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나로 살아가기
당연한 죽음.
세상에 그런 건 없다.
아빠가 돌아가셨고 아직 체온이 따뜻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가슴이 망치를 맞은 것처럼 울렸다.
이젠 가고 안 계시다는 그 부재가 내 삶을 훅- 하고 삽으로 누군가 절반 이상 떠 간 것처럼 투명 인간이 된 기분이 들었다.
때가 가까운 거 같아 마음속으로 준비를 했건만 아무 소용없이 결국 나에게 닥친 이 크나큰 충격은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한국 시간 새벽 5시. 여기서 당장 날아간데도 가까스로 발인 전에 도착하겠지. 아빠 아빠... 아빠... 울면서 티켓을 사고 짐을 싸서 공항을 향했고 새벽 비행기를 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시각 돌아가신 날짜가 되려면 9시간 시차 때문에 이곳 시간으론 아직 안 돌아가신 셈이었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돌려 아빠의 마지막 얼굴을 지켜볼 수만 있다면... 시차에 붙들려 아빠의 임종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간절한 마음이 들었지만 부질없겠지...
깊이 잠든 덩치 큰 흑인 남자와 마른 체구의 백인 남자 둘 사이에 꼼짝없이 배치된 좁디좁은 샌드위치 좌석에 앉은 나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과 흐느낌을 극도로 절제하면서 두 눈이 부어서 안 떠질 정도로 가슴으로 울었다.
싸구려 가운뎃 좌석은 조금만 들썩여도 양쪽 의자가 함께 흔들리는 것 같아 기나긴 비행 내내 맘껏 울지도 못하고 곤혹스러웠다.
나는 왜 몰랐을까. 아빠의 노래를.
정기적으로 찾아갔던 케어홈에서 노인들을 위로하고 때론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해 드리고 눈으로 말없이 깊은 인사를 건네고 사실 그럴 때마다 회색 병동에 갇힌 외로운 아빠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나는 여기서 이분들을 돌보고 있으니 천사를 아빠에게 보내주셔서 나 대신 돌봐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날은 Oh Danny boy를 불렀다. 그날도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From glen to glen, and down the mountain side
The summer's gone and all the roses falling
It's you, it's you must go and I must bide
"오 사랑하는 (아들) 대니야,
(고적대의) 백파이프 소리가 널 부르는구나, 골짜기에서 산기슭 아래에도.
여름은 가고 장미들도 다 시드는데,
이제 너는 (전쟁터로) 떠나야만 하고
나는(엄마) 여기 남아 널 기다린단다..."
But if he come and all the roses dying and I am dead, as dead I well may be
He`ll come here and find the place where I am lying and kneel and say an ava there for me
And I shall feel, oh soft you tread above me
하지만 네가 돌아올 때면 모든 장미는 (시들어) 죽어가고 있을 테지
그리고 나는 그렇게 죽어 있겠지
너는 여기로 돌아올 것이고 내가 누워 있는 곳을 찾겠지 그리고 무릎을 꿇고 날 위해 기도 해주겠지
그리고 나는 네가 부드럽게 내 위를 밟고 있음을 느낄 거야
And then my grave will richer, sweeter be for you will bend and tell me that you love me
And I shall rest in peace until you come to me.
그리고 내 무덤은 더욱 따뜻하고 스위트해질 거야 네가 몸을 굽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줄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는 평화롭게 쉬고 있을게
네가 나에게 돌아올 때까지.
노래를 부르면서 유독 아빠생각이 가득해져서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에 시선을 두고 눈물을 숨긴 채 함께 간 구세군 교회 레슬리의 구슬픈 리코더 연주를 들으며 노래를 부르는 둥 마는 둥 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가락인데... 번뜩 깨달아지는 순간.
그렇구나. 아빠가 그렇게도 자주 부르던 '아 목동아' 그 노래였다.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노모의 슬픈 가사인지도 모른 채 어릴 때부터 듣고 또 듣던 뭔지도 모르고 듣던 그 노래. 그게 Oh Danny boy 이 노래였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가족의 발길이 뜸한 이곳 케어홈에 나는 이렇게 찾아와 이분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드리는데 정작 아빠에겐 한 번도 불러드린 적이 없었구나.
그제야 이해되는 영어 가사며, 의미심장했던 한국어번역 가사까지 알아차려졌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날따라 그렇게 눈물이 나고 아빠가 그리웠던 거였구나...
그렇게 뒤늦게 알아차리다니 죄송한 마음에 더욱 눈물이 났던 그날이었다.
열다섯 시간을 넘게 날아가 한겨울 차디찬 공기를 가르고 다음날 아침, 한 두 송이씩 폴폴 나리는 눈 오는 하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빈소에 도착한 나는, 가족을 두고 혼자만 황급히 돌아와 불효한 마음으로 사진 속 아빠를 뵈었다.
아빠, 그렇게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훠월훨 날아 양팔에 천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조용히 가고 싶으셨는지...
햇살비치는 그 청초했던 겨울아침 나는 아빠를 보내드리고 다시 영국으로 날아왔다. 비행기의 작은 차창 밖으로 보이는 구름이 아빠 계신 곳과 맞닿아 있을 것 같아 위로의 눈물이 줄곧 흘렀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돌아올게.
말한 그대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포장해서 반짝이는 트리 앞에 내려놓고 캐럴을 틀고 성탄을 보내며 방으로 들어간 나는 한동안 나오지 못했다.
블랙 크리스마스구나.
아빠가 보고 싶고 또 그리워져서 나는 하루에도 여러 편의 시를 쓰고 찍어온 장례사진을 들여다보고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한국에서 가져온 어릴 적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울고 또 울고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고 가끔씩 방에 들어와 안부를 묻는 딸아이에게 아빠를 향한 시와 편지등을 들려주고 함께 끌어안고 엉엉 울기도 했는데 위로가 되었다. 함께 울어주는 딸이 고마웠다.
88세. 88 올림픽도 아니고.
팔팔한 나이에 가신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그 연세정도면 괜찮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실눈 뜨고 째려볼 것 같았다. 백세를 살다 돌아가신다해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죽음 앞에 당연한 건 없다.
당연한 죽음.
그런 건 세상에 없다.
어느 죽음 앞에 그것이 괜찮게 받아들여진단 말인가.
그렇게 한참을 나는 감추지 않고 참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아니, 하고 싶을 때까지 그 무엇이든지 그렇게 애도의 시간을 한껏 가졌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기도하면서 그렇게 아빠를 향한 나의 마음을 하늘에 쏘아 올렸다.
부활절이 가까워 온다고 낸시가 나에게 황수선화 한 다발을 주고 갔는데 향이 전혀 없던 노란 황수선화는 마르고 시들자 진하게 향이 남았다. 죽음도 이런 것일까.
죽음뒤에 오래오래 길게 남아서 생각과 마음에 이렇게 아름답게 자리하는 것일까.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유익하다는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마르고 시들어 향기 진한 황수선화]
*게재된 사진과 그림은 제가 직접 찍고 그린것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