진 못하고 있다면서.


나: 맞아. 그때 공감하지 못하니 반응하지 않는 나에 문제제기를 했는데 공감과 반응의 연결고리를 끊어도 여전히 달라진 게 없어서 아직도 고민이야. 애써서 해보려는데 잘 안되더라고. 나는 뭐든지 애쓰는 건 잘 안되더라.


너: 나도 머리로는 공감, 동정, 긍휼 이런 차이를 알겠는데 어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생각할 땐 마음이 좀 이상해. 그 상황에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걸까 조심하게 되고 그걸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의 복잡한 심경을 헤아릴 수 없다는 생각에 말도 맘도 못 얹겠더라고. 그래서 생각 자체를 오래 안 하고 말아.


나: 나도 비슷해. 혹시 내 맘이 동정으로 비칠까 조심스럽기도 해. 동정하는 마음도 섞여있겠지만 그게 가장 큰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되더라. 게다가 링 위의 누군가를 응원하며 관찰하는 거 같달까, 안 싸워봐서 그런지 링 위에서 같이 싸운다는 옵션이 참 안 생기더라고- 그게 가장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그들도 싸우기 싫을 수도 있을 텐데 응원 때문에 못 관두나 싶고.. 복잡하게 이상한 맘이야.


너: 링 위의 우리 편 선수에 대한 응원도 응원이지만 상대방 선수를 비난하는 맘이 더 큰데, 실제로는 거대한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 작은 우리 선수를 응원하게 되다 보니 그 상황이 복잡해지는 거 같아.


나: 전에 내가 당장의 실적에 연연할 때(대충 회사 다닐 때란 얘기), 그때 어떤 싸움에 함께 참여한 적이 있는데 너무 이기지 못할 싸움인 게 보이는 거야. 예를 들면 우리 선수들은 노인 몇몇 분들이고 저쪽 선수들은 조폭인 그런 상황들. 전략을 짜는데도 우리끼리는 으쌰으쌰 하지만 질 것이 뻔히 보이는 싸움.


너: 아, 그래. 네가 전에 얘기했던 거 기억난다.


나: 그래서 그런 싸움 초짜인 나는 눈치 없이 계속 문제제기를 했어. 솔직히 다들 모르는 게 아니잖아. 내가 문제제기를 한 들, 그 문제제기의 답은 '그러면 그들이 하는 데로 따르고 싸우지 말자' 밖에는 없는 거야. 힘, 돈의 논리로 봤을 땐 누가 봐도 당장은 지겠지만 질 거라고 안 싸울 수 없는 약자의 싸움이 세상엔 너무 많더라고.


너: 맞아. 그래서 서로 언론 전을 펴는데 강한 쪽에서는 '인간성 나쁜 약자 프레임'을 씌운다며.


나: 응응. 그래서 나는 또 초짜로서 처음엔 '얼마나 착한 분들인데' 이렇게 생각했거든. 착할 건 또 뭐야, 다 각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나쁘다, 의 반대로 착하다, 가 아니라 나쁜 게 뭐가 문제냐, 의 논리로 반박해야 된다는 걸 배웠지.


너: 그래. 뻔하게 하는 말들. 지원금 더 받으려고 한다, 저번 지원금이 적다고 하더라 그런 거지 뭐. 돈으로 싸움을 천박하게 몰고 가는 건 참 매번 반복하는 프레임인데 잘 먹히는 게 문제야.


나: 그러게나 말이야. 어디서 보니까 착한 사람만 보상받고, 열심히 한 사람만 상 받고 이런 거.. 사회를 마치 학교처럼 보는 거라고 하더라고. 나 이 정도 했으니 보상해 달라- 그게 지금까지 엘리트주의를 강화한 거지. 대부분의 주장은 상 받겠다, 도 아니고 그냥 학교나 가게 해 달라가 다인데.


너: 이제와 생각해 보니 나도 그 부분이 불편했던 거 같아. 기사를 보다 보면 '어차피 안될 싸움'에 '떼쓰는 걸로 비치도록' 세팅하잖아. 나 역시 뿌리부터 강자논리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당장의 싸움이 지금의 승패만 가르는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 같아.


나: 전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화를 보는데 남편이 한 장면에서 '이 씬이 가장 감동적이야' 그러더라고. 나는 아무것도 못 느껴서 의아했지.


이 영화가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람들 얘기인데 병원 안에 한 대리석 수돗가(?)가 있어. 주인공이 그 수도가 외부 파이프랑 연결되어 있을 거니까 이 대리석을 뽑아버리면 우리가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다 뭐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걸 뽑으려고 해. 그게 되나? 말도 안 되지. 그런데 뽑으려고 시도해. 영화에서도 택도 없어, 끄응하다 말아. 남편은 그가 그걸 뽑으려고 하는 행동 자체가 의미가 있고 다른 수감자들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감동적이라는 거야. 나는 뽑는 데 성공한 것도 아닌데 뭐가 감동적인가 싶었던 거고.


너: 아.. 움 그래,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이해는 된다. 이기려고만 싸우기보다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거.


나: 전에 친한 동료가 맨날 지는 야구팀을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야. 이제 와서 말이지만.. 나는 팀을 갈아타면 되지 왜 저러지 싶었어.


너: 야 너 덕질인으로써 그게 할 말이야?


나: 워워 오해하지 마, 그때 그랬다는 거야! 일등이 아닌 팀을 좋아하는 덕질인으로서 이제는 완전 이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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