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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an 23. 2023

그럴싸한 무색과 별거 없는 원색 사이

나의 세계에 초대하고 싶지만 아직 초대할 곳이 없지만

너: 기술적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작가의 세계관이 분명히 녹아든 작품과 기술적으로 화려해도 세계관을 모르겠는 작품, 이에 대한 의문이 생겼어.


나: 전시회 보고 와서 그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 나도 네 얘기를 들으니 학창 시절인가.. 70대 때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주목받고 있다는 한 화가의 작품을 보고 읭스러웠던 기억이 났어. 그땐 아마 내가 ‘어떤 작품보다 더 눈에 띄게 잘 그리는 것’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겠지.


너: 네가 문창과를 비판한 거장 작가의 인터뷰 얘기를 해줬잖아.


나: 응 그랬지. 다들 그럴싸한 글을 쓰지만 철학이 없다 뭐 그런 내용이었던 듯. 내가 ‘글을 쓰는 게 재미있지만 솔직히 쓰고 싶은 건 없다’라던지, ‘내 세계관이 없다, 도무지 상상하질 않고 감정만 남는다’ 이런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 보니 저 인터뷰가 딱 꽂혔지. 지금의 나는 그럴싸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철학도 담지 못하는 단계에 있는데, ‘쓰고 싶은 내 세상’이 있어야 그 단계를 넘어가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너: 그즈음 네가 아이들의 그림과 현대미술에 대한 언급도 했었어. 작가들이 환각이든 상상이든 보고 느낀 걸 형식을 깨며 표현한 것과, 아이들이 세상을 선과 면으로 완전 단순화해서 그려낸 결과를 비교하는 것에 대해.


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여전히 잘 모르겠어. 잘 정리된 작가의 인생 스토리와 설명이 추가되지 않은 작품 그 자체로 뭘 이해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내 인생에 어떻게 들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너: 이번에 보러 간 전시회에 눈에 확 띄는 작품이 있었다던가 그러지 않았거든. 하지만 그림을 보다 보니 다른 작품들이랑 그의 작품이 섞여있을 때 알아볼 수 있겠다 싶긴 하더라.


나: 아! 그러면서 우리가 유행, 세련 이런 얘기를 엮었지. 예를 들어 우리가 가장 영향을 받은 시절은 90년대 후반 00년대 초반였을 텐데 지금 우리의 그 어떤 것에도 그 영향이 남아있질 않다는 게 이상하다고.


너: 맞네. 유행, 세련에 매몰되서 막상 모두가 색을 잃었다고 했지. 그러면서 70년대에 꽂힌 네 남편 얘기를 해줬어. 여전히 그때의 스타일로 옷 입고 ‘이야, 나 오늘 좀 멋진 70년대 패션인데?’ 이런다고.


나: ㅎㅎㅎㅎㅎ 응 맞아. 그는 여전히 쇼핑을 무지 좋아하지만 사는 옷들은 매우 고만고만해, 아마도 요즘 나오는 70년대 스타일의 옷들인가 봐. 그 옷을 입은 자기에 빠지는 것 같아. 그가 그 옷을 입고 거울 속에서 보는 건 그때의 자기일까 더 나이 든 지금의 자기일까.


너: 거기에 의미가 있었을까, 이번 전시회의 작가는? 세상이 변했는데 자기를 잃지 않았다는 거?


나: 그럴 수 있지. 분명 이런저런 시도를 했겠지만 결국 자기에게 가장 맞는 옷이 그거라는 걸 알았나 보다.


너: 나이가 많은 작가였고 나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어. 자기의 길을 자기 스타일대로 꾸준히 가다 보니 자기의 세계관이 완성됐나 봐.


나: 그때 내가 세계관 얘기를 했을 때 네가 ‘쓰다 보면 내 세계관을 패치처럼 연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했지. 지금 우리가 쓰는 글들, 밖으로 내뱉는 말들이 언젠가 다 구슬처럼 엮이려나.


너: 지금은 글을 쓸 때나 수다를 떨 때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경우도 많아. 하고 싶은 말에 단어를 고르는 게 아니라 갑툭단어 뿅. 그러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거기에 담겨있나 싶어서 버리지 않고 그냥 계속 이어가.


나: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너.


너: 당장 바늘 가져와 바늘, 한 백개! 다다익선!


나: 네 세계 얼마나 복잡한 거냐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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