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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Feb 17. 2023

나는 왜 수다에 문제제기를 할까

스몰토크에서 빅토크로 넘어가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지

나: 수다 관련 콘텐츠 고민에 '왜'가 영 안 풀려.


너: 고민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여기 올렸었잖아. 그걸로 정리가 안돼?


나: 안돼. 몇 가지 꼽아보려는데 자꾸 성격, 관계를 건드리게 되고 그건 의도랑 안 맞고.


너: 아, 움. 너는 스몰토크에서 빅토크로 넘어가는 걸 연습하고 싶은 거 아녔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 같다고.


나: 맞아 그거지. 내가 스몰토크의 아이템을 잡으려는 게 아닌 건 너도 알잖아.


너: 그래. 아이템 다음 대화 연결이 안 되는 걸 깨고 싶은 거지.


나: 사람들이 대화할 때 좀 더 서로를 보였으면 좋겠다ㅡ 딱 요거.


너:.. 우리가 마라國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 갑자기? 왜, 다들 마라탕 먹어서?


너: 너어는 지인짜.. 하지 마라는 게 하라는 것보다 비정상적으로 많아서. 그러지 않으려 해도 애들한테 하는 많은 말들이 '그걸 지금 하지 말아라' 더라고. 내가 그 말을 매우 안 좋아하잖아? 그래서 아무리 뱅뱅 돌려도 결국엔 그 행동을 제약하려는 의도를 들키고 말아. '그건 맘껏 해도 돼'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있다고 하더라도 '저건 안되고 이건 그나마 해도 돼'라고 대체제안을 할 때?


나: 움.. 마라를 통한 통제와 훈육.


너: 아이와 부모 관계뿐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그 외 사회생활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기분이 나쁠 수 있으니 대부분의 질문도 하면 안 되고, 적당히 눈치 보며 반응해야 하고 등등.. 다 상대방이 주어. 상대를 위해 하면 안되는 것만 잔뜩이야.


나: 그러게. '내가' 해도 괜찮은 게 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네.


너: 얼마 전에 선 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했잖아. 그때 어떤 관계라면 선을 넘어도 되는가, 란 생각이 들더라. 선을 넘는 행위 자체보다 참견이나 설득을 위해 혹은 단순 호기심 때문에 선을 넘는 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이상은 넘지 말라고 표현했을 때 그걸 그만해야겠다,라고 받아들이기보다 상대의 예민으로 몰아가는 게 또 문제고.


나: 맞아. 한 아이돌이..


너: 너 또 아이돌!


나: 계속 얘기하게 해 줘 아이돌! ㅎㅎㅎ 한 아이돌 멤버가 번아웃이 온 거야. 팀 내에서 꽤 밝아서 예능에도 자주 나오고 그런 멤버인데 한동안 예능도 안 나가고 멤버들이랑 있을 때도 한 마디도 안 한 거지. 그래서 다른 멤버들이 다 걱정을 하더라고? 이 걱정은 인터뷰에 나와, 모. 근데 대부분의 인터뷰가 그 친구가 너무 힘들어하니 혼자의 시간을 줘야 할 것 같다, 그 친구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러더라고. 그게 진짜 최선인가 약간 의아해졌어.


너: 그렇지, 대부분의 우리가 하는 방식이지.


나: 내가 여기 있을 때 친한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지병이 있으셨는데 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돌아가셨고 친구가 많이 속상해했지. 그때 이후로 나는 그 친구한테 아버님 얘기를 의도적으로 거의 안 해. 아버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지, 뵀을 때 얼마나 잘해주셨는지 이런 얘기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어. 그 친구에게 아버님을 상기시키는 게 대단한 잘못이기라도 한 양.


너: 전에 네가 예민함은 터뜨릴 때 터진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지금 얘기들을 들어보니 우리가 결국 어떤 큰,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오히려 개인에게 남겨두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나 봐.


나: 우리가 맞닥뜨리는 건 상당히 복잡하잖아. 그걸 경험하는 우리의 감정도 그렇고. 근데 나는 마치 그 친구가 아버지에 대해서는 '슬픔'이라는 감정만 가진 것처럼 대했네.


너: 우리가 서로에게 해도 되는 건 진짜 뭘까?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너를 상처 주려는 게 아니라 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거라는 확신은 어떻게 주는 걸까?


나: 누군가가 '나의 삶'에 다가온다는 걸 받아들이면 될까?


너: 네가 우리라는 배는 각자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조직체라는 얘기를 했었거든.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한 부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부품이 영향을 받는 조직체가 아니라 다들 '아이고 저 부품 어쩌나'라고 걱정하고 바라보고 있는 개별 부품 모음인 거 같다고.


나: 그랬지. 우리의 삶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점에는 '너의 사건 나의 사건 그런 각자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겪는 우리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해. 진짜 거창한 거 아니고 그저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 좀 더 우리 얘기를 하고 싶은 거뿐인데.. 아.. 수다를 통해 뭘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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