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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an 25. 2023

그럴싸하지 않아도 자꾸 쓰고 말하고 표현하자

아는 게, 아는 게 아니야?

나: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니.


너: 그 방면 내가 짱이야. 내가 더 몰라. 모.


나: 진짜 뭘 공부한 거야 그동안.


너: 단순 정보야 이제 인터넷이 발달했으니 금방금방 찾을 수 있는데 판단해야 하는 건 너무 어려워.


나: 내가 이 투박한 수다 글을 꾸준히 올리는 이유에 대해 자주 말하지. 미디어에서 그럴싸하게 멋지게 말하는 걸 보면 내가 자꾸 그걸 흉내 내려고 하더라, 근데 그게 잘 안되니까 아예 말을 안 하더라.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멋지게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자꾸 입을 다물게 되고 자기 이슈에 대해서도 설명을 잘 못해서 큰일이다.


너: 멋진 말들을 듣는 건 단어만 남고 전체적인 맥락이 잘 남질 않아서 멋지지 않더라도 너의 문장을 내뱉는 연습을 한다고 했었어.


나: 맞아. 그래서 쉽게 뱉는 수다라는 아이템을 내걸었지. 다들 그런 연습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며.


너: 초반에는 수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지금 이런 형식으로 글을 남기는 것이기도 하고.


나: 그랬고 지금도 그래. 사람들이 입 밖으로 주거니 받거니 내뱉는 것까지 연결해 보고 싶어서 이런저런 생각 중이야. 일방향이 아닌 어떤 거.


한창 프랑스 대입 시험인 바칼로레아 논술시험 주제가 인터넷에서 화제였었어. 그 나라에서는 그런 주제에 자기 생각을 밝힐 준비가 된 고등학생들이 대학교에 진학한다는 게 충격이었던 듯.


너: 기억나. 철학 주제가 대부분이었지. 그때 나도 그 주제로 함 써볼까 하다가 그걸 쓰지 않아도 자꾸 인생이 살아지니까 그렇게 잊어갔네.


나: 다른 문화권의 콘텐츠를 보면 의아한 순간들이 있어. 너무 별거 아닌 얘기를 굳이 손들고 발표하는 그런? 나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속으로 ‘쟤 왜 저럼’을 외치지. 하지만 지금은 뻔한 얘기들을 직접 쓰다 보니 혼자서 ‘캬, 맞네, 그러네’ 이렇게 됐고, 사람들이랑 얘기할 때 내가 직접 쓴 표현들을 진짜 많이 써먹어.


바칼로레아 답안지도 그렇게 획기적일까 생각해보면 꼭 그렇진 않을 거 같거든. 그 주제로 주어진 분량을 설득력있는 논리 구조로 서술한다는 게 큰 의미겠지.


너: 뻔한 얘기만 나오는 건 문제겠지만 그런 얘기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는 거 같아. 수다 떨 때 가끔 우리가 별 얘기 아닌 걸 갑자기 부정하거든? 예를 들면 ‘그건 열등감 때문이겠지. 근데 열등감이 왜, 뭐가 문제야’ 이런? 당연한 얘기를 비틀면 갑자기 내가 생각하며 가던 길이 끊기고 뒤돌고 방향을 틀면서 너무 뻔해서 생각해보지 않던 다른 생각으로 점핑하게 돼.


나: 네가 여둘톡을 알려줬잖아. 너 말고도 다른 친구가 이번 주에 그 팟캐스트를 알려주더라!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던 건가 봐. 그래서 나도 이제 막 듣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지금까지 대화해 온 아이템 리스트를 보니까 우리가 그동안 고민해 온 아이템들이랑 너무나 비슷하더라고. 신기했어.


너: 너랑 수다를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콘텐츠를 접할 때 어쩜 이렇게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을까 싶더라고. 그래서 전에 ‘내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더라’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거야.


나: 진짜로! 여둘톡은 어머님 세대도 많이 듣는다더라, 그 어머님이 우리 엄마 세대인 지는 모르겠지만.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나이, 인생의 속도 뿐 아니라 ‘젠더 등 사회적 위치’까지 확장됐어.


너: 내가 팟캐를 많이 듣는데 들을 때마다 어쩜 이런 뻔한 것도 그동안 모르고 살았나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그럼 이제 알게 됐으니 내가 변해야 하잖아? 막상 엄청 놀라운 속도로 획기적으로 변하질 않더라고.


나: 내 고민의 지점이기도 해. 한 10년 전쯤? 그때의 나는 어떤 계기로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이 생겼었는데 새로운 이슈를 하나하나 알 때마다 너무 충격받았고 그 이슈들이 내 무관심에서 더 강화되고 있다고 확신했어. 그땐 페북이 활발했고 페북에 이런 거 저런 거를 공유했었거든. 그런데 그게 내 지인들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그게 그때의 나에게는 또 충격이었어. 사회가 정의롭지 않은데 그걸 알고도 분노하지 않다니, 이러면서 이상해져 갔어. 나 역시 지인들의 공유에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면서!


너: 다들 어떤 계기가 필요한가 봐. 네가 전에 덕질을 시작하게 된 시점을 덕통사고라고 표현했잖아, 그거 재미있더라.


나: 맞아. 그렇게 시작된 덕질에 나는 또 ‘다들 그 그룹을 몰라서 안 좋아하는 거다’고 생각하더라고. 이 노래를 들으면 안 좋아할 수 없어! 그런 착각에 다시 빠진 거지.


너: 관점이나 취향에 답이 있는 건 아닌데 거기에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위험하지. 근데 위험한가?


나: 그런 순간들을 더 많이 자주 강하게 경험해야 하는 거 같아. 정말 위험한 건 내 답이 네 답이 아닌 것에 분노하고 강요하는 거? 그러면 콘텐츠나 맥락이 사라지고 분노와 강요만 남으니까. 하지만.. 10여 년을 안 먹히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강요하고 싶고 남의 강요에는 강력하게 철벽을 치고 있어, 사람 안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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