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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an 21. 2023

참견하지 않고 친구 곁에 머물 수 있으려면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면서 너의 일상이 더 이상 나의 일상이 아닐 수 있나

나: 새삼스럽지만 친구들 일상 속에 내가 없는 것 같아.


너: 그렇게 생각한 계기가 있었어?


나: 그건 아냐. 연락을 잘 안 하는 걸 그저 내 성향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그럼 내 친구의 성향은 어쩌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 이렇게 연락을 잘 안 하는데도 여전히 친한 친구 카테고리에 날 넣어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너: 일상을 자주 나눠도 그렇게 친해지지 않는 사람이 있고 연락을 잘 안 해도 항상 곁에 있는 듯한 사람이 있더라.


나: 친구들이 큰 결심을 할 때, 인생에 큰 변화가 생길 때, 맘고생을 하거나 기쁠 때 내가 옆에 있지도 못하는데 내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너: 직접적인 도움이 꼭 돼야 하나.


나: 결혼하면서 남편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무슨 질문이 그래' 그런 반응을 보이면서 몇몇을 언급했어. 그땐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관계랑 그 관계가 싱크가 맞는지 모르겠더라고. 나는 감정적으로 잘 맞고 깊은 속마음을 보일 수 있는 친구들을 친한 친구라고 언급하는데 남편은 그 친구들이랑 깊은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거든. 근데 그 친구들을 만날 때 남편은 확실히 좀 신나 보여. 그리고 자주 그 친구들이랑 통화해. 뭐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오늘은 누구랑 통화 좀 해야겠다' 이렇게.


너: 네가 전에 '평소에 연락하는 게 진도체크하는 것 같다'라고 한 기억이 난다.


나: 맞아. 그러고 보니 나는 메시지로도 수다를 잘 못하네. 내 수다력 왜 이렇게 낮아, 모. 평소에 친구들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냐, 정말 자주 떠올려. 안부 차 메시지 보내면 많은 경우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 잘 지내냐 잘 지낸다 이러고 끝나게 되잖아. 마음은 더 큰데 할 말이 그 정도라 진짜 잘 지낸다 체크하고 마는 것 같아서 메시지 잘 못해. 잘 못지내야 얘기가 길어지는 게 이상해.


너: 그래서 네가 이런저런 정보 공유하는 걸 좋아하나 보다. 전달할 게 있으면 연락하기에 좋은 계기가 되긴 하지.


나: 그것도 맞아. 사적인 연락은 잘 못하면서도 꼭 잊지 않고 정보를 전달하는 내가 희한하다고 나도 생각했거든. 정보 전달이 나에게는 연락의 이유가 돼서 편한가 보다.


너: 방금 네가 한 말을 듣고 보니 나 역시 그렇게 일상을 자주 나누는 친구들이 있진 않은 거 같아. 자주 만나도 이미 서로 걸러낸 아이템만 공유하게 되잖아. 네가 말하는 일상, 을 나눈다는 게 모두에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봐.


나: 울 엄마는 진짜 시시콜콜한 것들을 친구들이랑 얘기해.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고도 헤어지면 또 별것도 아닌 걸로 전화하시고 그러더라고. 서로를 막 엄청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너: 오, 거의 학창 시절 쪽지 주고받던 수준인데?


나: 진짜로 진짜로. 물리적 시간을 그 정도로 같이 보내면 확실히 다른 듯. 학창 시절 생각해 보면 그 친구 자체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 친구가 내 일상에 걸쳐있다는 게 큰 일이었던 거 같아. 말하지 않아도 내 상황과 내 맘을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거. 그 친구가 진짜 알고 있는지보다, 적어도 그 친구는 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했어.


너: 지금은 친구들이랑 가끔 만나는 게 다인데 많은 경험들을 다 지나서야 듣게 되잖아. 그 고민이나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는 아니지. 좀 뭐랄까 다들 한 방향으로 선언하는 정도랄까? 나, 이런 경험했다. 롸저. 게다가 대부분의 경험이 음.. 나눌 정도인가 싶어서 대화거리 후보에 오르지도 못해.


나: 지금 우리는 각자 여유 없는 생활에 물리적 감정적으로 가까운 누군가를 찾기 쉽지는 않은 상태인가 봐. 그래서 회사 다닐 땐 동료들이랑 매일 그렇게 붙어다니다가 회사 관두면 그다지 오래가지 않기도 하고.. 물리적으로만 가까웠던 거지. 확실히 감정적으로 가까우면 뜨문뜨문 만나도 오래가는 거 같긴 하다.


너: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랑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표현이 어울렸어, 눈만 봐도 통했지. 근데 지금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잖아. 더 솔직히는 말해도 전달이 안 되나 싶고 피곤해. 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것도 피곤한데 친구들이 설명해도 내 의도를 잘 모르는 거 같으니, 그러다가 자체 건너뛰고 생략하고 입을 다물고 서로 할 얘기가 없어지고.


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고민이라는 아이템을 놓고 대화하잖아. 내가 새롭게 깨닫게 된 무언가, 뭐 이런 얘기는 잘하지 않고 괴롭고 힘들었던 그런 일들. 학습됐나? 그 정도의 고민을 얘기해야 그나마 서로 얘기가 진행되더라 이렇게?


너: 움 그런가. 고민을 만들고 내 열등감을 적당히 드러내는 게 스킬이 돼버린 건가. 거기에 또 적당한 반응을 하는 것까지?


나: 드러낼 정도의 적당한 열등감. 도무지 어떤 부분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갖고 있다는 너의 지인이 생각난다.


너: 그래. 그러고 보면 그 지인의 열등감은 극복을 위한 게 아니었나 싶어. 그걸 듣는 나는 열심히 그를 설득하려고 했네. 그렇게 시간을 보낸 거 보면 그 역시 그저 대화의 아이템으로 역할을 한 걸까.


나: 다시 또 의문이 생기네, 친목이란 무엇일까. 실질적인 일상 속 관계와 상징적인 특별한 깊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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