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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Jan 18. 2023

재미있던 기억과 지금 닥친 사건의 불일치

꼭 재미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재미없을 필요도 없잖아요

나: 요즘 아주 카페인에 두근두근..


너: 그래, 너 카페인에 예민하잖아.


나: 밀렸던 글을 쓴다고 오전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커피를 많이 마셨더니 거의 만취 상태야. 어쳐ㅓ고냐저ㅓ러ㅑㄹ


너: 야 글에서 커피냄새 나, 모.


나: 그동안 글 쓸 소재를 많이 모았다고 생각했거든. 메모를 해 두기도 했고. 여기서 메모를 열어보니 당최 뭔 말인지 기억도 안 나고, 이 카페인 오른 상태로 새로운 소재도 생각 안 난다.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카페인에 취한 상태로 운전도 하면 안 되겠어.


너: 심할 땐 어지러워서 누워있기도 하고 속이 울렁거리기도 한다더라. 취한다는 표현이 딱이네.


나: 친구를 만나는데 그 친구가 초2 아들을 데리고 나왔어. 몸을 베베 꼬면서 어찌어찌 점심은 먹었는데 차 마시러 가는 길에 그 아이가 ‘어른들만 신나고 나는 이렇게 재미 하나도 없고!!’ 이러면서 계속 불만을 토로하는 거야.


너: 오, 너무 포인트 파악을 잘했고 진짜라서 할 말 없어. 모.


나: 그러니까. 너무 인상적이더라. 애는 계속 진심을 담아 얘기하고 이미 아이템도 몇 개 획득했어. 애 아빠가 그날 저녁 게임 시간도 원래 30분에서 1시간, 1시간 반 할 수 있게 늘려주고 차 마시러 같이 가면 색칠공부도 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애 엄마가 약속도 하고.


너: 움.. 해결 안 되겠는데..


나: 맞아, 그게 핵심이야. 눈물을 그렁그렁 하면서 계속 ‘어른들만 신났다, 나는 뭐냐’고 얘기하는데 아이템 얻어봤자 ‘지금 재미없는’ 건 해결이 안 되잖아. 그 아이는 당장 롯데월드를 가자고 했거든.


너: 어럽쇼. 거기다 대고 ‘롯데월드는 너만 재미있고 어른들은 재미가 없다’고 설명할 거야 어쩔 거야.


나: 그러니까! 그래도 같이 시간을 보내려면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해야 하잖아. 차 마시러 가서는 색칠공부를 하게 됐는데 귀는 쫑긋쫑긋하면서 어른들이 하는 얘기에 엄청 관심 가져. 아이가 재미없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헷갈렸어.


너: 움..


나: 첨엔 진짜 롯데월드 같은 놀이동산 정도의 신체적 자극이 필요한가 보다 생각했거든. 얘기를 들어보니 그것보다는 전에 친구네랑 롯데월드 갔을 때 재미있었다는 기억 때문에 그런 거 같더라고. 그러면 우리가 대화할 때 아이를 포함해서 재미있게 한다고 쳐,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그러면 얘가 재밌다고 기억할까? 나중에 막 다른 데서 ‘오월 이모랑 얘기하고 싶다’고 생떼 부릴까?


너: 푸하하. 매우 가능성이 낮은 상상이긴 하다. 애들은 몸 에너지를 발산하긴 해야 하는 거 같아. 그렇지만 그게 유일한 즐거움이라고는 할 수 없긴 하지.


나: 1월 1일에 조카가 집에 놀러 왔는데 놀러 올 땐 항상 장난감 둬 개를 챙겨 들고 와. 그러면 나랑 언니랑 조카는 그걸로 같이 놀아. 그 나잇대 특징인 건지 뭔지 조카는 자기가 익숙한 걸로 상대보다 잘 해내고 이겨야 재미를 느끼는 거 같더라고. 근데 가지고 온 장난감을 다 하고 놀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거야!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채워 넣는 빙고를 하자고 했지.


너: 초1이랬나? 가혹행위 아니냐?


나: 야, 나한테 가혹했어. 애가 너무 아는 것도 많고 잘해, 진짜 웃겨ㅎㅎㅎㅎㅎ 자주 하던 놀이가 아니니까 억지 부리거나 하는 것도 별로 없고 상부상조하면서 여섯 판이나 했다고. 오랜 시간을 머리 쓰면서 잘 보냈어.


너: 그럼 이제 조카에겐 빙고가 재미있는 게임으로 등극할 것인가.


나: 그땐 재미있게 놀았는데 계속 기억을 할 건지 모르겠네. 재미있던 기억과 지금 당장 닥친 상황의 불일치, 그런 판단 과정으로 도출된 재미없다는 결론. 인생이 재미있어지려면 재미있던 기억 풀을 넓혀야 하나 봐.


너: 애들을 보니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게, 저번에 무지 재미있어했던 것도 기억 못 하는 거 수두룩하고 저번에는 심드렁했는데 다시 보면 눈 반짝이는 것도 있고 그렇더라. 세상 어려워.


나: 우리가 아이들의 리액션으로 판단해서 그런가 보다. 아이들이 투명하다 해도 리액션이 모든 걸 설명하는 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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