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Self)와 성욕의 상관관계

카사노바의 생존심리학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인간 욕구의 가장 하위 단계에 해당하는 성욕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성인 남녀 다수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자신의 성생활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https://www.dailypharm.com/News/65275). 이는 조사가 시행된 전 세계 27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같은 조사에서 전 세계 남성 응답자의 62%가 성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해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였으며,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국가는 멕시코로 무려 75%에 달했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성욕은 분명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생존의 욕구에 포함된다. 따라서 자신의 성욕을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여전히 욕구의 제1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설령 본인이 더 높은 단계의 욕구를 실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더라도, 충족되지 않은 성욕은 삶의 여러 국면에서 계속해서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많은 성인들은 자신의 성생활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가장 큰 원인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유교 문화의 보수성을 들고 싶다. 조선을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도전은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대신해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선택했다. 이후 유교적 가치관은 약 500년에 걸쳐 조선 사회 전반에 깊이 스며들며, 사람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규정해 왔다.


연구에 따르면 고려 시대는 조선 시대에 비해 성적으로 훨씬 개방된 사회였다고 한다. 남녀 간의 혼인과 이혼, 재혼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고려 시대의 여성들은 남녀 관계와 성 문제에 있어서도 조선 시대보다 훨씬 더 주도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조선 시대의 유교 문화는 개인보다는 가정과 국가, 즉 개인이 속한 집단의 질서와 책임을 중시했다. 그 결과 혼인과 이혼, 성에 관한 문제는 엄격한 규범 속에 묶이게 되었고, 개인의 욕망과 표현은 억제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500년간 지속된 유교적 보수성은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자신의 성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집단무의식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성에 대한 억압적 태도는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의 성 인식을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국가적 통계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교 문화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예절이다. 이른바 동방예의지국의 전통 속에서 자라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의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예의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그 근저에는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문화, 즉 ‘눈치 보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중교통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관습은 존재한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주변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드문 편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서로의 행동을 끊임없이 살피고 평가하는 무언의 압력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 자료도 존재한다. 33개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국은 5위를 기록했으며, 65개국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에서는 9위를 차지했다. 특히 일본보다도 더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계속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개인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인에게만 유독 많이 나타난다고 알려진 화병(火病) 역시 이러한 눈치 보는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화병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고 참는 과정에서 축적된 분노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한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눈치를 보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문화가 화병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재 OECD 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 역시 결코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전체 사망자 중 약 4%).


이러한 눈치 보는 행동은 앞에서 설명한 페르소나 개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페르소나는 사회생활을 위해 개인이 쓰는 사회적 가면이다. 우리는 사회적 규범을 어길 경우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페르소나를 착용한다. 문제는 이 가면이 지나치게 두꺼워질 때 발생한다.


20년째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나는, 우리나라 공무원 조직에서 상사와 동료가 서로의 눈치를 얼마나 많이 보는지를 몸소 경험해 왔다. 과거 내가 9급 말단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실제로 할 일이 없음에도 상사들이 퇴근하지 않으면 부하 직원들 역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나 또한 더 이상 처리할 업무가 없는 상황에서도 일부러 초과근무를 하곤 했다. 이러한 모습은 상사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상사 역시 함께 초과근무를 하며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눈치 보는 문화가 성인 남녀의 성생활에까지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성인들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조차 자신의 성적 욕구와 바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남성은 “남자인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남자답지 않게 보일 것”이라 생각하고, 여성은 “여자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헤픈 사람으로 오해받을 것”이라며 쉽게 체념해 버린다. 그 결과,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성에 대한 진솔한 대화는 점점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내 경험상, 사랑하는 두 사람이 오랫동안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성 문제에 대해서도 반드시 솔직해져야 한다. 이러한 대화를 회피한 채 불만을 마음속에 쌓아두기만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성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렇게 해소되지 못한 욕구가 때로는 불륜이나 성매매와 같은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불륜 비율이 특별히 높다는 통계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 성매매를 포함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매매 시장 규모는 약 37조 원으로 세계 6위에 해당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 역시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적 보수성과 폐쇄적인 성문화에서 찾고 싶다.


유교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부실한 편이다. 여기에 더해, 입시 경쟁이 극심한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낮에는 학교, 밤에는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정작 인간관계와 사랑을 배우는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한다. 가정에서도 부모들은 사춘기 자녀가 성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는 않을지 늘 불안해한다. 그 결과 청소년들은 성에 대한 궁금증을 부모나 교사와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아니라, 또래나 유튜브, 야동과 같은 매체를 통해 해소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왜곡된 성 인식이 형성되고, 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랑하는 이성과의 관계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어릴 때부터 겪는 극심한 입시 경쟁, 사춘기 시절 잘못 형성된 성 인식, 그리고 오랜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눈치 보는 사회 분위기. 이 모든 요소들이 서로 맞물리며, 오늘날 우리나라의 성인 남녀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는 융심리학의 정점인 자기와 비슷한 매슬로우의 욕구인 자아실현 자체를 논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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