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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Feb 13. 2023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살아가기

감정과 스토리가 다른 것도 아니잖아요

나: 콘텐츠 고를 때 뭘 가장 중요하게 봐?


너: 움.. 요즘 팟캐스트를 많이 듣다 보니 거기서 다룬 것들을 클릭하게 되는 듯?


나: 맞아, 나도 네가 언급한 것들이 보이면 열어보곤 해.


너: 너는?


나: 장르물을 좋아한다고 얘기했던가? 범죄 형사 검사 이런 거.


너: 나는 무서워서 절대 못 보는 그 장르!


나: ㅎㅎㅎ 반면에 내가 로맨스, 드라마 이런 건 거르더라. 신파? 가차 없어, 리스트에서 삭제야. 범죄 드라마도 억지 감정을 짜내면 올스탑이고.


너: 그때 그 배드민턴 드라마는?


나: 라켓소년단? 일관성이 떨어지지만 그 나잇대 애들이 나오는 건 드라마 장르도 봐, 모.


너: 아 그래, 네가 그 나잇대의 너에 대해 언급했었지.


나: 응응. 취향인가, 싶다가도 스토리랑 감정을 고민하고 있다 보니까 좀 의아하단 생각이 들었어.


너: 감정에만 휩싸여서 스토리가 안 만들어진다, 고 한 거?


나: 맞아. 그 맥락에서 감정 다루는 콘텐츠를 왜 삭제까지 할 정도로 외면할까 싶더라고. 봤더니 이해 안 된다 라는 마음일까 아니면 그냥 그 감정을 다루는 게 불편한 걸까.


너: 왠지 로맨스랑 드라마, 외면의 이유가 다를 거 같다. 네가 연애 감정에 지배(?) 당한 적이 별로 없잖아. 반면에 드라마에서의 일상 감정은 정말 지배당하고 있고.


나: 푸하하, 그러네? 사람을 이해하는 데 연애가 대단한 해결책인 것처럼 흘러가는 게 불편해. 드라마도 마찬가지지만 실생활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솔직하게 보이면서 이해하냔 말이지. 말로 다 드러내고 표현하면서 해소하는 과정이 비현실처럼 느껴지는 듯.


너: 그러면 현실처럼 서로 겉핥기 얘기만 하거나 5 단어 이상 넘어가지 않는 문장만 말해?


나: 그러면 답답하다면서 안 보겠지? 오히려 지금의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방식을 매우 선호하지. 감정의 피크에 도달하면 다 대놓고 말로 하잖아! 그럼 뭐가 문제냐면.. 모르겠네. 나 어차피 안 볼 건가 봐, 모. 암튼 내가 그런 드라마를 외면하는 게 또 감정의 문제로 이어지나 싶었어.


너: 그래. 나도 그런 드라마 별로 안 좋아하는데 네 말대로 그 카타르시스에 동의하지 못해서 그런 거 같아. 다른 방법이 있는가, 그건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당장 원하는 방법이 아닌가 봐. 그 해소 과정에서 내가 누군가를 더 이해하게 돼도 현실의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달라지지 않는 나를 보는 것도 좀 그렇고.


나: 나는 그 드라마에 주로 다루는 감정들을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너: 요즘 촌스러움을 자주 언급한다?


나: 그러네 진짜, 그때 언급하기 전에 내가 촌스러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말이야. 아마 과거 및 지금의 나는 촌스럽고 싶지 않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들키고 싶지 않나 봐.


너: 다들 그렇지 뭐. 사회에서 만든 허상에 ‘허상.. 허상이라고!’ 자꾸 외쳐대는 거 보면 신경 쓰여서 그런 거겠지. 암튼 그래가지고 그 감정들이 촌스러워?


나: 감정이 촌스러운 건지 그 감정을 드러내는 게 촌스러운 건지 모르겠어. 감정이야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 속에서 그걸 촌스럽다고 규정하고 그 감정을 없는 척 세련되게 포커페이스 하면서 살아왔나?


너: 신파라. 네가 하려는 말을 좀 더 구체화해 보자. 예를 들면 가족 간의 관계, 거기에서 뭐가 촌스러울까?


나: 어렸을 때 부모에 의지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자식들이 기대하는 모/부성애, 그 기대에 충족이 안 돼서 성인이 되고 부모가 돼서도 감정적으로 독립이 안되고 해소하고야 말겠다는 의지, 죽음을 목전에 둔 혹은 죽음으로 해소되는 결말?


너: 음.. 실생활에서도 그렇게 복잡하게 감정이 엮여있지.


나: 다 자라지 못한 자식은 여전히 과거의 부모를 탓하게 되잖아. 또 모부가 스토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남아.


너: 팟캐스트 한 사연에 삼촌(?)의 장례식 얘기가 나왔어. 참석한 사람들이 다들 삼촌에 대한 에피소드를 얘기하더래. 착했지 좋은 사람이었지 그런 게 아니라 이런 재미있는 일이 있었지 저런 섭섭한 일이 있었지. 내가 죽었을 때 내 장례식에서 다들 무슨 얘기를 할까, 혹은 내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게 없어. 그러면 그냥 다들 슬프다 안타깝다고 하겠지, 또 감정만 남아.


나: 오 그래. 가족이나 나와 가까운 친구들조차도 나에 대한 스토리를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겠다 싶네.


너: 얼마 전에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됐는데, 참 쉴 새 없이 자기 얘기를 하더라고. 대단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 인생을 하나의 흐름으로 얘기하는 게 재미있었어. 네가 자주 역할 다 떼고, 이런 표현을 쓰는데 역할을 뗄 필요는 없지만 역할 타이틀만 남아있는 것도 이상하잖아. 내 인생에 대해 말할 때 겪어온 타이틀 언급 외에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하게 되더라.


너: 글로 쓰는 것과 말로 하는 건 좀 달라. 글을 구성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더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하고, 써놓고 보니 에피소드가 완성되는 경향도 있고.


나: 우리.. 글이 말보다 더 쉬운가? 친구들을 만났을 때 에피소드 내 작은 작은 부분들을 언급한 적은 있는데 그 에피소드가 통으로 대화거리가 된 적은 없어.


너: 그렇기도 한데, 단순 쉽다 어렵다는 아니야. 글은 전체를 보지만, 말은 상대를 살피게 되니까 지루할까 싶어 급 마무리를 하게 되고!


나: 감정에 휩싸여 있다고 말하면서도 내 감정이든 남의 감정이든 감정을 대놓고 다루는 드라마는 신파다, 촌스럽다고 말하는 내가 여전히 의아해.


너: 너는 친구나 친척과 대화하는 시간 vs. 일하는 거. 난이도로 따지면 뭐가 더 어려워? 좋아하는 거 말고.


나: 일하는 거. 그거도 참 이상하다 그렇지. 사실 어려운데 마냥 좋아할 순 없잖아. 그래서 내 수다에 대한 양가감정이 생긴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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