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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Feb 15. 2023

까마귀가 날든 말든 지구는 배를 잡아당기고

그게 원인이라면서 왜 해결은 안 되나요

나: 많은 것들이 인과관계(causation), 상관관계(association)를 의도적으로 혼용해서 혼란을 주는 거 같아.


너: 임신 중 담배를 핀 산모의 아이가 아프다, 담배 때문에 애가 아픈 거다 이거 잘못된 거 맞지?


나: 잘못된 인과관계의 가장 대표적인 예. 담배가 직접적인 원인인 건지 알 수 없으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만 99%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너: 첨 저 예시 들을 때 그 오류를 범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어.


나: 그렇지. 임신 중 담배를 필 정도로 몸을 돌보지 않았으면 여러 다른 요소에서 결핍이 있었을 거고 그중 어떤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게 있을 텐데 그게 진짜 담배인지는 알 수 없는 거. 그래서 임신 중 담배 피우는 것과 아이의 건강상태에 상관이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어.


너: 근데 왜 넌 그걸 ‘의도적으로 혼용한다’고 해?


나: 인과로 설명하는 게 훨씬 강력하고 쉬우니까 상관관계인 것들도 다 인과로 퉁쳐서 넘어가는 거 같거든, 사회적으로. 그러면 쉽게 통제할 수 있고.


예를 들어 아이의 성적과 부모의 친밀한 정도를 조사했어. 그랬더니 성적이 낮은 집의 부모가 덜 친밀하고 높은 집 부모는 더 친밀해. 그런 기사가 나왔다면 아이한테 ‘너 때문에 우리가 싸우는 거야!’로 흘러간달까.


너: 아이고야 너무 일어나는 일이다.


나: 아이가 계속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부모는 대체로 행복하지 않더라’를 알아내지 못해. 그러면 평생 그 가족의 누군가는 아이 때문에 부모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


너: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네. 징크스도 그런 거고. 그럼 인과관계는 뭐 있어?


나: 모르겠어! 인과관계는 진짜로 증명하기 훨씬 어려워서 많은 소송이 억울하게 끝나는 거기도 해. 감으로 잠정 결론 내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너: 움. 무죄추정의 원칙.. 그동안 일상적으로 착각한 인과관계를 좀 생각해 봐야겠다. 때문이야 라는 표현을 참 자주 써왔고, 기억이 안 나지만 뭐랄까- 자연스럽게 나를 ‘원인’의 위치에 놓고 해결해보려고 했던 거 같아. 그러면서 무력감을 많이 경험했어.


나: 그렇게 말하니 저 아이가 해결해 보겠다며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부모가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경험도 딱히 좋은 거 같진 않다 야. 어렵네.


너: 굳이 나 자신을 어떤 일들의 원인으로 둘 필요는 없어. 원인이 뭔지 모르겠는 일들이 훨씬 더 많을 테니 내가 원인이 아니라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 원인 삼아도 안 되고. 이것도 명심.


나: 우리는 대부분의 일들에 원인이지도, 해결책이지도 않아. 생각의 흐름을 바꿔야겠어.


나는 언니가 나한테 무언가를 얘기할 때 자꾸 원인이 언니 안에 있다고 단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오류를 저질러. 그 해결책으로 해결이 되나, 당연히 안되지. 그래서 나중에 봐도 문제는 여전히 거기 있는 거야. 그러면 답답하기도 하고 좀 섭섭했거든. 사실 내가 단정하는 그 원인이 언니를 통해 보는 내 어떤 모습인 거 같아. 모. 말하고 나니 어이가 없네.


너: 심청이가 아빠 눈 뜨게 하는 해결책이었잖아. 죽음 같은 희생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둔갑시킨 동화가 얼마나 많아! 갑자기 열받네.


나: 갑자기?ㅎㅎㅎ 확실히 사회는 어떤 그룹의 희생을 강요하긴 하는 거 같아. 촉매 역할을 하는 시대정신이라는 게 있는 듯. 전래동화 시기에는 딸, 엄마, 아내의 희생이 더 부각됐고. 지금은 누구에게 강요하고 있는지 세심히 살펴봐야지.


너: 우리가 세상을 인지할 때,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순 없으니까 작고 애매하고 어려운 것들을 제거한 채로 받아들인대. 그렇지만 결국 나중에 거기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타나지. 아까 그 가족에서 부모의 삶에 아이라는 아이템은 있지만 아이의 감정은 배제한 거랄까.


나: 필요조건, 충분조건. 우리 고등학교 때 배운 건데 기억나?


너: 겠냐? 뭐더라?


나: 사람이면 죽는다,는 사실이잖아. 죽는 게 다 사람인 건 아니고. 이때 사람이다는 죽는다의 충분조건이고, 죽는다는 사람이다의 필요조건.


너: 음.. 필요충분조건 뭐 그런 거? 야야 이러기야?


나: 사람이면 죽을 조건이 되는 건데, 죽는 행위 자체로 그래서 사람이다, 고 말할 수는 없는 거지.


너: 그래서 왜, 모.


나: 네가 조립식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나서 저게 떠올랐어. 사람들이 흔히 ‘가족이면 같이 산다’고들 생각하잖아?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그동안 ‘같이 사는 사람은 가족이다’고 뒤집은 거 까지 생각했던 거 아닌가. 여기 가족은 법적 혹은 혈연 가족. 그래서 그 방향의 화살표를 깬 거 같아서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


너: 사회에는 이상한 명제도 많아. ‘남녀면 데이트한다, 데이트하면 남녀다’ 사람들이 둘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왔지만 이제는 저 명제가 둘 다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시작하지.


나: 그러게 사회 속 명제는 진짜 조심해서 판단해야겠어. 가정 결론의 위치뿐 아니라 그냥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명제도 많은데.


너: 친구면 만난다, 만나면 친구다 이건 어때? 친구면 만나는 건 맞지만 만난다고 다 친구일 필요는 없잖아.


나: 그러게. 네가 전에 나한테 관계와 수다 중 포커스를 다시 잡으라고 해준 후 이런저런 생각이 또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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